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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북 유화 분위기 속 구멍 뚫린 안보…군 기강 바로 세워라

중앙일보 2019.06.20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지난 15일 삼척항에서 벌어진 북한 어선 귀순은 해이한 군 기강을 그대로 보여줬다. 2015년 9월 비무장지대(DMZ)의 ‘노크 귀순’과 판박이다. 당시에도 북한군 병사가 DMZ 철책을 넘어온 뒤 우리 군 초소의 문을 두드려 귀순을 알렸다. 우리 군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발표 과정도 흡사하다. 처음엔 군 당국이 우리 군에서 귀순을 유도했다고 거짓말했다가 뒤늦게 노크 귀순이라고 고백했다. 이번에도 합참은 당초 북한 어선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커지자 귀순 어선이 삼척항에 정박했고, 우리 주민의 신고로 확인했다고 번복했다. 경계 실패에 귀순 과정까지 축소 은폐한 것이다.
 

군, 경계 실패에 귀순 과정 은폐 축소 의혹
“엄중하게 책임 묻겠다”는 정 국방의 책임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 주민 4명을 태운 북한 어선(길이 10m)은 지난 9일 북한 함경북도 경성을 출발해 삼척항으로 왔다. 동해 북방한계선(NLL)은 지난 12일 넘어왔다. 이들은 14일 밤엔 삼척항에서 4∼6㎞ 떨어진 해상에서 동력을 끄고 대기한 뒤 날이 새자 항구로 들어왔다. 이를 두고 합참은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인식했다”며 탐지하지 못한 이유를 해명했다.
 
합참의 해명은 그러나 구차했다. 북한 선박이 NLL을 넘어오면 해군·해경 함정이 먼저 탐지해 퇴거 조치한다. 그래도 계속 오면 검색을 거쳐 예인한다. 하지만 해군은 이 어선의 NLL 월선 자체를 놓쳤다. 동해상 전방 경계가 크게 허술해진 것이다. 또한 이 어선이 울릉도를 거쳐 삼척까지 이동한 것은 물론, 삼척항 바로 코앞 해상에서 밤새 정선한 뒤 기동한 것조차 군과 해경은 몰랐다. 해군 레이더는 먼바다를, 육군 레이더는 최대 20㎞ 근해까지 탐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어선을 보지 못했다는 군 당국의 변명엔 한숨마저 나온다. 더구나 북한 어선이 통과한 항로 4㎞ 가까이 해군 해상초계기가 접근했지만 탐지하지 못했다.
 
북한 어선이 귀순하는 모든 과정에서 경계의 구멍이 난 것이다. 군이 이렇게까지 흐트러진 것은 군 본연의 자세를 망각해서다. 최근 평화무드로 국방백서에 ‘북한군=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해 적을 분간하지 못하고 경계심이 사라진 건 아닌가. 육군 신병훈련에서 행군이 힘들다는 이유로 하지 말자는 제안이 나오고, 훈련을 강하게 시킨 군단장을 보직해임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청원이 올라오는 게 현 상황이다. 이와 함께 어선에 탔던 북한 주민 2명을 그제 북한으로 서둘러 돌려보낸 점도 이상하다. 이들의 의사에 따른 것이라지만, 아직 중앙 합동심문 중이다. 북한을 의식한 조처가 아닌지 의심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말은 거의 ‘유체이탈’ 수준이다. 그는 어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누가 누구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인가. 평소 군 기강을 세우지는 않다가 경계가 뚫리자 서둘러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군은 위기감을 갖고 안보태세를 철저히 재정비해야 한다. 평화는 중요하지만 안보의 뒷받침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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