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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정신으로 이은 전통…소치 허련 5대손의 현대 한국화

중앙일보 2019.06.20 00:02 종합 23면 지면보기
허진 작가의 ‘유목동물+인간-문명 2018-2’(162x130㎝). [사진 통인화랑]

허진 작가의 ‘유목동물+인간-문명 2018-2’(162x130㎝). [사진 통인화랑]

빛의 파편이 부유하는 듯이 눈부신 색채의 화폭에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있다. 큰 동물 형상에 인간의 형상이 마치 작은 퍼즐 조각들처럼 겹쳐진 풍경. 이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일까, 아니면 유토피아 같은 미래에 대한 상상일까.
 

허진 작가 ‘기억의 다중적 해석’
‘자연과의 상생’ 강렬한 채색으로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허진(57·전남대 교수)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작가가 몇 년째 구상하고 작업해온 ‘유목동물+인간-문명’연작 등을 선보이는 자리다. “인간은 자연 앞에 초라한 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작가는 “자연과 인간, 문명이 더불어 살면 좋겠다는 마음을 작품에 담았다”고 말했다.
 
‘기억의 다중적 해석’이란 전시 제목이 말하듯이, 그가 화폭에 풀어놓은 것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유목동물과 인간을 자신의 화폭에 자유롭게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자연과의 상생(相生)과 조화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표현했다. 가깝게는 동학농민혁명 등 한반도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작품들도 눈에 띈다. “기억의 축적이 곧 역사”라는 작가는 한 화면에 이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렇게 뒤섞어 놓았다.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 1’(45x53㎝). [사진 통인화랑]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 1’(45x53㎝). [사진 통인화랑]

허진 작가는 우리 화단에서 한국화의 새로운 표현방식과 주제의식을 탐구해온 작가로 꼽힌다. 한지에 먹을 쓰되 전통 분채(가루 물감)을 이용한 채색과 아크릴 채색을 과감하게 곁들인다. 눈부실 만큼 화려한 색채는 작가가 자유롭게 표현한 동물과 인간이 어울린 풍경을 더욱 몽환적으로 보이게 한다.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는 “허진 작가는 최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의미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현대 과학 문명에 대한 성찰을 거쳐 최근 연작에서 동양적 ‘유토피아’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허 작가는 이전에 ‘익명인간’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연작을 통해 치열한 역사 인식을 보여줬다. 그의 회화 바탕엔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미덕으로 삼는 동양 전통회화의 서정성이 깔려 있다”고 풀이했다.
 
허 작가가 독창적인 실험으로 현대 한국화를 실험하고 있는 데에는 그의 독특한 개인사와도 관계있다. 그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애제자이자 호남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小痴) 허련(許鍊·1808~1893)의 고조손이며 근대 남화의 대가인 남농(南農) 허건(許鍊·1907~1987)의 장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학·석사)하고 창작 활동을 해오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고, 2002년부터 전남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남 진도에 자리 잡은 소치의 운림산방의 화맥을 5대째 이으며 한국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수묵화의 특징인 함축미를 벗어나 채색화 성격이 강한 표현방식으로 서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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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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