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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게 해야 제2의 BTS 나온다…아이들 목소리 들어야"

중앙일보 2019.06.19 18:14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이 지난 2월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된 '아이리더 10기'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이 지난 2월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된 '아이리더 10기'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빈곤 구호’ 보다 ‘삶의 질 개선’이 더 중요해요. 저출산 문제도 우리에겐 중요한 사안입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이제훈(79) 회장은 1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재단은 빈곤아동 구호에 집중했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비중은 줄고 있다”며 “이제는 아동이 살면서 접하는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아동 환경 개선’이 재단의 주 임무”라고 말했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인터뷰
올해 유엔아동권리협약 채택 30주년
"놀 시간·공간 부족…부모 바뀌어야"
"저출산 문제는 아동 환경에도 악영향"

 
올해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만들어진 지 30주년 되는 해다. 아동권리협약에선 ‘아동은 충분히 쉬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고 발달 연령에 적절한 놀이를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유엔은 지난해 쓴 보고서에서 “한국은 아동의 특성을 반영한 놀이 공간이 부족하며 경제적 이유로 휴식, 놀이, 문화 활동 향유에 차별이 생기고 있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회장은 “요즘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을 들어보면 ‘놀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적인 학습 환경은 놀이시간과 공간을 앲애 큰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주고 있다”며 “요즘 아이들은 건강·영양보다 정서·정신 환경이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8년 아동실태조사' 에 따르면 아동의 32.7%가 친구들과 놀기를 원하지만 실제 노는 비율은 13.8%에 그쳤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놀이 공간 확보를 위해 2017년부터 전남을 시작으로 전국에 17개의 놀이터를 조성하고 있다. 올해 5개를 더 만들 계획이다.
[자료 : 보건복지부]

[자료 : 보건복지부]

 
이 회장은 놀이 공간보다 무엇보다 부모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들은 이제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아이들을 어떻게 ’잘 놀게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해야 BTS(방탄소년단)처럼 자신의 끼와 재능을 키워내는 청년들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끼를 발전시켜 꿈을 이룬 경우가 많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남자 펜싱 에페 부문 금메달을 따낸 박상영 선수와 ‘한국의 폴 포츠’로 알려진 팝페라 가수 최성봉씨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최근에도 재단 후원으로 첼로 공부를 한 친구가 싱가포르국립대에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며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꿈을 펼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얻는다”라고 말했다.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중앙포토]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중앙포토]

이 회장이 생각하는 재단의 당면 과제 중 하나는 저출산이다. 그는 “아동이 없다면 우리 재단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며 “이를 떠나서도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아동복지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 개념의 가족 해체, 또래의 부재 등의 환경은 어린이들에게 결코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정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부모에 의한 학대로 어린 아이들이 숨지는 등의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결국 가족 개념 해체로 인해 자녀 양육의 경험과 인식이 전수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물론 저출산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이 회장은 “청년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어도 주거 등 각종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힘들다는 점을 잘 안다”며 “정부 정책의 변화가 중요한데, 예산이 한정돼 있으므로 명쾌하게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에 앞서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며 “이를 위해 아이를 낳고 싶은 환경을 만들자는 ‘똑똑, 나가도 될까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창립된 지 70년이 넘었다. 1948년 어린이재단의 전신인 미국기독교아동복리회(CCF)가 아동 400여 명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데에서 시작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2010년 12만명이던 후원자가 48만여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약 2000억원의 운영예산을 바탕으로 국내외 120만명의 아동을 지원했다.
 
이 회장은 성장의 비결로 후원자들의 노력을 꼽았다. 그는 “20년간 불우 어린이를 돕고, 치매에 걸린 뒤에도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기부한 고(故) 양애자 할머니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며 “특히 자식들이 어머니의 평소 뜻을 잊지 않고 실천한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월 70만 원의 급여를 쪼개 나눔을 실천한 중국집 배달원인 고(故) 김우수 씨, 김밥을 팔아 모은 돈 3억 원을 흔쾌히 내놓으신 김밥 할머니 박춘자 씨 등 수많은 후원자의 노력이 재단을 일으켰다고 했다.
 
이 회장은 “후원자의 뜻을 잘 받들기 위해 더 경각심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후원문화가 주춤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럴수록 내가 후원한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는 ‘투명경영’으로 국민신뢰를 얻고 올바른 기부문화도 만들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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