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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은 죽지 않는다
 
 

홍콩 민주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추밍
英유학·기본법 위원회·국회 거친 엘리트
천안문 시위 지지해 중국 입국금지도

1990년엔 민주당 창당해 의석 싹쓸이
우산혁명·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이끌어

홍콩의 달라이 라마,
홍콩의 아웅 산 수치,
홍콩 민주주의의 아버지.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변호사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이자 홍콩 기본법 창시자 중 한명인 마틴 리추밍(李柱銘·81)입니다.
홍콩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변호사 출신 사회운동가 마틴 리추밍. [사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

홍콩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변호사 출신 사회운동가 마틴 리추밍. [사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

 
1938년생인 리추밍은 최근 홍콩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에서 정신적 지주로 불립니다.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주요 외신들이 “홍콩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소개하며 그의 의견을 앞다투어 실었는데요.
 
그는 WSJ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홍콩을 위한 결사 항전”이라며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홍콩의 자유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는 “만약 우리가 이번 싸움에서 진다면 홍콩은 더 이상 홍콩이 아니라 중국의 또 다른 도시일 뿐”이라며 “정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민주주의를 억압한다면 7월 1일 더 큰 시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단순히 개인 견해를 제시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위대의 향후 계획에 대해 알리며 일종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한 겁니다.

 
팔순을 넘긴 이 투사가 살아온 삶은, 또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일까요?  
 
마틴리추밍이 홍콩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

마틴리추밍이 홍콩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

영국 유학 법조 엘리트, 투사가 되다
 
리추밍은 식민지 시절 영국 법학원 유학에서부터 기본법 위원, 변호사 협회장, 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최정예 코스를 밟은 법조 엘리트입니다.
 
그는 홍콩에서 태어났지만 본토의 광저우에서 자랐습니다. 영국 명문 법대인 링컨 법학원에서 법을 공부하기 전 홍콩 대학에서 영문학 및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죠. 유학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온 후에는 법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영국과 중국이 홍콩 반환 논의를 시작한 1980년의 일입니다. 불과 42세의 나이에 그는 홍콩변호사협회장 자격으로 영‧중간 홍콩 반환 논의에 참여하게 되었고, 47세에는 헌법에 해당하는 홍콩 기본법의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홍콩 기본법은 이번 시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바로 이 법이 “홍콩특별행정구는 고도의 자율권을 행사하고 최종 판결권을 포함한 행정, 입법, 독립된 사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허가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위의 원인이 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이 통과되면, 홍콩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고 중국에서 재판을 받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기본법이 보장하는 “최종판결권을 포함한 독립된 사법권”이 침해될 것이라는 게 홍콩 시민들의 생각이죠. 또 중국이 리추밍과 같은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상당합니다.
 
민주당 창당에서부터 은퇴까지  
 
법조 엘리트로 승승장구하던 리추밍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정치 인생의 반환점을 맞이합니다. 1989년 5월 천안문 사태에서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홍콩 내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본토 입국을 금지당했을 뿐만 아니라 홍콩 기본법 위원의 자리도 박탈당한 겁니다. 훗날 그는 미국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이때를 회고하며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환영받지만 정작 내 뿌리인 중국에서는 날 환영하지 않는다”며 “이는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리추밍은 1990년에 홍콩 민주당을 창당하며 정치권에 복귀했습니다. 당시 홍콩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친중 보수당이 압도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요. 리추밍이 창당한 민주당은 홍콩 최초의 반중 친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었습니다.
 
물론 시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SCMP는 당시 영국조차 “민주당은 선거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며 홍콩의 반중 성향 정당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리추밍은 이들을 설득했습니다.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겠냐”며 맞선 것이죠. 홍콩 민주당은 1991년 18개 직선 의석 중 12개를 휩쓸며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2008년 23년의 국회의원 생활을 마치고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재야의 로비스트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입니다. 특히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요. 지난달엔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낸시 펠로시 의장과 마틴리 전 홍콩민주당 주석이 2009년 워싱턴에서 만나 홍콩 민주주의에 대해 논의했던 당시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낸시 펠로시 의장과 마틴리 전 홍콩민주당 주석이 2009년 워싱턴에서 만나 홍콩 민주주의에 대해 논의했던 당시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이에 미 국무부는 "홍콩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최근 범죄인 송환법 개정안으로 홍콩의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홍콩 시민의 손을 들어주었고요.
  
리추밍은 또 워싱턴포스트의 기고란에 “범죄인 인도법은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베이징의 잠재적 인질”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재야에서 중국 정부를 향한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꿈은 홍콩에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입김이 작용하는 간선제가 아닌 완전한 직선제를 쟁취하겠다는 겁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는 그의 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가 지난달 홍콩 SCMP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발언을 음미해 보시죠.
 
“언젠가는 전 세계가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 순서가 꼴등이 될지언정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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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홍콩 민주주의의 아버지 '마틴 리추밍'

우산혁명과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이끈 리추밍에 대해 알아보자

A

Q1 : 다음 중 리추밍이 창당한 정당은?

정답 : 3번 민주당 ( 마틴 리추밍은 1990년 홍콩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 당은 현재 홍콩의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전신이다. )

Q2 : 다음 중 리추밍의 이력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정답 : 3번 홍콩대학교 법대 교수 ( 마틴 리추밍은 홍콩 기본법 위원으로 기본법 초안을 작성했고 변호사협회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

Q3 : 리추밍은 1989년 천안문 사태와 관련, 중국 정부를 비판해 본토 입국 금지를 당했다.

정답 : 1번 O ( 마틴 리추밍은 천안문 사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을 뿐 아니라, 홍콩 내에서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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