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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친서 흥미롭다"던 文···화웨이 쓰면 이 말 못한다

중앙일보 2019.06.19 05:00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을 쏘자 군 당국은 바로 동해얀에서 육해공 합동장밀타격 훈련을 시작했다. 당시 군 당국은 미사일 발사 장소인 평안남도 평성 일대까지의 거리를 고려해 육군의 탄도미사일 현무-2, 해군의 함대지 미사일 해성-2, 공군의 공대지 미사일 스파이스-2000을 각각 발사했다. 사진은 육군의 현무-2 미사일 발사 장면. 당시 한국은 미국의 정보공유를 통해 북한이 화성-15형 발사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와 같은 훈련을 미리 계획할 수 있었다. [연합]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을 쏘자 군 당국은 바로 동해얀에서 육해공 합동장밀타격 훈련을 시작했다. 당시 군 당국은 미사일 발사 장소인 평안남도 평성 일대까지의 거리를 고려해 육군의 탄도미사일 현무-2, 해군의 함대지 미사일 해성-2, 공군의 공대지 미사일 스파이스-2000을 각각 발사했다. 사진은 육군의 현무-2 미사일 발사 장면. 당시 한국은 미국의 정보공유를 통해 북한이 화성-15형 발사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와 같은 훈련을 미리 계획할 수 있었다. [연합]

 
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빼라면서 한국에 ‘민감한 정보’ 카드를 꺼냈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본지 문의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한 수준의 위험에 우리의 민감한 정보를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한 게 그렇다. 국무부는 “미국은 한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장비 구매를 중단하길 원하며, 그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가”라는 중앙일보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이어 “동맹국이나 우방국 네트워크에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의 장비가 포함될 경우 우리는 어떻게 정보 공유를 할지에 대해 재검토할 것이란 의미”라고 다시 설명했다.
 
국무부는 ‘민감한 정보’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민감한 정보’는 군 당국 간의 군사 정보, 국가정보원과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 당국 간의 안보 정보 및 청와대ㆍ백악관 사이에 주고받는 인적 채널을 통한 고급 정보 등이라는 게 전직 정보 당국자들의 지적이다. 미 의회 조사국(CRS)은 앞서 12일 ‘5G 이동통신 기술의 국가안보 영향’ 보고서에서“중국 통신장비의 취약성은 의도적으로 심어놓을 수 있다”며 “미 국방부는 전략 정보ㆍ작전 사항 등 민감한 정보를 상업용 통신망으로 전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감한 정보엔 당연히 군사 정보가 포함됨을 보여준다.
 
‘민감한 정보’ 제공 중단이 한국에 민감한 이유는 한ㆍ미의 정보 수집 역량과 취득한 정보량의 차이가 워낙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민감한 정보’를 일부 차단하더라도 한국은 정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간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는 게 전직 군ㆍ정보 당국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정보당국자는 “한국은 영국ㆍ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 등 미국이 가장 신뢰하는 정보 파트너(Five Eyesㆍ파이브 아이스) 수준은 아니지만, 한ㆍ미연합사를 통해 일본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은 정보를 얻어 왔다”고 말했다. 군 당국 간만 아니라 한ㆍ미 정부 당국 간에도 민감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들이 슬쩍 드러나기도 한다.
 
외교 소식통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친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께서 발표하지 않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고 말했다”며 “이같은 친서 내용이 미국이 한국과 공유한 민감한 정보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민감한 정보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정보부터 전략 정보까지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또 다른 전직 정보당국자는 “한국은 평양~원산 이북에 대해선 전혀 깜깜하다. 북한이 이 지역에 핵ㆍ미사일 주요 시설을 마련해놨다”며 “북한 최고수뇌부의 움직임도 미국의 도움 없이는 다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과거 ‘민감 정보’의 제공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측이 한국에 정보 제한 조치를 건 경우는 종종 있었다. 정보 당국자는 “미국은 정보의 출처를 보호하는 데 민감해한다”며 “한국 정부가 미국이 제공한 정보를 노출했을 경우 미국은 강력히 항의한 뒤 교묘하게 정보를 선택해서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다 뒤늦게 미국이 관련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한 일도 있었다”며 “미국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우리로선 뭔가를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09년의 일이다. 그해 4월 5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은하 2호를 발사하기에 앞서 2월 원통형 물체를 실은 열차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위성 발사장으로 이동하는 사실이 한국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러자 미국의 국가정보국(DNI) 고위관계자가 한국을 찾았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DNI 고위 관계자가 ‘왜 미국의 위성정보가 새어 나갔나’고 따져 물었고, 우리는 이를 해명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화를 내고 정보를 차단한 적도 있지만,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정보의 양과 질을 확 줄이겠다는 게 엄포만이 아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동맹의 시작은 정보 공유에 있고, 한ㆍ미 전작권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도 정보공유에 있다”며 “미국이 위성 등 감시자산에서 얻은 군사정보를 한국에 제공하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 상황이 온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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