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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갤러리를 열었다,날 설레게 하는 작가들과 30년"

중앙일보 2019.06.19 00:45
독일 베를린의 대표 갤러리 중 하나인 에스더 쉬퍼 갤러리의 쉬퍼 대표는 "한국 작가들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들을 유럽 미술계에 적극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독일 베를린의 대표 갤러리 중 하나인 에스더 쉬퍼 갤러리의 쉬퍼 대표는 "한국 작가들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들을 유럽 미술계에 적극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영국의 개념미술가 리암 길릭(Liam Gillick·55), 캐나다 출신의 안젤라 블로흐(Angela Bulloch·53),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위그( Pierre Huyghe·56),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틴 보이스(Martin Boyce·52), 인도계 독일 작가 티노 세갈(43)….  현재 세계 현대 미술 분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리암 길릭과 안젤라 블로흐는 이미 한국에서각각 개인전과 공공미술 작품을 통해 소개된 바 있고, 피에르 위그는 40세 되던 해에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주는 휴고 보스 상을 받았다. 또 마틴 보이스는 2011년 영국 최고 권위의 미술상으로 꼽히는 터너 상을 받았고, 티노 세갈은 2010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각기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현재 글로벌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이 작가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에스더 쉬퍼 갤러리(Esther Schipper Gallery) 소속 작가란 점이다.  
 
 
1989년, 20대에 시작한 갤러리 
세계적인 작가들 40여 명을 품고 있는 에스더 쉬퍼 갤러리는 독일 베를린을 넘어서 현재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갤러리로 꼽힌다. 2018년 영국 미술잡지 아트리뷰(Art Review)가 선정한 '2018 파워 100'에서 쉬퍼 대표는 52위를 차지했으며, 소속 아티스트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4위, 피에르 위그 12위,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45위, 리암 길릭은 71위로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그야말로 쟁쟁한 라인업이다. 한국에서는 이 100위 안에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66위)을 포함해 등 3명이 60위권에 올라 있다. 
 
최근 이 갤러리의 창립자인 에스더 쉬퍼(56·Esther Schipper) 대표가 한국 미술계를 돌아보기 위해 찾았다. "한국은 현대미술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여러 아티스트를 눈여겨보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한국 작가들이 최근 흥미로운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우리 갤러리는 2014년부터 아시아 팀을 두고 아트바젤 홍콩, 상하이 웨스트 번드, 대만 당다이 등 아시아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여해 왔는데, 특히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작가들을 유럽 미술계에 소개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2년 전인 2017년 갤러리 공간을 새로 옮기고 한 전시가 한국 아티스트 2명(임흥순, 김민정)이 참여한 5인 그룹전이었다.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갤러리 중 하나인 에스더 쉬퍼 갤러리는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쉬퍼 대표가 여성 갤러리스트로서 단독으로 30년간 갤러리를 운영해온 이력은 유럽 미술계에서도 드문 사례로 꼽힌다. 
 
 쉬퍼 대표는 또 2004년부터 노이게림슈나이더, 막스 헤츨러 갤러리 등과 손잡고 '갤러리 위켄드 베를린(Gallery Weekend Berlin)'도 주도해왔다. '갤러리 위켄드 베를린'은 해마다 4월에 열리는 행사로, 베를린의 각 갤러리가 아트페어와 달리 컬렉터를 부스가 아닌 갤러리로 초청해 각 갤러리의 개성과 비전을 보여준다. 
 
뻔한 길 대신 모험을 택했다 
30년 전, 20대의 나이에 갤러리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완전히 혼자서 시작했다. 1989년 쾰른에서 개관했고 이후 1995년 베를린으로 옮겨온 뒤 2017년 포츠다머 스트라세의 새 공간으로 옮겨왔다. 지금 있는 거리가 예전 동독 지역이었던 곳인데 지금 갤러리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이곳이 새로운 예술지구가 되고 있다. 지금 이곳에 어떻게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까 생각 중이다."  
 
일찍이 갤러리스트로 진로를 결정한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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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내게 대학은 전혀 흥미로운 곳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학구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미술사학자였고, 아버지는 대학교수였다. 하지만 대학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공부보다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좀 더 실용적이고 역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도 가능하면 빨리. 그래서 출판사인 타셴(Taschen)과 갤러리에서 일하고, 미술관인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인턴십을 한 다음 1989년 쾰른에서 갤러리를 열었다."
 
고향인 프랑스가 아닌 독일에서 혼자서 갤러리를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미술 비평 글을 쓰고, 전시 리뷰를 프랑스 미술 잡지에 기고도 하는 등 글을 썼다. 그러면서 내 또래의 아티스트를 많이 만났다. 그들의 작품이 나를 흥분하게 했는데, 그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하면서 갤러리를 시작했다. 큰돈이 없어도 되는 일이었다. "  
 
쉬퍼 대표는 "80년대는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다"면서 미래에 대해 큰 모험을 감행해도 되는 시대였다. 더구나 난 당시 젊고 혼자니까 더 용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갤러리를 시작했을 때 두 명의 컬렉터가 그림을 사준 덕분에 월세를 내며 버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인연을 맺은 작가 중 지금까지 함께 하는 작가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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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블로흐, 필립 파레노는 지금까지 30년째 같이 일하고 있다. 함께 젊을 때 시작해 신뢰를 쌓으며 함께 성장해온 작가들이 많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작가들과 오랜 관계를 이어온 비결은. 
"항상 즐겁게 일해온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닐까. 돌아보니 나를 30년간 이끌어 온 게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항상 흥미로운 작가를 찾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좇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는 일이 항상 나를 신바람 나게 했다."  
 
갤러리스트, 감정 개입은 금물 
 앤 베로니카 얀센스(Ann Veronica Janssens), (2017 Artificial fog), [사진 Andrea Rossetti 촬영, 에스더 쉬퍼 갤러리]

앤 베로니카 얀센스(Ann Veronica Janssens), (2017 Artificial fog), [사진 Andrea Rossetti 촬영, 에스더 쉬퍼 갤러리]

 갤러리스트로서 작가들과 협업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뭘까.  
"작가들은 모두 치열하게 자기 작업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욱 작가들과의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하지만 일에 감정을 개입해서는 안 된다. 감정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일에 감정 개입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서로를 위해 일하는 작가와 갤러리는 이른바 ‘일로 맺어진 우정(working friendship)’ 관계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서로를 위해 협업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매우 훌륭한 작가(great artists)라고 하더라도 관계 맺기엔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그의 작품(great arts)만 생각해야지, '까칠한 사람'(a difficult person)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아티스트와 작품에 대해 미술 시장의 기호와 갤러리스트인 나의 기호가 충돌할 땐 어떻게 하나.  =
"내가 더 설득됐다고 느껴지는 작가를 택한다. 그래서 머릿속에 항상 작품에 대한 생각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런  상태로 시간을 보낸 후에 결정을 내리고, 일단 결정한 다음엔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안젤라 블로흐(Angella Bulloch)의 ' Heavy Metal Body'(2017),[사진 Andrea Rossetti 촬영, 에스더 쉬퍼 갤러리]

안젤라 블로흐(Angella Bulloch)의 ' Heavy Metal Body'(2017),[사진 Andrea Rossetti 촬영, 에스더 쉬퍼 갤러리]

시대 변화를 읽는 아티스트 주목  
요즘 어떤 작가를 주목하고 있나.  
"우리는 지금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들과 일을 하려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갤러리에 합류한 히토 슈타이얼은 뉴미디어아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작업하는 것뿐 아니라 글을 쓰면서 동시대가 당면한 이슈인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날카로운 논평으로 발언하고 있다."
 
30년 전과 비교해 지금 세계 미술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미술계도 그동안 매우 산업화했고, 또 세계화됐다. 내가 시작했을 때 현대 미술은 오로지 서구 미술가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틀이 깨지고 있다. 예술은 전세계의 언어와 같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다른 세계를 만나는 데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작가들과의 협업을 확대할 생각인가.
"물론이다. 눈여겨보고 있는 작가 있는데 지금 밝힐 수는 없다. 이해해달라(웃음)."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이것이 미래다'(비디오 설치 ), [사진 Andrea Rossetti 촬영, 에스더 쉬퍼 갤러리]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이것이 미래다'(비디오 설치 ), [사진 Andrea Rossetti 촬영, 에스더 쉬퍼 갤러리]

갤러리스트? 조용한 삶 원하면 시작도 마라
마지막으로, 당신처럼 갤러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조언한다면.  
"인내하고 버텨라. 겁먹지 말고 덤벼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안정된 삶, 조용한 삶(Calm Life)을 꿈꾼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에게는 이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Trust yourself). 나 자신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성공하려면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론 안된다.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인내 없이는 꽃 피지 않는다. 성공은 가볍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믿고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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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에스더 쉬퍼 갤러리=독일의 이 갤러리는 2000년대 들어 한국과 활발한 협업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13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연 사이먼 후지와라는 2018년에 이 갤러리에 합류했고, 토마스 사라세노는 2017년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ACC)에서 큰 전시를 했다. 안젤라 블로흐와 라이언 갠더(Ryan Gander)는 각각 2003년과 2017년에 갤러리현대에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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