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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알짜 공공기관 일자리도 ‘공신’들 차지

중앙일보 2019.06.19 00:29 종합 27면 지면보기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글 제목의 ‘공신’은 정권 창출의 공신(功臣)이 아니라 ‘공부의 신’을 뜻하는 공신(工神)이다. 서울 강남의 부유층 자제, 금수저, 고액과외, 특수목적고 같은 말을 연상케 하는 그 공신이다. 공신은 세칭 명문대만 휩쓰는 줄 알았는데 졸업 후에도 장차 60세 정년과 억대 연봉이 보장되는 공기업과 공공기관 입성 때 힘을 낸다. 하긴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씁쓸한 세상의 단면일 뿐이지만 공기업과 공공기관 다니는 지인들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현 정부가 2017년 5월 출범 이후 ‘공공 일자리 81만개 창출’ 대선 공약을 밀어붙이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한다. 공기업과 공기관들이 신규 채용을 앞다퉈 늘리면서 평년의 몇 배나 되는 곳들이 속출했다. 기관장 평가에 일자리 창출 점수 비중이 커진 점이 주효했다. 평균 연봉 1억원 언저리의 ‘신의 직장’ 금융공기업의 채용 인원이 급증하자 공신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미취업자는 물론이고 유수의 회계법인에서 멀쩡히 일하던 30대 초반의 엘리트 공인회계사들까지 몰려왔다. 증권·선물 시장을 관장하는 또 다른 금융공기업에는 내로라하는 간판 대기업을 다니다 다시 신입사원으로 공채 입사하는 직원이 늘고 있다. 시험 도사들이 여러 기관에 동시 합격하는 것을 막으려고 메이저급 금융기관들은 한 날 시험을 본다. 취준생들이 ‘A매치’라고 부르는 황금 직장들이다. 한 에너지 공기업도 현 정부 들어 잔뜩 늘려 뽑은 신입사원들을 보낼 부서가 적어 골치를 앓았다. 많은 공기업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근래 사석에서 만난 지인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늘어놓곤 한다. “민간기업에서 창의성을 한껏 발휘하거나 창업에 도전할 똑똑한 젊은이들이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에만 몰리게 만들면 어떡하느냐”는 걱정과 함께. 양극화와 빈부 격차 해소를 부르짖는 ‘포용 국가’ 정권 입장에서 유독 고소득 알짜배기 일자리가 금수저·은수저 부잣집 출신 ‘공신’들의 취업 사냥감이 되는 걸 원할 리 없다. 정부의 공공 일자리 공약에 들뜬 젊은이들이 노량진 공시촌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7, 9급 공무원직도 심하면 100 대 1 이상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희망 고문이 되어 버렸다.
 
재벌개혁과 검찰개혁은 지난 2년간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은 것 같은데 공공개혁과 노동개혁 같은 말을 위정자 입에서 들어본 지 정말 오래됐다. 대리인 문제, 도덕적 해이 같은 공공부문의 비효율 고민은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난제다. 인심을 잃는 만큼 성과가 날지도 미지수다. 그래도 지난 9년의 보수 정권에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개혁의 메스를 꺼내 드는 시늉이라도 했다. 지난 2년을 돌이켜 보면 말라버린 일자리를 공공부문에 기대야 하는 조바심 때문인지 공공 개혁의 구호는 자취를 감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 기업집단의 자산순위 목록에서 공기업을 빼는 게 보통이라 공공부문이 우리 경제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깜빡하기 일쑤다. 한국전력과 LH(옛 한국토지주택공사)·도로공사·가스공사는 20대 기업집단의 단골 멤버다. 포스코·KT는 오래전 사기업으로 전환했는데도 대표가 바뀔 때마다 여전히 정권 눈치를 본다.
 
더욱 날카로운 적폐청산의 칼을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 쥐여준 정권이 검찰을 쉽사리 개혁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부족한 민간부문 일자리를 공공부문 일자리로 벌충하려는 정권이 일자리 저수지인 공기업과 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한 무너진 경제를 바로 세울 공공개혁은 발등의 불이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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