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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국으로 치닫는 ‘한·일 열차’

중앙일보 2019.06.18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성곤 전 국회사무총장·사단법인 ‘평화’ 이사장

김성곤 전 국회사무총장·사단법인 ‘평화’ 이사장

G20 오사카 회의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한 한·일 현안은 아무런 진전이 없다. 한·일 간에 다가올 파국의 정도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고민도 깊으리라 생각한다. 가장 큰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해본다.
 
첫째, 한·일 양자 관계는 궁극적으로 화해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싫든 좋든 한·일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갈 이웃 아닌가. 역사 바로 세우기는 필요하나 그것이 오히려 양국 관계를 파탄 낸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정의를 세우면서도 동시에 화해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 한 국가에 두 목소리의 외교 정책이 있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 과거와 다른 해석, 즉 ‘불법적 식민지배에 따른 손해배상 차원의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놓으며 생긴 일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소멸된다’는 1965년 합의에 위배된다고 반발한다.
 
2005년 이해찬 당시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민관공동위원회에서 1965년 청구권 협정과 이후의 정부 보상조치로 개인청구권은 소멸됐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정부는 사법부와 협의해 우리 내부의 ‘두 목소리’를 하나로 정리해 줘야 한다.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할 필요는 있으나 외교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은 정부이고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리고 차제에 한국도 영국·미국·프랑스처럼 외교 문제는 사법부가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의 원칙’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의 연속성 차원에서 전 정권의 국제협약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달리 중견국가로서 국제적 룰을 존중하며 국제사회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한·일 관계에서는 과거사로 인해 감성적으로 외교 문제를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2015년 12월의 위안부 관련 합의도 경위야 어떻든 현 정부 들어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함으로써 사실상 파기했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서도 1965년 합의를 깬다면 우리는 모처럼 위안부 문제에서 국제적으로 얻은 도덕적 우위를 스스로 무너뜨릴 수도 있다.
 
넷째, 강제징용 문제가 파국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청구권 협정 제3조에 의해 외교적 협의 혹은 중재위로 가야 한다. 외교적 협의를 통해 기금을 만드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중재위를 수용해 국제적 중재에 판단을 맡길 수도 있다. 설령 중재위로 가더라도 과거 일본 최고재판소가 ‘청구권 자체의 실체적 권리’를 인정한 바 있고, 일본 기업과 피해자 사이의 자발적 협의는 인정한 적이 있기에 한국이 불리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중재위 중에도 얼마든지 외교적 협의로 제3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지금처럼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 일본의 공세는 거칠어지고 양국의 감정은 악화하며 한국의 외교적·경제적 손실은 더 커질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일본의 협조와 지지를 놓칠 수도 있다. 또한 일본에는 50만 재외동포들이 한·일 화해를 애타게 바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은 한국에 불편한 이웃이다. 한국도 일본에 불편한 이웃이다. 그러나 한·일은 문화적·체질적 DNA가 가장 유사한 ‘사촌 같은 이웃’이다. 서로 미워하기보다 포용해 좋은 친구가 된다면 함께 동북아와 세계 평화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이 위기를 양국간 새로운 파트너십 형성의 계기로 만들길 고대한다.
 
김성곤 전 국회사무총장·사단법인 ‘평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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