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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자책점 1.26…류현진은 신기록을 던진다

중앙일보 2019.06.18 00:05 경제 7면 지면보기
류현진이 17일 시카고 컵스전서 7이닝 2실점(비자책) 호투했다. 미국 전국에 중계된 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AFP=연합뉴스]

류현진이 17일 시카고 컵스전서 7이닝 2실점(비자책) 호투했다. 미국 전국에 중계된 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AFP=연합뉴스]

1990년대 중후반 ‘선동열 방어율’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공부를 게을리 한 대학생이 1점대 학점을 기록하는 걸 놀리는 말이었다.  
 
숫자에 담긴 의미는 반대지만, 비현실적인 숫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많이 통용됐다. 1985~95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뛴 선동열은 통산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한 국보(國寶)급 투수였다. 그로부터 20여년간 야구팬들은 ‘선동열 방어율’에 필적할 기록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2019년 팬들은 국보를 능가하는 한류(韓流) 투수가 세계 최고 무대를 뒤흔드는 걸 보고 있다.
 
류현진(32·LA 다저스)이 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홈 경기에서 7이닝 동안 안타 7개를 맞고 2실점 했다.
 
2-2 상황에서 내려가 시즌 10승(현재 9승1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6회 초 2점을 내줬는데, 모두 수비 실책 탓이어서 비자책점으로 기록됐다. 실책이 없었다면 실점하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의 평균자책점은 1.36에서 1.26으로 내려갔다.
 
메이저리그의 유일하게 1점대 평균자책점이며, 2위(2.20) 루이스 카스티요(신시내티)와 격차도 크다.
 
류현진은 5회 초까지 안정적으로 던졌다. 빗맞은 안타를 내줘도 후속 타자한테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유도했다. 다저스의 수비 시프트가 류현진을 흔들었다. 6회 초 선두타자 1번 하비에르 바에즈의 땅볼을 다저스 3루수 저스틴 터너가 잡았는데 1루 송구가 나빴다. 2번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때린 플라이는 빗맞은 안타. 무사 1·3루에서 3번 앤소니리조의 라인드라이브가 3루수 터너에게 잡혔다. 시프트가 아니었다면 유격수 땅볼이 될 타구였다. 4번 윌슨 콘트레라스가 툭 건드린 타구는 내야를 빠져나갔다. 평범한 2루 땅볼이 시프트 탓에 우전안타로 둔갑해 1-1이 됐다.
 
류현진은 5번 데이비드 보트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았지만, 3루 주자 브라이언트가 홈을 밟아 1-2로 역전됐다. 2사 1·2루에서 7번 제이슨 헤이워드를 삼진 처리해 이닝을 마무리했다. 다저스는 6회 말 코디 벨린저의 솔로홈런(23호)으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다저스는 결국 3-2로 재역전승했다. 경기 후 류현진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팀 승리를 위해 선발투수로서 역할을 해냈다. 경기 전 분석한 대로 던졌고, 빗맞은 타구가 많이 나왔다”며 “(시프트 실패는) 어쩔 수 없었다. 상대에게 운이 많이 따랐다. 10승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실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경기는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의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로 편성돼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됐다. 내셔널리그 최강 팀끼리 붙은 경기에서 류현진의 진가가 빛났다. 피칭 내용도 좋았지만,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을 만들어냈다.
 
류현진은 1회 초 바에즈를 3구 삼진으로 잡아냈다. 공 3개(패스트볼-체인지업-체인지업)를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가장 낮은 코스에 핀포인트로 공략했다. 공격적인 타자로 유명한 바에즈보다 류현진이 더 공격적이었다.
 
컵스 9번 타자 에디슨 러셀은 5회 초 류현진의 컷패스트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무릎 쪽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공에 러셀이 배트를 놓쳤다. 날아간 방망이는 다저스 더그아웃을 습격했다. 러셀은 7회 초 또 한 번 방망이를 놓치며 삼진을 당했다.
 
7회 초엔 바에즈도 방망이를 집어 던졌다. 이번엔 놓친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해 내팽개친 것이다. 류현진은 스트라이크 존 좌우를 번갈아 공략하다가 6구째 체인지업을 멀찌감치 던졌다. 이어 7구째 무릎을 파고드는 시속 147㎞ 패스트볼에 바에즈는 꼼짝도 못 했다.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자 바에즈가 분노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투구 추적 시스템에 따르면 류현진의 마지막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가장 낮은 구간을 스치듯 통과했다. 스트라이크 존의 모서리 4곳을 정확하고 집요하게 찌르는 류현진의 피칭에 타자들의 폼과 시야가 흔들린 것이다.
 
류현진은 다저스 역사상 개막 후 14경기 등판 시점에서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됐다. 종전 기록은 전설적인 투수 돈 드라이스데일(1968년)의 1.31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류현진과 비교할 기록을 찾느라 100년 전 자료부터 뒤지고 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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