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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불안이 금 투자 부추기고, 허약한 경제체질 금값 올려

중앙일보 2019.06.18 00:05 종합 26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금에 쏠린 시선
LS니꼬동제련이 만든 12.5kg(오른쪽) 및 1kg, 100g 순금 골드바. 송봉근 기자

LS니꼬동제련이 만든 12.5kg(오른쪽) 및 1kg, 100g 순금 골드바. 송봉근 기자

경기 부진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예언인가. ‘안전 자산’인 금 투자에 불이 붙었다. 한국거래소 금 가격은 2014년 3월 개장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거래량도 쑥쑥 늘고 있다. 금 수요가 몰려 한때 은행에서는 골드바(gold bar)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제 불안감이 빚어낸 씁쓸한 광경이다.
 
최근의 금 투자 바람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제일 먼저 불기 시작했다. 올 3월 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발언이 불을 댕겼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한 게 발단이었다. 물가가 오르고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한 투자자들이 금을 찾기 시작했다. “원론적 발언이었다”는 한국은행 측의 해명에 투자 열기가 사그라지는 듯했으나 이번엔 다른 뉴스가 기름을 부었다. 올 1분기 경제가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4월 중순이었다.
 
은행 프라이빗 뱅킹(PB) 센터에 자산가들의 골드바 구매 문의가 빗발쳤다. 신한PWM 분당센터 정우성 PB팀장은 “특히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낙담했다. 경기 전망에도 부정적이었다. ‘이런 때 금덩어리만 한 게 있느냐’는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투자회사의 PB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적인 60대 이상 자산가들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못 미더워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경제정책 못 미더워…금 수요 폭발
자연히 금 수요가 크게 늘었다. 한때 은행 금고에서 골드바가 자취를 감출 정도였다. 갑자기 골드바 인기가 폭발할 줄 모르고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KEB하나은행 김영호 Club 1 PB센터장은 “그 전에는 고객이 골드바를 주문하고 사흘이면 받을 수 있었으나, 한동안은 수령할 때까지 최장 한 달이 걸렸다”고 전했다. 금융회사들이 LS니꼬동제련ㆍ한국금거래소ㆍ삼성금거래소 같은 골드바 제조ㆍ유통업체들로부터 물량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았다는 소리다.

 
 
 5월 들어 금 수요는 더 늘었다. 금제품 유통업체인 한국금거래소와 삼성금거래소가 금융권에 공급한 금의 총량은 올 4월에 전달의 배 이상이 됐다. 5월에는 다시 4월의 3~4배로 폭증했다. 그러나 이것이 국내 금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국제 금 수요가 안정적이어서다. 수입과 국내 생산으로 국내 수요를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금 수요 폭발이 예외적으로 한국에서만 발생했다는 의미다. '찻잔 속의 태풍'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국내 금값이 어느 정도 비싸지긴 했다. 주된 원인은 환율이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바람에 국내 가격이 올랐다.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국제 금값은 0.6% 오르는 데 그친 반면, 국내 금값은 7.1% 상승했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국내 금 수요를 키우고, 경제 체질 약화가 국내 금값 상승을 부른 것이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중국이 금을 싹쓸이해 간다’
6월 들어서는 국제 금값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 14일엔 1 트로이온스(31.1g) 당 1353.8 달러가 됐다. 보름 새 4.6% 올랐다. 국제 금값 상승의 주원인 두 가지는 모두 미국이 제공했다. 하나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발언이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돈이 풀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다. 이럴 땐 미국 국채 등을 들고 있던 투자자들이 대신 금을 사게 마련이다. 국내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이 금의 투자 매력을 한껏 높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국제 금값을 떠받친 또 다른 요소는 격화한 미ㆍ중 무역전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추가로 중국 제품 3000억 달러어치에 25% 관세를 붙이겠다”고 했다. 시행되면 세계 경제에 치명타다. 미ㆍ중이 모든 교역 품목에 관세를 붙이면 전 세계 GDP가 0.5%(4550억 달러)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에서 비롯된 불안감은 금 수요와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각국 중앙은행부터 금을 사들이고 있다. 무역전쟁 당사자인 중국 인민은행은 진작부터 금을 야금야금 매입했다. 대신증권 김소현 연구원은 “러시아ㆍ유럽 중앙은행도 금을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매입 대열에 중국 부호들도 가세했다. 삼성금거래소 박치석 전무는 “최근 홍콩 거래처에서 ‘중국이 금을 싹쓸이해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중국의 부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6월의 국제 금값 상승은 국내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한국거래소의 금값은 지난 14일 g당 5만1590원으로 개장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초보다 11.1%, 지난해 저점보다는 20.4% 올랐다. 값이 꽤 뛰었어도 투자 대상으로서 인기는 여전하다. 4월 17일부터 이달 3일까지 모두 23차례 금 투자 설명회를 진행했던 KEB하나은행 골드클럽(PB센터)은 고객들의 성화(?)에 설명회를 세 차례 늘렸다. 서울 종로 귀금속 상가에도 골드바 등을 사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금거래소 측은 “얼마 전까지 가격만 물어보던 손님들이 지금은 와서 바로 사고 있다”고 전했다. 주로 사는 품목은 100g 골드바(약 590만원)라고 한다.
 
은 투자도 꿈틀
한켠에서는 은 투자도 꿈틀거린다. 국제 은 시세는 연초보다 소폭(-2.7%) 하락했다. 산업에 많이 쓰이는 은의 특성 때문에 글로벌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값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70~75배를 오가던 금ㆍ은 가격 차가 90배까지 벌어졌다. 한국금거래소 송종길 전무는 “2, 3주 전 한 점포에 고객이 트럭을 몰고 와 은 1.2t을 사 갔다. 경기가 회복돼 금ㆍ은 가격 차가 원상회복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투자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직영ㆍ가맹점을 통해 은 15t이 팔렸다. 지난해 1년 전체(7.8t)의 두 배 가까운 판매량이다.
 
트로이온스(약 31.1034g)당 1360달러 정도인 현재 국제 금값은 사상 최고점에 한참 못 미친다. 그리스 국가 부도설이 불거졌던 2011년 9월엔 1900달러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은 당시만큼의 위기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달러 가치가 떨어지리란 전망에 각국 투자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대신증권은 “연말까지 1500달러”를 제시했다. 복병은 이달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다. 여기서 미ㆍ중이 극적으로 타협하면 금값이 안정될 수도 있다.
 
☞한국거래소ㆍ한국금거래소ㆍ삼성금거래소=한국거래소는 주식ㆍ채권 등 자산 시장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코스피ㆍ코스닥 시장이 대표적이다. 2014년부터는 금도 거래한다. 한국금거래소ㆍ삼성금거래소는 금과 귀금속을 전문적으로 수입하고 도매시장에 유통하는 사설 회사다.
 
한국의 금광 - 구리 광석에서 금을 캐다
국내에서도 금을 생산한다. 금광에서가 아니다. 제일 큰 생산업체는 LS니꼬동제련이다. 본업은 순도 99.99%짜리 구리 생산이다. 전선 등에 쓰이는 바로 그 구리다. 이때 쓰는 구리 광석에 소량의 금이 들어 있다. 1t당 10~20g 금이 나온다고 한다. 산출량에 비춰볼 때 일종의 ‘곁두리 생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금액으로 본 덩치가 상당하다. 지난해 총 매출 약 7조5000억원 가운데 거의 2조원이 금에서 나왔다.
 
LS니꼬동제련은 광석을 처리해 먼저 구리를 뽑아내고 뒤이어 차례로 은과 금을 추출한다. 12.5㎏, 1㎏, 100g짜리 골드바 등을 만들어 국내 금융회사, 귀금속 유통업체, 산업체 등에 공급하고 수출도 한다. LS니꼬동제련뿐 아니라 고려아연도 금 생산업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구리 광석에 금이 들어 있듯, 아연 광석도 금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LS니꼬동제련의 최용실 업무홍보팀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LS만 런던 금시장 연합회(LBMA)의 ‘우수 공급자 명단(good delivery list)’ 인증을 받았다”고 했다. 국제 금 시세 기준을 제시하는 LBMA로부터 ‘금 99.99%’ 같은 순도와 품질 인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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