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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기 판교 직장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협정 근로자의 범위’다. 지난 13일 네이버 노사 양측이 단체협약에 잠정 합의한 것도 이와 관련해 타협점을 찾은 덕이다. 협정 근로자란 쉽게 말해 '쟁의 행위에 참여할 수 없는 근로자'를 말한다. 파업 시에도 기업의 존립을 위해 필수적인 서비스는 안정적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간접적으로 규정돼 있다.

파업 불가 ‘협정근로자’ 최대쟁점
서비스 중단, 기업 존립까지 위협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 중재 나서

 
 네이버 노사 양측은 이 협정 근로자의 범위를 놓고 6개월 넘게 힘겨루기를 벌이다가 지난 13일 겨우 단체협약 잠정 합의를 끌어냈다. 그간 네이버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업계에선 협정 근로자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구글도 파업하는 시대…‘IT=밤샘근무’는 옛말 
네이버 본사인 그린 팩토리 로비에서 농성 중인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관계자들. [사진 공동성명]

네이버 본사인 그린 팩토리 로비에서 농성 중인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관계자들. [사진 공동성명]

 
 15일 네이버와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에 따르면 협정 근로자의 범위를 먼저 정하자고 한 건 네이버 사용자 측이다. 지난해 10월 초 협정 근로자 조항 신설을 요구했다. 네이버의 협정 근로자 규정 범위가 지금 와서 주목받는 건 그간 IT 업계에선 ‘쟁의’라는 단어조차 생소했기 때문이다. 파업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보상 수준이 높고, 직원들의 이ㆍ전직이 잦아 단체행동의 필요도 적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고, ‘워라밸’ 등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네이버 파업’이나 ‘카카오 파업’ 등도 얼마든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등에 노조가 들어선 것도 회사 측에 영향을 줬다.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 구글 지사의 동맹파업 현장.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 구글 지사의 동맹파업 현장. [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나 카카오가 파업 때문에 5~6시간씩 제대로 서비스가 안 된다고 생각해 보라”며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아무리 큰 IT기업이라도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IT 회사들이 이례적으로 협정 근로자 도입을 요구한 이유다. 
 
 이런 변화는 한국 만의 일이 아니다. 실제 구글도 지난해 11월 본사와 전 세계 50여 개 지사 소속 직원 2만여 명이 대규모 파업을 하며 거리로 나섰었다. 당시 파업에 참여한 이들은 회사가 성추행을 저지른 임원을 보호하고 그를 내보내면서 거액의 퇴직금 등을 지급했다며 분노했었다. 다행히 시한부 파업이어서 서비스 제공 등엔 큰 문제가 없었지만, IT업계 종사자도 얼마든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창업자 이해진 GIO까지 직접 등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겸 창업자. [중앙포토]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겸 창업자. [중앙포토]

 
 네이버 사 측에서 협정 근로자의 범위를 정한 다음에야 나머지 노조 요구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덕에 노사 양측 간 협상은 170일 넘게 중단됐다. 공동성명 이수운 홍보국장은 “사 측은 처음엔 협정 근로자 범위를 수치가 아닌 ‘포털 서비스 운영자, e메일 서비스 운영자’ 등 모호하게 제시했다”며 “그렇게 따지면 우린 다 포털 서비스 노동자여서 노조로선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양측의 협상이 길어지면서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진 이해진(52ㆍ사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네이버 노동조합이 창업자인 그가 직접 나와서 단체교섭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데다, 사내 게시판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이 ‘이해진 선배님’이 직접 답해 달라고 요구하면서다.
 
 이 GIO는 이달 초 사내 게시판을 통해 “공개 토론회를 해보자”며 “이 토론회도 건강하게 투명하게 네이버답게 생중계로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직 구체적인 토론회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다. 다만 이미 단체협약이 잠정 합의된 상황이어서  토론회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협정 근로자’ 표현 대신 ‘공동협력의무’ 조항 신설
 이 GIO의 등장에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실제 네이버 내에는 ‘이 GIO의 공개 토론회 언급 덕에 단체협약 관련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다수다. ‘뜨거운 감자’였던 협정 근로자 부분은 우회 전략을 통해 해결됐다. 협정 근로자란 용어 대신 ‘공동협력의무’ 조항을 넣었다. 이를 통해 ‘노동권 존중을 전제로 네이버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한다’는 데 양측이 동의했다. ‘공동협력의무’를 지게 되는 직원은 전체의 13% 선이다. 극단적인 경우 파업에 이르더라도 직원의 13%는 정상 근무를 하기로 노사 양측이 약속한 것이다.
  
 이는 앞서 단체협약을 마친 카카오와 비슷한 방식이다. 카카오 역시 협정 근로자란 용어를 쓰지 않고 ‘비상시 협력’이란 조항을 통해 갈등을 비껴냈다. 두 회사 모두 파업에 이르더라도 서비스 제공에는 문제가 없도록 안전판을 만든 셈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넥슨 등 다른 기업에도 영향 줄 듯
 사실 협정 근로자는 다른 업종에도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기술원 연구직, 교환실 운용직, 안전 및 경비 등을 협정 근로자로 정했다. 유통 업체인 현대백화점에선 변전실과 기관실, 급수관계 근무자 등이 협정 근로자다. 철도나 수도 등 필수공익 사업장은 법에 따라 쟁의 행위가 제한된다. 
 
 넥슨이나 스마일게이트, 네오플 등 이미 올해 단체협약을 마무리한 IT 기업에선 ‘협정 근로자’ 관련 내용이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교섭에선 네이버와 비슷한 방식을 사 측이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공동성명은 우선 이번 주 중 직원들을 대상으로 단체협약 관련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노무법인 유앤의 김성중 노무사는 “협정 근로자란 결국 노사 간 이견으로 쟁의에 이르더라도 ‘회사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하지는 말자’는 일종의 신사협정”이라며 “(정보기술 업계에서도) 이 개념을 명문화하려는 경우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이수기ㆍ김정민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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