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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대한민국, 이러다 바나나공화국 된다

중앙일보 2019.06.17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마지막 잎새’의 작가 오 헨리는 1904년 단편소설집 『양배추와 왕들』에서 바나나공화국(Banana Republic)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당시 바나나를 주요 수출품으로 하는 중남미 온두라스 등이 정권과 결탁한 다국적 기업에 경제가 좌우되며,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썩은 바나나 같다고 비유했다. 이 말은 정부 운영이 엉망인 국가를 경멸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바나나공화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철강업체에 대한 고로(용광로) 조업 정지 행정처분이 대표적이다. 충남도청·전남도청·경북도청은 지역 내 현대제철(당진), 포스코(광양·포항)에 대해 유해물질을 배출했다는 이유로 10일간 조업 정지 행정처분을 내렸거나 예고했다. 철강업체들이 오염 방지 장치 없이 고로의 압력을 빼주는 역할을 하는 안전밸브(블리더)를 열어 대기를 오염시켰다는 환경단체들의 민원을 수용한 것이다.
 
고로를 4~5일만 가동하지 않으면 쇳물이 굳기 때문에 고로에 균열이 발생한다. 한국철강협회는 “1개 고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할 때, 같은 기간 약 120만t의 제품 감산이 발생해 8000억여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고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에서 100년 이상 적용하는 방식이다. 현재 기술로는 안전밸브를 사용하지 않고 고로를 가동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안전밸브를 개방했을 때 배출되는 가스는 중형 승용차 한 대가 하루 8시간씩 열흘  운행하며 배출하는 정도라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조업 정지 처분은 국내 일관제철소 문을 닫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철강 생산이 중단되면 조선·자동차·가전 등 주요 산업이 치명상을 입는다. 환경단체와 지자체는 ‘환경 근본주의’에 사로잡혀 조업 정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포스코 노조는 이에 대해 “조업 정지 처분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물론, 그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죽이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탈원전) 정책도 이해하기 힘들다. 원전이 국내 전력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지난해 말 기준)에 달한다. 정부는 2017년 기준 24기인 원전을, 2031년 18기, 2038년 14기로 줄일 계획이다. 대신 현재 7.6%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까지 30~35%까지 높일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현실을 무시한 이념 정책의 표본”이라고 비판한다. 국토가 좁고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태양광·풍력 등의 생산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는 생산 원가도 비싸다. 1㎾h당 발전 단가(지난해 말 기준)는 신재생이 173.38원으로 원자력(60.85원)의 3배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으로 수조 원의 순이익을 내던 한전은 지난해 1조 원대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500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한전의 적자 누적은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탈원전은 세계 추세에도 어긋난다. 세계는 온실가스 감축과 값싼 전기를 위해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원전 발전량은 전년보다 0.6% 증가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원전 4기를 재가동하며 원전 발전량을 71% 늘렸다.
 
이념에 치우쳐 현실을 외면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는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큰일 난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공자는 “잘못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過則勿憚改)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바나나공화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실패한 정책들을 고집하지 말고 실사구시(實事求是)에 나서야 한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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