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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문화의 건강 검진

중앙일보 2019.06.17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수요일 저녁 7시에 시작하는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근사한 공연장에서 저렴한 금액으로 일과를 끝내고 휴식을 하라 배려해주는 행사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해 함께 듣게 된 홍대씬에서 유명한 인디밴드의 공연이 강남에서 하루만 열린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예매해 놓은 것이 벌써 몇 개월 전이었습니다. 공연 날이 다가오자 정작 함께 보러 가려 했던 아이들은 각자의 사정이 바빠 어렵다 합니다. 오래된 친구와 지인에게 급하게 번개를 청해 함께 다녀왔습니다.
 
탄탄한 실력으로 꽤 많은 팬덤을 보유한 밴드는 처음 듣는 친구에게도 감동을 주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불려 나와 생경한 음악을 접하는 흔치 않은 기회는 친구의 바랬던 감성을 벼리게 한 듯했습니다. 콘서트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가진 뒤풀이 식사 자리에선 자연스레 지난 추억이 되새김 되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나 MP3 다운로드가 없던 시절에는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LP를 구매하거나 원하는 노래들만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주던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 신청곡을 청하면 배려심 깊은 DJ는 카세트에 녹음을 하라고 멘트를 잠시 멈추고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었습니다. 해외의 유명 밴드가 일본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면 가까운 한국에는 왜 들르지 않나 친구들과 하소연을 나눴던 기억 또한 선명합니다.
 
빅데이터 6/17

빅데이터 6/17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에 어릴 적 느낌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들이 먼저 생각나는 일상 중, 어릴 적 함께 음악을 듣고 나누던 기억을 다시 꺼낼 기회는 아련한 청춘의 기억을 지금의 삶으로 소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날 공연도 좋았지만 더욱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의 다양성이었습니다. 혼자서 온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옆자리가 한자리 비어있어 팔리지 않은 좌석인 줄로만 알았지만 처음 곡이 끝나고 무대 인사 시간에 들어온 청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를 채웠습니다. 아마도 업무를 마치고 바쁘게 이동한 직장인인 듯했습니다.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이와 성별,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기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올해도 정기 건강검진의 공지가 회사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초음파와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며 바쁜 일상 속 챙기지 못한 몸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 문화의 건강함은 어떻게 검진할 수 있을까요?
 
평일 근무를 끝내고 7시 시작하는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각자가 좋아하는 것이 있어 향유하는 사회는 건강합니다. 인디음악을 해도 생활을 할 수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10년 동안, 그리고 평생토록 지속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합니다. 상업음악이 아니어도 팬들의 지지로 생계가 가능하고, 창의의 대가가 온전히 지불받는 사회, 모두가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깊은 취향이 나름의 가치를 갖는 사회는 건강합니다. 생존을 넘어 취향으로 진화하는, 문화의 건강함의 지표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늘어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음이 뿌듯한 수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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