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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우리는 아직도 ‘생존수영’을 가르치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9.06.17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흉내만 내는 ‘익사 예방 교육’ 현장 
서울 S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14일 한강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생존수영 교육을 받았다. [변선구 기자]

서울 S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14일 한강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생존수영 교육을 받았다. [변선구 기자]

깊은 물에 빠진 상황을 상상해 보자. 낚싯배가 뒤집어졌거나 여객선이 좌초해 배에서 뛰어내려야만 하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고, 강으로 추락한 버스에서 간신히 창밖으로 탈출했을 수도 있다. 수영으로 해변이나 강가까지 이동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물에서 오래 버티는 게 목숨을 지키는 길이다. 수영을 제법 한다고 해도 최대한 체력 소모를 줄이며 물에 오래 떠 있는 게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수영장에서의 수영과 바다·강에서의 수영은 차원이 다르다.
 
익사 위기에 처했을 때의 몸 상태는 크게 두 가지다. 구명조끼를 입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최근에 일어난 헝가리 유람선 사고의 희생자들은 구명조끼를 챙길 새도 없이 변을 당했다. 위에서 말한 버스 추락 사고 같은 경우에도 구명조끼는 생각할 수도 없는 물건이다.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가거나 갯바위에서 미끄러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생존수영’ 교육은 구명조끼를 입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모두 가정한 것이어야 한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면 물에 떠 있다가 구조될 확률이 높으므로 더욱 필요한 것은 구명조끼를 입지 못한 경우에 대비한 교육이다. 그래야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게다가 갑자기 물에 빠진 사람은 대부분 평상복 차림이다. 수영복 입고 물안경 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청바지와 점퍼 입고 신발도 신은 채 물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게 진짜 생존법 교육이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 뒤 생존수영 교육이 도입됐다. 초등학교 3·4학년 학생들에게 1년에 2시간씩 2회, 즉 한 해에 4시간 동안 수영장에서 교육한다. 그리고는 교육 당국은 “생존수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생존수영을 배웠다”고 한다. 정말 가르치고 배웠을까?
  
물에 못 뜨는 학생 40%
 
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 참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44명의 학생 중 7명이 물이 무섭거나 몸이 아파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변선구 기자]

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 참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44명의 학생 중 7명이 물이 무섭거나 몸이 아파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변선구 기자]

한병서 대한생존수영협회 회장은 “초등학교 3·4학년 때 생존수영 수업을 받은 학생 중 30∼40%는 맨몸 상태에서 혼자 물 위에 뜰 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생존수영 강사 K씨는 “지역에 따라 편차가 상당히 있는데, ‘어린이 수영교실’ 등의 사교육 수업이나 부모로부터 수영을 배우지 못한 학생이 많은 지역에선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물에 뜰 줄 모른다.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에 겁먹는 아이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생존수영 교육은 학생들이 물 위에 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존수영 교육을 맡은 강사 입장에선 2시간의 수업 시간을 물에 못 뜨는 학생들을 위해 쓸 수는 없다. 누워뜨기, 이동하기, 페트병 안고 떠 있기 등 가르쳐야 할 내용이 있다. 결국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는 수업에서 ‘열외’된다. 생존수영 교육은 각 학교가 수영 또는 인명구조 관련 단체에 위탁하고, 각 단체가 강사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구명조끼 입고 받는 수업
 
생존수영 수업 중 상당 부분은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거나 이동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물론 필요한 공부다. 구명조끼를 제대로 입을 줄 알아야 하고, 물에 뛰어들 때 조끼가 벗겨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수는 없다. 구명조끼가 없는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지난 14일 서울 잠실 한강수영장 바로 앞의 한강에서 진행되는 생존수영 교육 현장에 가 봤다. 수영장이 아닌 강에서 실제 위급 상황을 가정하고 하는 교육이다. 5월 20일에 시작해 9월 27일까지 이어지는 이 교육에 서울시교육청 예산 5억원이 책정됐다. 서울시의 초등학교·중학교의 신청을 받아 교육한다. 지난해에는 4400명이 수업을 받았고, 올해는 6000명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에는 S초등학교 5학년생 44명이 그곳에 왔다. 학생들은 구명조끼 입고 입수하기, 여러 명이 구명조끼 입고 뜬 상태로 둥근 원 만들기(구조대의 눈에 띄기 좋게 하는 것) 등의 생존술을 배웠다. 위급 상황을 맞이했을 때 크게 도움이 될 교육 내용이었다. 하지만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의 교육은 단 1초도 실시되지 않았다. ‘조희연 교육감의 공약에 따라 도입된 실제 상황에 대비한 교육’이라는 서울시교육청의 설명은 ‘반쪽’만 맞는 것이었다. 그나마 서울시 학생들이 수영장이 아닌, 강이나 바다에서 정식 수업으로 생존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6000명은 서울시 전체 초등학생·중학생의 1%도 되지 않는다.
 
44명의 학생 중 7명은 이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서(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등이 열외 사유였다. 한 학생은 “그냥 가라앉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 학생들은 교육장 한쪽에 앉아 다른 학생들이 교육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엉터리 교육 프로그램
 
교육부가 시·도 교육청에 제공한 ‘수영 교육 매뉴얼’에 생존수영 교육 내용도 들어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표준 프로그램은 총 6단계로 돼 있다. 이에 따르면 누워뜨기를 할 수 있고, 5m를 이동해 구조물을 잡을 수 있으면 교육 목표 달성이다. 구명조끼를 입은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이 구분돼 있지 않다. 평상복 차림으로 물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교육 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다. 유동균 명지대 교수(스포츠레저교육 전공)는 “우리 생존수영 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에 대한 연구나 준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시작됐다. 그렇다 보니 수업을 하는 강사에 따라 내용과 방법이 제각각이다. 전문가들 의견을 모아 구체적 교육 내용과 방법을 제공하는 표준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교육 당국자들에게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귀담아듣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안전협회 교육위원장인 유 교수는 “외국에선 이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흉내만 낸다”고 지적했다.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일본의 생존수영 교재 표지다. ‘생명을 지키는 착의영(着衣泳)’이라고 제목이 적혀 있다. 착의영은 평상복을 입고 하는 수영을 말한다. [변선구 기자]

일본의 생존수영 교재 표지다. ‘생명을 지키는 착의영(着衣泳)’이라고 제목이 적혀 있다. 착의영은 평상복을 입고 하는 수영을 말한다. [변선구 기자]

3년 전 한국 EBS가 만든 영상 ‘생존수영을 아시나요?’는 “네덜란드·독일·프랑스·일본 등 많은 나라의 어린이들은 평소 입던 옷과 신발을 신고 수영을 배운다”고 설명한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 있다. 유동균 교수는 “일본에선 생존수영이라는 용어 대신에 착의영(着衣泳·일상복을 입고 하는 수영)이라는 단어를 쓴다. 갑자기 당한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조난 시에 신발과 옷은 부력을 얻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생존수영 수업 때 옷 입은 상태로 물에 들어가게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평상복이 아니라 발수력이 좋은 ‘래시가드’를 준비하도록 한다.
 
수업 시간도 큰 차이가 있다. 영국·독일·일본 등에선 초등학교 때 2년 이상 매주 또는 격주로 수영 교육을 받는다. 한국에선 초등학교 3·4학년 때 한 해에 10시간(4시간씩은 생존수영)이 교육과정에 정해진 수업 시간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담당 장학사는 “우리의 수영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영 시설과 예산 부족 등의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우리나라 초등학교 수영장 보급률은 1%대인데, 일본은 90%가 넘는다. 국민이 생존수영을 익히게 하려면 우선 수영장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는지 알아본다→비슷한 제도를 만든다→준비 없이 시행하다 보니 겉은 비슷한데 속은 다르다→‘흉내만 낸다’는 비판이 제기되면 ‘여건 탓’을 한다→국민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마음을 달랜다. 익숙한 패턴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 뒤 수난(水難)으로 인명이 희생되면 온 나라가 ‘패닉’ 상태가 된다. 외교부 장관이 외국 현장으로 날아가고, 대통령이 구조대 급파를 지시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하기로 다짐했던, 안전을 지키는 일들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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