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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싱가포르행 끌리는 부자들

중앙일보 2019.06.17 00:02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 15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 미국 영주권에 관심 있는 30여명만 초청했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가족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까지 참석자는 다양했다. 70대 자산가는 “당장 떠날 생각은 아니지만 국내 경제가 불안하고 세금 부담은 갈수록 커져 이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만 5개였다.
 

이민설명회 찾는 자산가 늘어
미국, 6억 이상 투자하면 영주권
싱가포르는 상속세 없어 선호
“자본유출 막게 기업환경 개선을”

박승안 우리은행 TC프리미엄 강남센터장은 “높은 세금을 피해 이민을 고민하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며 “고액 자산가의 경우 자녀들이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취업했기 때문에 부동산 등 재산만 정리되면 한국을 떠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민을 고려하는 행선지로 핫하게 떠오른 곳이 미국과 싱가포르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미국 행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은 투자이민(EB-5)이다. 학력과 영어점수, 투자액 등을 점수로 매기는 호주나 캐나다와 달리 50만 달러(약 6억원)를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고려이주공사의 정이재 이사는 “9월 이후 최소 투자금액이 최대 135만 달러까지 오르고 투자 지역도 제한될 수 있어 그 전에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이민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531명이다. 1년 만에 336명 늘었다. 중국, 베트남, 인도에 이어 4위였다.
 
투자이민 신청자 상당수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 미국 행을 고민한다. 부모 중 한 명이 영주권을 받으면 배우자는 물론 21세 이하의 자녀도 함께 영주권이 발급되기 때문이다. 사업가 김 모(51)씨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으로 취업이민이 어려워진 탓에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들을 위해 투자이민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가들이 선호하는 곳은 싱가포르다. 낮은 세율 때문이다. 상속·증여세는 아예 없다. 법인세도 한국보다 낮은 17% 수준이다. 최대 50%에 이르는 한국의 상속세 부담을 피하려는 국내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세계 백만장자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도시다. 치안과 교육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덕이다. 자산리서치업체 뉴월드웰스와 아프라시아은행의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00명의 백만장자가 싱가포르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싱가포르 영주권 취득 경쟁은 치열하다. 외국인 영주권을 받으려면 새로운 기업이나 펀드에 250만 싱가포르 달러(22억원)를 투자해야 한다. 사업 능력도 따진다. 투자이민 대행 업체 담당자는 “적어도 연간 5000만 싱가포르 달러 매출을 올린 사업체를 운영한 경험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서류가 있어야 이민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을 고려했다가 예상치 못한 복병에 한국에 주저앉기도 한다. 지난해 도입된 국외전출세다. 법인을 운영하는 대주주(시가총액 15억원 이상 보유)가 이민 등으로 한국을 떠날 때 보유한 주식에 세금을 물리는 제도다. 양경섭 세무법인 서광 세무사는 “세율(20%)이 높은 데다 양도세를 내려면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해 이민 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제도만으로 ‘한국 탈출’을 막을 수는 없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고용 비용은 오르고 투자는 움츠러들면서 국내에서 기업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이민’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자본 유출을 제도적으로 막기보다 정부가 나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는 “중견기업 CEO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전에 공익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 등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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