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여기가 대구 수성구에서 가장 번화가라예. 예전엔 새벽 4~5시까지 환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10시면 불이 다 꺼져요. 전라도 아니면 충청도 윗쪽이나 경기가 좋지, 대구는 아주 경제가 엉망이라예."
대구에 간 기자는 일부러 짬을 내 택시를 타봤다. 경기 침체에 대한 불만이 컸다. 목소리의 톤은 더 높아졌다.
“얼마 전 한 아지매는 장사가 안 돼 가게를 내놨는데, 그것도 안 나간다고 택시에서 울어요. 문재인 정부가 일부러 그런 건지, 어쩌다보니 그런 건지 모르겠대요.”
 
대구 민심이 정부ㆍ여당에 등돌렸다는 소문은 서울에도 들려왔지만, 예상보다도 싸늘했다. 이 싸늘함을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대구(수성구갑)에서 민주당 당적으론 처음으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그는 싸늘한 분노를 회피하지 않는다. 여당 후보를 뽑아준 시민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구 시민의 마음을 되돌리려 동분서주하는 그를 지난 13일 밀착마크했다.
 
김부겸 의원이 지난 13일 상이군경회 대구지회를 방문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김부겸 의원이 지난 13일 상이군경회 대구지회를 방문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김 의원은 행전안전부 장관직을 마친 두 달 전부터 거의 대구에 살다시피했다. 집에서 아침 7시에 나와 밤 10시에 들어간다. 이날 공식 일정만 6개, 비공식 일정까지 합하면 10개다. 수행비서는 “오늘은 좀 여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총선이 10개월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분투하는 국회의원은 드물다. 그만큼 대구 상황이 여당에게 불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구 민심이 20대 총선 때와 달라졌나.
대구 시민의 자존심 같았던 박근혜 정권이 성공하지 못했지 않나. 그래서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생각보다 잘 못한다라는, 그러니까 결국 당신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니까 의기소침했던 분들이 입을 떼기 시작한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 문제인가.
그 문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대구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의 도시들은 어려움이 많다. 그런 데다가 SK하이닉스 경우에서 봤듯이 기업이 고급 기술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수도권을 안 떠나니 그런 불만도 있다.
 
김부겸 의원이 지난 13일 대구 여성지도자 대상 강연을 앞두고 차량에서 강연 준비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김부겸 의원이 지난 13일 대구 여성지도자 대상 강연을 앞두고 차량에서 강연 준비를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이날 김 의원은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상이군경회, 파독연합회, 재향군인회, 무공수훈자회 등을 방문했다. 그는 시민을 만나기 전엔 휴대전화를 비서에게 맡겨둔다. 대화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다. 다양하고 복잡한 요청이 적지 않았지만 답변은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그건 조례를 바꾸는 문제이니 시와 얘기해보겠습니다”, “보훈처 소관이니 정부에 건의해볼게요”하는 식이다. “구체적인 요청인데 두루뭉술하게 답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민주당 후보로 대구에서 당선된 비결이었다.
 
대구의 민주당 의석이 두 석이다. 내년 총선에서 이보다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나.
더 가져와야 한다. 이 도시의 미래 때문이다. 한국당이 어필하는 방식으로 정권에 대한 분노만으로 선거를 하면 전국적으로 보편성을 띄는 데 한계가 있다. 이분들 자꾸 의리 지킨다고 하는데 무엇을 위한 의리냐. 정치적으로 고립되면 그 다음에 누가 책임을 지나. 이렇게 호소할 거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그림을 한번 그려보자. 당신들이 다양한 정치적인 자원을 갖고 있는 게 유리한지 아니면 어떤 한 쪽에 올인을 하는 게 옳은지를 판단하시라.’
 
대구는 거의 다음 대통령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로 생각한다던데.
에이, 그거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범보수의 새로운 중심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 분이 ‘대구ㆍ경북의 미래를 열어줄 것’ 정도는 돼야 열렬한 지지로 이어질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김부겸 의원은 지난 13일 방문한 한국파독연합회 대구지회를 방문했다. 조충래 대구지회 부회장은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을 가슴팍에 넣고 다닌다. [조충래 부회장 제공]

김부겸 의원은 지난 13일 방문한 한국파독연합회 대구지회를 방문했다. 조충래 대구지회 부회장은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을 가슴팍에 넣고 다닌다. [조충래 부회장 제공]

김 의원은 16ㆍ17ㆍ18대 총선에선 경기도 군포시에서 당선됐다. 그리곤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의 수성구갑으로 지역구를 바꿨다. 수성구는 대구 안에서도 특별한 동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에 오면 수성관광호텔 스위트룸에 머물렀다고 한다. 수성구에 펼쳐진 들판이 보이는 방이었는데, 그 풍경을 보며 수성구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개발 이후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으로 불릴 만큼 부유한 동네가 됐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주민이 많아졌다. 박 전 대통령이 아끼는 곳은 이제 대구에서 가장 ‘탈(脫) 보수화’된 곳이라는 게 김부겸 의원 측의 설명이다.
 
대구로 지역구 옮길 때 어떤 결심이었나.
내가 신뢰하는 정치인 중 정장선 전 의원(현 평택시장)이 있다. 이 분이 당시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도대체 부끄럽고 미안해서 더 이상 못 앉아 있겠다’고 그러더라. 나도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큰 사고 안 치면 군포에서 국회의원 한두 번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 우리 당의 불모지인 대구에 연고가 있으니까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자랑스러운 선배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준 감동을 다시 한번 해볼 필요도 있지 않나 싶었다.
 
김부겸 의원이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 [김 의원 페이스북]

김부겸 의원이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 [김 의원 페이스북]

김 의원은 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2011)에서 1995년 국민통합추진회의에서 함께 활동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인상을 적었다. ‘확실히 노무현에게는 인간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저돌성 또한 무서울 정도였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또 다른 바보 노무현’이라고 평가했다.
아유, 선생님(남 전 장관)이 그건 너무 과찬하신 거다. 노 전 대통령의 다이내믹스(활력) 같은 건 내가 정치를 오래하다 보니까 부족하다. 나 스스로 노 전 대통령한테 부러운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런 열정이 사오십대에 다 형성됐던 것 같은데 나는 벌써 60살이 넘었다.
 
지역주의 타파 외에 뚜렷한 정치 철학을 못 보여줬다는 평도 있다.
정치 철학이라기보다는 지지자들한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보여달라는 거 아닌가. 나는 소위 공존을 주장하기 때문에 항상 그런 부분에서 불리하다. 상대편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게 아니라면 주장의 일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내 정치 철학이다. 상대편은 틀렸고 우리는 절대선이라고 해주기를 바라는데, 그런 정치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본다. 예를 들면 이번에 4대강 보 파괴 같은 문제다. 보 파괴가 어떤 환경적인 효과가 있나? 관리하는 데 돈이 들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행정하는 사람들이 판단하면 된다. 그렇게 몰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적어도 그 주변의 농민들 몇 사람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김부겸 의원이 지난 13일 수성구재향군인회를 방문해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김부겸 의원이 지난 13일 수성구재향군인회를 방문해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김 의원은 수성구재향군인회와 간담회를 한 뒤 계단을 내려오며 벽에 걸려 있는 봉사활동 사진을 가리켰다.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반공 등의 이슈 때문에 이런 단체들을 멀리한다. 하지만 사회 봉사의 중심에 이런 단체들이 있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박정희 정권의 산물이라며 마을마다 새마을기 내리는 것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넌센스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어떻게 생각하나.
적폐청산은 필요하다. 지금 2년이 지났으니 망정이지만 국가의 모양이 참 엉망이었다. 문제는 빨리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이 지금 답답해하시는 거 아닌가. 그게 문제다. 하지만 적폐청산 자체를 안 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를 못한다.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크다.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정책 목표와 자영업,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느끼는 절박함 사이에 좀 더 촘촘하게 사다리를 놓아줘야 한다. 정책적인 선한 의지만 있어서는 현실이 따라오지 못한다. 나는 의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서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요구를 정부에 해야 한다고 본다.
 
김부겸 의원은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13대 총선에서 김 의원의 선거 벽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김부겸 의원은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13대 총선에서 김 의원의 선거 벽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김 의원은 파독연합회와 만나서 “국회에서 저보다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이 문희상 국회의장 포함해서 10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는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정치 인생 32년차로, 이제는 유력 대권 주자의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장관 재임 중에 민주당 대표 선거 출마설도 돌았다.
 
지난해 당 대표 출마 의지가 강했다고 알고 있다.
개각이 됐으면 편한 상황이었지만, 그것도 없는 상태에서 마치 개인기업 CEO처럼 장관직을 집어던지고 나의 개인적 정치 행로를 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도 예의지만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권에 대한 질문을 해보자.
그거는 지금 하지 말자. 내가 대구에 어느 정도 예의를 다할 부분을 하고 난 뒤에 하자.
 
TK(대구ㆍ경북)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김 의원이 대권 도전 선언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나 혼자 판단할 일이 아니다. TK 후보자들이 내년에 선거에 뛰면서 그분들한테 필요하면 하나의 전술로 고려할 수 있어도, 지금 개인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