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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와 다도, 김민섭 작가와 달리기… 장르문학 매개로 느슨한 연결을 꿈꾸다

중앙일보 2019.06.16 04:00


"직장 동료와는 시시한 이야기라도 엄청 신경 쓰이죠. 일로 얽힌 강력한 연결에는 아무 이야기나 맘대로 할 수 없잖아요. 조심스럽고. 그런데 취향으로 우연히 만난 느슨한 연결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냥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그러다 보면 번뜩이는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오랜 고민이 해결되기도 해요."
 "요즘 센스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보고 들은 것이 쌓여야 센스도 생기는 법이잖아요. 지금까지 한 적이 없는 일을 사소하게나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남성이 여성지를 사본다든가, 출근길 코스를 매일 바꿔본다거나, 장르문학부흥회처럼 색다른 모임에 참여해서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말이죠."


장르문학출판사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장르문학출판사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올해로 다섯 번째, 장르문학부흥회를 준비하고 있는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부흥회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느슨한 연결’은 미국의 경제사회학자 마크 그레노베터가 1973년 직업찾기 논문을 통해 발표한 개념이다. 그는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취업에 필요한 긴요한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를 조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주 보는 가족·친구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을 통해 접한 정보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발견하고 ‘느슨한 연결의 힘’을 주장했다.
 
김 대표는 “책을 매개로 모임을 만드는 독서클럽 트레바리,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공간을 공유하는 취향관 등을 보면, 이제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관계에 지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온라인이 느슨한 연결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지우고 싶은 과거까지 탈탈 털리는 초강력 연결”이라고 말했다.
 
장르문학부흥회는 추리·무협·판타지·SF 등 ‘장르문학’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가·편집자·독자들이 만나는 느슨한 모임이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무협부터 SF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거짓말이다』 등으로 유명한 김탁환 소설가, 국내 SF 계의 대부이자 모험가로 알려진 서울 SF 아카이브의 박상준 대표 등이 주축이 돼 부흥회를 이끌었다.
 
 3회 장르문학부흥회는 교하도서관에서 열렸다.

3회 장르문학부흥회는 교하도서관에서 열렸다.

장르문학부흥회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대독자 팬서비스다. 사진은 한강유람선에서 열린 4회 장르문학부흥회에서 김탁환 작가가 웨이터로 변신, 독자들에게 음료를 서빙하고 있는 모습.

장르문학부흥회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대독자 팬서비스다. 사진은 한강유람선에서 열린 4회 장르문학부흥회에서 김탁환 작가가 웨이터로 변신, 독자들에게 음료를 서빙하고 있는 모습.

 서울 근교 폐교에서 열린 2회 장르문학부흥회. 밤을 꼬박 지새운 독자들과 함께 한 좀비 컨셉의 단체사진.

서울 근교 폐교에서 열린 2회 장르문학부흥회. 밤을 꼬박 지새운 독자들과 함께 한 좀비 컨셉의 단체사진.

평소 만나고 싶은 작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작가와 조를 이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부흥회를 기획한다. 사진은 모두 북스피어 제공

평소 만나고 싶은 작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작가와 조를 이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부흥회를 기획한다. 사진은 모두 북스피어 제공

 
열리는 장소도 프로그램도 독특하다. 그동안 폐교에서 다 같이 캠핑을 하거나 폐관 이후의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고 유람선을 빌려 행사를 진행했다. 올해는 개인의 성향을 분석해 여행코스를 제안하는 여행 스타트업 카일루아와 함께 제주여행과 강연을 묶는 새로운 방식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김 대표는 “올해 강연자로 김민섭 작가가 합류했어요. 김 작가는 장르문학에 혜성처럼 등장한 김동식이라는 새로운 작가를 등단시킨 기획자이기도 하죠. 깜짝 게스트로 안전가옥의 김홍익 대표도 나와요. 문학적 상상을 넘어 콘텐츠 산업으로 본 장르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예정이에요”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장르문학부흥회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김봉석 평론가와 남한산성 언저리 백숙집에서 밥을 먹다가 이야기가 나왔는데, 순간 제가 처음 출판사에서 일했을 때, 동경하던 작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좋아했던 생각이 났죠. 독자들도 글로만 보던 작가를 직접 만나 이런저런 경험을 함께하면 지금의 나처럼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는 것 같아요.  
제 모토가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거든요. 그래서 강연은 깊어서 재미있고, 프로그램은 신나서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죠. 그리고 해마다 참가하는 참가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어요. 올해는 어떻게 더 재미있게 해드릴까 고민하다 보면 이상하게 판이 점점 커져요.(웃음)  
 
북스피어는 1인 출판사로 시작했고 여전히 규모 있는 출판사는 아닌데 힘들진 않나요.  
10여년 출판사를 운영하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느슨한 관계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일과 얽힌 밀접하고 강력한 관계는 일이 사라지는 순간 멀어지지만, 한 달에 한 번이나 볼까 말까 한 동호회 사람이나, 졸업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창, SNS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사건·사고와 상관없이 남게 되더라고요. 위로가 되는 관계랄까. 그런데 그런 관계는 누가 만들어주지 않으면 잘 안 생기니 힘들어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 장르문학부흥회의 특징은 뭔가요.
하이라이트는 작가와 함께 반나절 정도 제주를 여행하는 거예요. 개인의 성향을 분석해 여행 코스를 짜주는 여행 스타트업 카일루아가 코스를 추천했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추천받은 코스는 오프로드 투어, 달빛서점, 친봉산장 등이에요. 김봉석 선생님 코스에는 제주 로컬 술 만들기가 있고 김탁환 선생님 코스에는 다도가 들어있어요. 우리끼리 제주에 왔다면 절대 생각하지 못한 장소들이죠. 함께하는 분들도 특별한 경험이 될 거에요.
 
7월 12,13일 제주에서 열리는 5회 장르문학부흥회는 작가와 조를 이뤄 제주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여행 스타트업 카일루아가 김탁환, 김봉석, 박상준, 김홍민, 김민섭 강연자들의 성행을 분석해 제주 여행 코스를 제공했다.

7월 12,13일 제주에서 열리는 5회 장르문학부흥회는 작가와 조를 이뤄 제주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여행 스타트업 카일루아가 김탁환, 김봉석, 박상준, 김홍민, 김민섭 강연자들의 성행을 분석해 제주 여행 코스를 제공했다.

 
특히 주목하면 좋을 강연자가 있나요.
박상준 대표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정말 재미있어요. 일단 자료 준비가 엄청나고요. 강연도 엄청 잘하죠. 무엇보다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강연을 듣다 보면 SF 스토리가 막 떠오르기도 해요. 이번 강연의 주제는 50년 전 우주로 떠난 한국인이죠. 주제부터 재미있어 보이죠? 김봉석 평론가 이야기도 흥미로워요. 민담과 설화가 어떻게 도시 괴담으로 번성했는지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죠. 김탁환 선생님은 늘 소설의 본질에 대해 환기시켜 주니까 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새겨듣게 되는데, 이번엔 소설 속 인물 사벨·조르바·달문을 비교하며 자유로운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예정이죠. 올해는 김민섭 작가와 안전가옥의 김홍익 대표가 참여해 장르출판과 산업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겁니다. 이렇게 말하니 모든 강연을 추천하고 있네요(웃음).
 
장르문학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출판으로 보면 장르는 작은 영역이죠. 그런데, 콘텐츠 산업으로 보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사람들이 스토리에 반응하는 건,  현실과 상상의 교묘한 시점 때문이고, 장르는 이 부분을 잘 엮는 스토리거든요. 
 
어떤 분들이 참여하면 좋을까요.  
장르문학부흥회라고 하면, 장르문학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들 생각하는데.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일상에서 벗어나 어릴 적에 즐겨 읽던 셜록 홈스를 떠올리며 즐거운 상상을 하고 싶은 분이나, 평소 만나고 싶은 작가와 대화하고 밥 먹고 여행하고 싶은 분들이 오면 돼요.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지도 말할 필요도 없는 그냥 느슨한 연결이에요.
 
오는 7월 12·13일 양일간에 제주에서 열리는 제5회 장르문학부흥회 참여신청은 지식콘텐츠 폴인(fol:in)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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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옥 황정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