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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정보 기울어진 운동장서 ‘봉’ 안 되려면

중앙일보 2019.06.16 00:03
도덕적 해이와 ‘마부와 말’… 회사 내용 잘 모르면 투자하지 말아야
 

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어느 마을에 욕심 많은 마부가 살고 있었다. 마부는 열심히 말을 돌보면서도 어떻게 하면 주인에게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낼까 궁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부는 한 가지 꾀를 냈다. 주인이 말에게 먹이라고 준 보리를 조금씩 빼돌려 다른 곳에 팔면 돈을 벌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마부는 말의 먹이를 팔아서 뒷주머니를 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마부가 보리를 빼돌리자 말이 먹을 양이 부족해진 것이다. 날이 갈수록 말이 점점 야위어 갔고 털에 윤기가 사라졌다. 만약 주인이 이렇게 된 말을 본다면 먹이를 제대로 먹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금방 들통날 것이 뻔했다. 마부는 보리를 빼돌려 팔아먹은 것을 벌충하기 위해 하루 종일 말을 손질하고 빗질해 털에 윤기가 도는 것처럼 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열심히 빗질만 한다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결국 지나치게 빗질 당하는 것을 참다 못한 말이 마부에게 한마디 했다. “이것 봐요, 마부님. 나를 진심으로 때깔 좋은 말로 만들고 싶으면 내 먹이나 팔아먹지 마세요.”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부는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중간에서 남의 몫을 가로채 자기 이익으로 만드는 행위를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도덕적 해이는 여러 사람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 비대칭이 부른 도덕적 해이
주식투자는 정보를 무기로 하는 싸움이다. 정보를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늘 이기게 돼 있다. 그래서 시장은 정보가 모든 참여자에게 골고루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불균형이 발생하게 된다. 시장의 속성이 그렇다. 자유 경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이다 보니 참여자들 사이에 정보 획득의 우열이 발생하게 된다. 이른바 정보 비대칭 현상이다. 정보가 비대칭의 구조를 이루게 되면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정보를 적게 가진 사람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발생한다. 심지어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정보를 적게 가진 사람을 속여 이익을 빼앗기도 한다. 시장이 정보의 비대칭 현상을 보이면 이처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도덕적 해이의 피해자는 언제나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자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주식시장에서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 사례는 ‘작전 세력’이다. 이들은 주식시장에 헛소문이나 유언비어를 퍼뜨려 정보에 목말라 하는 순진한 일반 투자자들을 주식매매에 가담토록 한 다음 주가가 크게 오르면 팔아 차익을 챙기는 수법을 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작전은 보통 대상 주식을 아주 싼 가격에 매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거래량을 별로 흔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게 늘리지 않은 상태에서 5~6개월에 걸쳐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중간에 더 싼 값에 매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주가 하락을 일부러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겁을 먹고 주식을 싼 가격에 내놓게 되는데, 이 때가 작전 세력이 그 주식을 싼 가격에 대거 매수하는 기회가 된다.
 
 
그런 한편에선 호재나 테마를만들어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해 ‘이 종목은 얼마 오를 것’이란 소문을 퍼뜨린다. 소문을 유포하는 경로도 다양해 과거엔 유명 포털사이트의 증권 관련 게시판·카페·블로그를 활용했다면 최근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방이 주된 경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때가 무르익었다 싶으면 매수 호가를 높이기 시작하고 자기들끼리 매수와 매도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자동 매매 시스템을 설치해 주식 1~2주씩을 계속 사고파는 단주 매매가 많이 활용되는 수법이고, 상승 중인 종목에 매도 주문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매수 주문을 상한가로 내는 ‘상한가 굳히기’ 등의 수법도 동원된다. 또 여럿이 유통 주식이 적은 일명 ‘품절주’를 대거 매집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거래량이 폭등하게 되고 운이 좋아 언론에 관련 주식에 관한 홍보성 뉴스가 나가게 되면 최고의 시나리오가 저절로 작성된다. 이렇게 작전 세력이 슬슬 밑밥을 깔아놓으면 개인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들게 되는데, 이때가 판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기 위한 출구 전략을 쓸 타이밍이 된다. 결국 주가가 폭락하고 소문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고, 나중에 추격 매수에 가담한 투자자들만 큰 손해를 보게 되면서 작전이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일반 투자자들이 조심해야 할 작전주의 특징은 무엇일까. 대부분 작전주들은 일단 자본금액이 많지 않다. 자본금이 작아야 물량 확보가 쉬워 작전을 진행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특징은 대주주의 지분율이 상장기업의 평균 수치보다 높아 상대적으로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수가 적다. 또 실적이 좋지 않아 일단 주가 수준이 낮은 것도 작전주일 확률을 높인다. 이들 주식은 코스피나 코스닥 지수가 하락할 때 유달리 눈에 띄게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 업계에선 상장사가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내부정보를 흘려주는 것이 오래된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상장기업과 증권사 애널리스트,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의 삼각 유착관계는 이렇게 형성된다. 상장사가 실적이나 증자 등의 경영정보를 공시하기 전에 애널리스트들에게 미리 알려준다.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미공개 투자정보를 펀드매니저에게 제공한다. 펀드매니저는 해당 정보를 통해 개인이나 외국인에게 앞서 주식을 매수하거나 매도해 높은 수익을 거두게 된다.
 
 
이들의 부당 거래는 시장 왜곡으로 이어져 대부분 주식투자자들의 피해를 부른다. 이게 표면으로 부상한 것이 2014년 CJ E&M의 실적 정보 사전 유출 사건이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자기 회사를 담당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곧 발표할 3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에 크게 못 미친다고 알려줬다. 애널리스트들은 계열사나 친분이 있는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들에게 이를 알려줘 미리 CJ E&M 주식을 매도할 수 있게 했다. 정보를 미리 입수한 기관투자자들은 실적 악화와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를 몰랐던 일반 투자자들은 주가가 급락해 손해를 봤다.
 
 
투자회사 경영자의 자질까지 파악해야
시장에서 정보의 약자 위치에 있으면 결코 좋은 투자 결과를 얻지 못한다. 주식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이 고착화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심판관인 정부가 제도 개선이나 감독 강화로 정보의 약자인 일반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다. 결국 정보 비대칭 현상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봉’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가장 잘 아는 산업과 기업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잘 안다는 것은 그 기업을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그 회사는 어떤 사업을 하며,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팔고, 원가구조는 어떠하며, 재무상태의 건전성과 경영자의 자질은 합리적인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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