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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 악기가 건너갔다···파이프오르간의 시작은 한국"

중앙일보 2019.06.15 11:00
“동이족(東夷族)의 악기 ‘쉥’이 중국에서 생황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악기가 11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져 그리스의 오르간 등과 결합해 파이프오르간의 조상이 되었죠.”  
 

[눕터뷰] 국내 유일 오르간 짓는 홍성훈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씨가 경기도 양평 자신의 작업실에 누웠다. 금속 파이프와 목재, 도구들로 빼곡하다. 최정동 기자

홍성훈씨가 경기도 양평 자신의 작업실에 누웠다. 금속 파이프와 목재, 도구들로 빼곡하다. 최정동 기자

지난 6월 10일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서 만난 오르겔바우 마이스터(Orgelbau Meister) 홍성훈(60)씨는 놀랍고도 신기한 이야기를 했다. 유럽 바로크 시대 악기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파이프오르간이 사실은 우리의 직계조상인 동이족의 악기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그는 선조들이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대나무를 묶어서 부는 악기를 사용했으며, 이것이 중국에서 생황으로 발전하고, 비단길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가 그리스 과학자 크테시비오스가 발명한 수력(水力) 오르간 등의 영향을 받아 파이프오르간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오르간이 유럽의 종교, 문화와 더불어 발전해 300년 전에 붐을 이루고 다시 아시아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질적으로 느껴질 뿐 원래 우리의 악기라고 주장했다.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사람이다. 최정동 기자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사람이다. 최정동 기자

 
오르겔바우 마이스터는 독일 정부 공인 자격이다. 독일어 Orgel은 파이프오르간, Bau는 ‘짓다’, Meister는 명장이다. 홍성훈씨는 국내 유일의 파이프오르간 건축가다. 20대에 독일로 건너가 우연히 오르간에 꽂혀 12년의 각고 끝에 마이스터가 되었다. 그는 독일에 머물지 않고 1997년 귀국했다. 한국적인 오르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이스터는 영화 ‘인터스텔라’ 이야기부터 했다.  
 
“우주선이 미지의 세계로 날아갈 때 배경 음악이 흐르지요. 무슨 소리인지 인식도 못 하고 그냥 우주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음향을 만든 한스 짐머가 그 장면에 쓴 것은 파이프오르간입니다. 오르간은 알고 보면 피리를 다발로 묶은 것입니다. 우주를 표현하는데 왜 피리를 썼을까요. 인간이 처음 만든 악기, 태고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뭇잎을 접거나 갈대를 꺾어 불어도 소리가 나지요. 그것을 수백, 수천 개 묶은 것이 오르간입니다. 이런 소리를 바이올린, 트럼펫이 낼 수 있을까요? 어림없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은 피리 다발이다. 금속 파이프에 바람이 흐르는 '입술'이 보인다. 최정동 기자

파이프오르간은 피리 다발이다. 금속 파이프에 바람이 흐르는 '입술'이 보인다. 최정동 기자

“우리 국악기에 부는 악기가 유난히 많습니다. 한국인이 피리를 좋아한다는 것이죠. 풍금도 좋아합니다. 오르간과 발성 구조가 같은 이 악기가 우리 정서에 잘 맞습니다. 고향인 유럽에서는 전멸했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악기가 되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를 풍금으로 치면 온갖 감성이 피어오르지 않습니까.”

 
 한국의 현존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725년, 통일신라) 상원사 동종에 생황(오른쪽)과 공후를 연주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생황은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연주하던 악기다. 최정동 기자

한국의 현존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725년, 통일신라) 상원사 동종에 생황(오른쪽)과 공후를 연주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생황은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연주하던 악기다. 최정동 기자

최근에 파이프오르간과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도 있었다. 2017년 11월 제주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총회가 열렸는데 ‘파이프오르간 제작’이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하필이면 한국에서 열린 총회에서 파이프오르간 제작이 세계가 보호해야 할 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마이스터는 자신이 한국에 들어와 파이프오르간을 한창 짓고 있는 시기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우연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파이프오르간 내부에 설치되는 목제 부품. 곡선을 따라 공기가 흘러 금속 파이프를 울린다. 완성되면 볼 수 없는 파이프오르간 부분이다. 최정동 기자

파이프오르간 내부에 설치되는 목제 부품. 곡선을 따라 공기가 흘러 금속 파이프를 울린다. 완성되면 볼 수 없는 파이프오르간 부분이다. 최정동 기자

 
구멍을 통해 바람이 목제 통 안으로 들어가 압축되었다가 금속 파이프를 흐르며 소리를 낸다. 통의 크기가 다양하다. 최정동 기자

구멍을 통해 바람이 목제 통 안으로 들어가 압축되었다가 금속 파이프를 흐르며 소리를 낸다. 통의 크기가 다양하다. 최정동 기자

마이스터는 조선 시대 실학자 담헌 홍대용 이야기도 했다. 홍대용은 18세기 청나라 수도 연경(베이징)에 갔을 때 천주교회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했다. 담헌은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인물로 거문고와 비파 등 악기를 능숙하게 다뤘다. 그랬으니 파이프오르간도 잠시 살펴보고는 바로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담헌은 중국을 다녀온 뒤 저술한 『을병연행록』에 “성상께서 명하시면 똑같은 악기를 짓겠다”고 기록했다. 홍성훈씨는 지금은 한국 땅에서 파이프오르간 짓는 사람이 자기뿐이지만, 300년 전 조선 사람이 오르간을 짓겠다고 말한 사실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홍성훈씨는 독일에서 처음 오르간 소리를 들은 순간을 회고했다. 수많은 천사가 하늘에서 소낙비 같은 소리를 쏟아붓는 장관! 비는 온 세상을 잠기게 할 것 같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파이프오르간을 전혀 모를 때였는데 소리만 듣고 큰 감동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오르간을 배우면서 소리에 대한 회의가 싹텄다. 독일 오르간의 소리는 명쾌하고 칼날 같았다. 그는 싫었다. 아무리 웅장하다 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는 자신의 소리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오르간을 알기 전 그는 대금, 장구, 경기민요 등 한국음악을 익혔었다. 특히 대나무 피리인 대금은 오르간 소리를 찾는데 계시를 주었다. 파이프오르간은 여러 악기의 소리를 갖추고 건반 옆에 설치하는 스톱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 홍성훈씨는 편종, 편경, 아쟁, 생황, 피리, 나각 등의 한국 악기 소리를 내는 오르간을 꿈꾸고 있다.  
 
오르간의 수많은 부품 중 건반과 연결되는 부분. 파이프오르간은 건반악기처럼 생겼으나 발성 구조는 관악기다 . 최정동 기자

오르간의 수많은 부품 중 건반과 연결되는 부분. 파이프오르간은 건반악기처럼 생겼으나 발성 구조는 관악기다 . 최정동 기자

당연히 그는 파이프오르간으로 한국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한다. 실제 지난해 그런 무대가 있었다. 세종대왕 즉위 600년을 기념해 서울 홍릉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자신의 오르간과 국악 앙상블이 협연했다. ‘여민락’을 연주할 때 청중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여민락은 그냥 듣고 감동하기 쉽지 않은 음악이다. 오르간이 만드는 지속음이 국악기 사이의 빈틈을 메우자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소리가 마음에 와 닿았다는 뜻이다. 결국 오르간이 우리 악기였기 때문이라고 마이스터는 설명한다.

 
“국악기는 태생적으로 저음이 약합니다. 파이프오르간이 그 빈 공간을 메우고 피리, 단소, 해금 같은 국악기들이 그 위에서 어울리면 ‘영산회상’과 같은 관현악곡은 엄청난 음악이 됩니다.”

 
홍성훈 마이스터는 독일서 귀국해 21년째 파이프오르간을 짓고 있다. 현재 19, 20번째 악기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오르간 불모지나 다름없다. 전국에 파이프오르간이 200대 남짓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유일한 국립 클래식 음악 연주공간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파이프오르간이 없다. 국력에 비추어보면 이례적인데, 마이스터는 이상할 것도 없다고 했다.  
 
“우리의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면 오르간도 신기한 물건일 뿐이죠. 몇십 억을 들여놓고 그만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죠. 파이프오르간은 아직도 충분한 팬을 확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아날로그적 기계입니다. 현재 오르간을 짓는 나라는 20개국 정도지요. 쇠, 나무, 가죽, 납, 구리, 주석 등의 재료와 전기공학, 물리학, 건축공학, 금속공학, 음향공학, 디자인 등의 학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음악 등이 오랜 시간 축적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니까요. 근대 문명이 발달한 선진국만이 파이프오르간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비로소 그런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 파이프오르간이 있지만, 그것은 1970년대 ‘동양 최대’ 산물 중 하나일 뿐입니다.”  
 
파이프오르간의 건축 설계도. 오르간은 만드는 일은 일의 규모와 성격상 '짓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최정동 기자

파이프오르간의 건축 설계도. 오르간은 만드는 일은 일의 규모와 성격상 '짓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최정동 기자

“오르간이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이스터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노가다”라고 말하고는 하하 웃었다. 오르간 짓는 일이 힘들고 괴로워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오르간 짓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 무어냐”고 물으니 “참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좋은 일 찾아서 하는 것이 좋지만 내가 하는 일 좋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씨의 오랜 동료가 작업하고 있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다. 최정동 기자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씨의 오랜 동료가 작업하고 있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다. 최정동 기자

오르간 제작에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에는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단다. 오르간의 3요소로 기술, 디자인, 소리를 꼽지만 그는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보이는 모습이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보기 좋은 음식은 군침이 돌죠. 구봉서, 배삼룡은 얼굴만 봐도 웃게 되잖아요.”

 
홍성훈씨의 18번째 오르간 '나비'. 2017년 우크라이나로 보낸 작품이다. 동양에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유럽으로 수출된 것은 처음이다. 가로 세로 각 1m 크기로 소형이지만 파이프 220개가 4가지 악기 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다. [사진 홍성훈]

홍성훈씨의 18번째 오르간 '나비'. 2017년 우크라이나로 보낸 작품이다. 동양에서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유럽으로 수출된 것은 처음이다. 가로 세로 각 1m 크기로 소형이지만 파이프 220개가 4가지 악기 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다. [사진 홍성훈]

 
11번째 작품은 '블루 오르겔'이라고 이름붙였다.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중앙회 로비에 있다. 칠보작가 박수경씨와 협업하여 12마리의 나비와 바다 모습을 본체에 장식했다. [사진 홍성훈]

11번째 작품은 '블루 오르겔'이라고 이름붙였다.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중앙회 로비에 있다. 칠보작가 박수경씨와 협업하여 12마리의 나비와 바다 모습을 본체에 장식했다. [사진 홍성훈]

마이스터는 ‘내 꿈’이라며 사진을 한장 보여준다. 그가 만들 오르간의 디자인이다. 그것은 ‘일월오봉도’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좌우의 폭포와 소나무, 그 아래 백성을 상징하는 파도.  조선의 왕이 앉는 용상 뒤의 병풍 그림이다. “이런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국악 앙상블이 연주하면 어떨까요?”

 
일월오봉도. 왕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이 그림이 있었다. 홍성훈씨는 언젠가는 이런 모습의 파이프오르간을 만들 계획이다.

일월오봉도. 왕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이 그림이 있었다. 홍성훈씨는 언젠가는 이런 모습의 파이프오르간을 만들 계획이다.

유럽 악기인 파이프오르간을 변형시키는 데 대해 비판도 없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와 모습은 따로 있다는 게 홍성훈씨의 생각이다. 고대에 이 땅에서 울리던 악기가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당연히 우리에게 맞게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씨가 자신의 13번째 작품인 경기도 양평 국수교회의 '산수' 오르간 앞에 앉았다. 연두색 틀 안에 세 봉우리, 능선, 은하수, 뻐꾸기가 어울리도록 했다. 전통적인 좌우대칭 디자인을 버리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배치했다. 최정동 기자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홍성훈씨가 자신의 13번째 작품인 경기도 양평 국수교회의 '산수' 오르간 앞에 앉았다. 연두색 틀 안에 세 봉우리, 능선, 은하수, 뻐꾸기가 어울리도록 했다. 전통적인 좌우대칭 디자인을 버리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배치했다. 최정동 기자

‘일월오봉도’ 파이프오르간이 언젠가 지어지고 그 앞에서 조선 선비들이 심신을 닦기 위해 연주했던 ‘영산회상’이 연주되면 어떤 소리가 울릴까. 오르간의 저음이 떠받친 구름 위에서 거문고, 가야금, 해금, 단소, 대금, 피리, 장고, 양금이 어울리면 어떤 음악이 만들어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최정동 기자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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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