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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창설일을 국군의 날로" 김원봉이 부른 국군뿌리 논쟁

중앙일보 2019.06.15 11:00
#1949년 10월 1일, 공군 창설로 대한민국 군은 육ㆍ해 ㆍ공군 3군 체제 정비.  
#1950년 10월 1일, 한국전쟁 발발 3달여 만에 육군 제3사단 23연대 3대대가 처음으로 38선 돌파.

 
현행 국군의날이 10월 1일로 정해진 계기다. 1956년 이승만 정부가 이날을 기념일로 지정한 이래, 우리 군은 매년 10월 1일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훈ㆍ포상과 각종 행사를 열어왔다.  
2018년 10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기념일 제정 60여년 만에 국군의날 변경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군의 뿌리를 해방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보고,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1940년)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자는 주장이 여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어서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엔 이 같은 인식이 배어있다. 문 대통령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ㆍ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는 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아 백선엽 장군(예비역 대장)을 예방해 맞불을 놨다. 황 대표는 백 장군에게 “6ㆍ25 전쟁 남침 주범 중 한 사람인 김원봉이 최근 우리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정말 말이 안 되는 얘기들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과 황 대표의 행보를 두고 “국군의 뿌리를 바라보는 여야 시각차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백 장군이 6ㆍ25 전쟁 영웅이기에 앞서, 국방경비대 초기 멤버였기 때문이다. 국방경비대는 해방 직후인 1946년 1월 15일 창설된 준군사조직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예방한 모습. [중앙포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예방한 모습. [중앙포토]

 
그간 학계에선 국군 뿌리가 무엇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우리 군은 오랫동안 국방경비대를 국군의 모체로 삼아왔다. 김대중 정부 국방부가 공식 발간한 『국군 50년사』(1998)에선 “국민의 정부 출범 원년인 올해는 건국 50주년이자, 건군 50주년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해방 직후 창설된 국방경비대를 모체로 1948년 정부수립 직후 탄생한 우리 국군”이라는 국방부 장관(천용택) 발간사가 나온다.  
 
국방부 국방군사연구소가 1998년 12월 발간한 『국군 50년사』 중 국방장관 발간사.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국방부 국방군사연구소가 1998년 12월 발간한 『국군 50년사』 중 국방장관 발간사.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김희선 통합신당 의원 등 14명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변경하자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국군의 날 변경 움직임이 본격화한 건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국무회의에서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곧이어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군의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꿔야 한다”며 ‘국군의날 기념일 변경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9월엔 같은 내용의 법안(민주당 의원 33명 참여)도 냈다.  
 
국방부는 지난해 창군 이래 처음으로 독립군과 광복군을 우리 국군의 뿌리로 공식 인정하는 내용의 발간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육군사관학교는 홈페이지에 게재돼있던 백선엽 장군의 전쟁 활약상이 담긴 웹툰(육사 학술정보원 제작)을 삭제했다.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게재됐다가 2018년 1월 삭제된 웹툰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의 한 장면. [SNS 캡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게재됐다가 2018년 1월 삭제된 웹툰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의 한 장면. [SNS 캡처]

 
이번 문 대통령의 현충일 발언 이후엔 민간단체도 합세했다.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등은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인 11월 9일을 앞두고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오는 27일 발족하고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12일 잇따른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독립군이나 광복군의 법통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 일제 때 독립군을 토벌하던 토벌 앞잡이들이 법통을 이어받은 조직이다” “백선엽은 만주에서 일본 앞잡이 하면서 독립군 토벌하는 데 제일 앞장선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가 백 장군을 예방한 데 대해선 “국민을 좌절시키는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13일 “대한민국의 적화를 시도했던 불순한 인물을 건국 공로자란 감투를 씌워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북한의 남침 때 마지막 전선을 지킨 백선엽 장군을 모욕한 것 또한 일제 강점기 때 군인이었다는 이유로 친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좌파 프레임”이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뿌리를 흠집 내기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진두지휘하는 모양새가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광복군 재조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념전이 펼쳐진 데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립 이전의 행위가 정당했더라도 북한으로 넘어가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사까지 섣불리 복권하는 건 시기상조"라며 "국군 뿌리 논쟁은 지나치게 소모적인 정쟁"이라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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