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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핵심은 ‘디자인 싱킹’…빅데이터·인문학 융합해야

중앙선데이 2019.06.15 00:47 640호 2면 지면보기
[양영유의 총장 열전] 장호성 단국대 총장
2007년 여름, 대한민국 대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사 행렬이 펼쳐졌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던 단국대가 ‘탈(脫)서울’을 선언하고 경기도 용인시 죽전으로 본교를 옮기는 장면이었다. 서울에 60년간 보존했던 93만 권의 장서와 2만2000점의 유물이 3147대의 대형 트럭에 실렸다. 총 1만4300t 규모였다.
 
제2 창학을 선언한 단국대는 다시 태어났다. 한남동캠퍼스보다 7.5배 더 넓은 공간에 첨단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갖추고, 죽전(본교)과 천안(분교) 캠퍼스를 통합해 ‘원 유니버시티 투 캠퍼스(One University Two Campus)’ 체제를 완성했다. 그리고 죽전캠퍼스를 IT(정보통신)와 CT(문화기술), 천안캠퍼스를 BT(생명과학)와 외국어교육으로 특화했다. 그런 개혁의 중심에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장호성(64) 총장이 있었다. 2008년부터 총장직을 맡아 인문사회계열 중심인 단국대에 이공계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고등교육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총장을 역임했고, 전국 4년제 대학 총장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2017년 4월~2019년 4월)도 지낸 장 총장은 14일 인터뷰에서 “마라톤 같은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제3 창학을 위한 새로운 비상을 위해 내년 2월까지인 총장직 임기를 조기 사임한다”고 밝혔다. 
  
제3 창학 위해 총장직 조기 사임
 
단국대의 상징인 ‘곰’상 앞에 선 장호성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져야 고등교육 생태계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단국대의 상징인 ‘곰’상 앞에 선 장호성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져야 고등교육 생태계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임기가 남았는데 왜 물러나시나요.
“그동안 글로벌화를 위한 기초공사는 완성했다고 봅니다. 문명사적 전환기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리더십과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새 리더가 72년 전통의 단국대를 더 잘 이끌도록 길을 터주는 게 대의라고 판단했어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요. 제 직무는 16일로 끝납니다.”
 
총장 선출방식도 바뀌나요.
“기존에는 법인 임명 방식이었는데 간선제로 바뀝니다. 현직 총장이 자리를 비워줘야 선출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더 명확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 잔여 임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도 되고요. 신교과과정 개편 등 일부 업무가 남아있지만, 변화의 토대는 다져졌으니 제3 창학을 위한 새 엔진을 달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게 고별 인터뷰네요.
“정말 숨 가쁜 여정이었어요. 가장 큰 일은 서울 소재 대학 초유의 캠퍼스 이전이었죠.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어려운 대학들은 ‘인 서울(In Seoul)’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웃 서울(Out Seoul)’ 했잖아요. 그때의 결단,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입니까.
“2010년 약학대 유치와 죽전·천안 캠퍼스 통합, 학문 단위 조정, 산학협력 활성화 등이 떠오르네요. IT트랜드에 친숙한 것이 학교 체질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인문사회계열을 넘어 이공계열까지 경쟁력이 탄탄해지도록 환경과 학풍을 바꿨어요. 국내 대학 최대 규모의 클라우드와 서버 등을 기반으로 지난 10년간 정부·기업체로부터 4580억원의 연구비도 수주했어요. 최근 3년간 기술이전 실적도 215건으로 늘었고요. 그 과정에서 전임교원은 350명,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논문은 3.3배 증가했죠. 구성원들의 땀 덕분입니다.”
 
장 총장의 학문 단위 조정은 유명한 성공사례로 남아 있다. 유사 중복학과를 통폐합하고 신설한 전공이 17개 학부(과)에 이른다. 모바일시스템공학·의생명공학·중동학·상담학 등이 대표적이다. 미래 사회 수요에 대비한 초석이다.
 
두 캠퍼스 특성화의 핵심은 뭡니까.
“죽전은 IT와 전통 인문학이 어우러진 캠퍼스, 천안은 의대·치대·약대 중심의 BT와 10개 언어교육 메카로 바꾼 것입니다. 글로벌 고등교육의 핵심은 ‘창의성’입니다. 숙고 → 이해 → 문제해결 과정을 통해  대안을 만들려면 ‘디자인 싱킹’이 중요합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에 인문학적 감성이 더해져야 경쟁력이 있어요. ‘소프트웨어·디자인융합센터’를 설치해 IT·SW 기술과 빅데이터, 인문학을 연결하는 융합형 인재 양성에 나선 이유입니다. 학생들이 인공지능 챗봇 ‘단아이(DanAI)’를 통해 학사·생활 정보를 서핑하며 그런 환경에 친해지도록 했습니다.”
 
CT와 BT, 외국어 분야는 어떻습니까.
“우리 대학은 전체 입학정원의 16.7%가 예체능계입니다. 대학평가를 잘 받기 어렵지만 체덕지(體德智) 학풍은 단국대의 전통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이 보여주듯 문화예술 콘텐트의 힘은 엄청납니다. 장점을 더 특화해야죠. 동양학연구원의 경우 2008년 세계 최대 규모의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 16권을 완간해 학계를 놀라게 했잖아요. BT는 죽전의 자연대를 천안으로 옮겨 거의 완성했어요. 의대·치대·약대·간호대·보건과학대, 기초과학·농생명 계열 등 전 분야를 올인원(All-in-One)하는 과정입니다. 외국어는 한국외대 못지않게 우리도 강해요. 영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포르투갈어·중국어·일본어·몽골어·아랍어 등 세계 10대 주요 언어 사용국가의 ‘입’을 키워내고 있어요.”
 
총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아쉬운 점도 많을 것 같았다. 장 총장은 대교협 회장을 하는 바람에 학교 업무에 집중 못 해 국제화 혁신이 늦춰진 것 같다고 자성했다. “영어강의와 외국인 유학생 유치 부분이 아쉽네요. 당장의 평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중장기 투자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미흡했어요. 세계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브랜드 파워를 더 키워야 합니다.”
  
네거티브 규제, 자율 주고 책임 물어야
 
전국 대학들의 대변자 역할도 하셨는데요.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시각을 좀 달리하면 어떨까요. 국·공립대는 기초과학, 사립대는 응용과학과 공학에 투자해 줬으면 합니다. 구분이 없다 보니 전국 대학들의 양상이 똑같아요. 기초과학에는 무관심하고, 취업과 논문에 장점 있는 공학에 달려들죠.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역할과 기능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야 치열한 고등교육시장에서 둘 다 살아요.”
 
장 총장은 조심스럽게 정부별 정책 특징도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규제를 좀 풀어주려 한 것 같지만, 몇 개 대학에만 적용 가능해 제한적이었다고 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특징이 잘 생각나지 않는단다. 현 정부는 어떨까. “재정지원이 확대되고 탄력성이 좋아져 대학들 입장에선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래도 대학들은 배가 고파요. 11년째 동결된 등록금은 유연성이 필요해요. 명목상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까지 올릴 순 있지만, 재정사업 불이익을 우려해 이마저도 못 올리죠.”
 
대학 총장들이 모두 답답해하더군요.
“안 되는 것만 빼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Negative Regulations)로 갔으면 좋겠어요. 일례로 글로벌 강의 개방시대에 온라인 강의 20% 제한 정책을 고집할 이유가 있나요. 우려된다면 규제 샌드 박스를 활용하면 어떨까요. 대학에 자율을 주고 문제 발생 시 책임을 묻는 전향적인 공진화(coevolution)가 중요해요. 대학별 옷이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평교수로 돌아가는 장 총장은 마음이 무겁기도, 홀가분하기도 하다고 했다. 책도 많이 읽고 좋아하는 운동도 하며 약해진 체력을 보강하겠단다. “클라리넷은 두 달 배웠는데 혼자 연습하는 게 한계가 있더군요. 다시 배우려고요. 뭐든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미래 사회는 더 그럴 겁니다.”
 
소탈한 외유내강 리더십 … 이공계 출신 총장의 맏형
교시인 진리와 봉사. 초상화는 공동 설립자인 범정 장형 선생(왼쪽), 혜당 조희재 여사.

교시인 진리와 봉사. 초상화는 공동 설립자인 범정 장형 선생(왼쪽), 혜당 조희재 여사.

장호성 총장은 국내 이공계 출신 대학 총장의 맏형이다. 4차 산업혁명에 밝아 AI 캠퍼스 구축과 초연결 스마트형 교육, 산학협력의 파이어니어로 불린다. “혁신의 주체는 ‘사람’이다. 한솥밥을 먹으면서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며 2008년 총장 취임 후 계약직 41명을 정규직으로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소탈하고 겸손하며 권위를 모르는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내면은 단단한 외유내강형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자 1947년 단국대를 설립한 범정(梵亭) 장형(1889~1964) 선생의 손자로 장충식 현 단국대 이사장의 1남 3녀 중 맏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는 경기고 70회, 황준성 숭실대 총장과는 ROTC 16기 동기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강사와 교수를 거쳐 2000년 단국대로 옮겼다. 2011 하계유니버시아드 및 2010 세계청소년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을 역임하는 등 스포츠 발전에 열정을 보였다. 테니스와 스키 실력이 수준급이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yangyy@joongang.co.kr
 
※총장 열전은 크로스미디어로 진행합니다. 17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7월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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