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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소설 표절의 공소시효

중앙선데이 2019.06.15 00:21 640호 29면 지면보기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슬그머니 사라졌다 슬그머니 돌아왔다. 아니, 떠들썩하게 사라졌다 슬그머니 돌아왔다.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신경숙. 그의 활동 중단과 복귀 말이다. 
 

신경숙, 4년 만에 중편 발표
뛰어난 작품으로 신뢰 되찾아야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한 건 그를 최고의 자리에서 바닥으로 끌어 내린 고발의 형식 때문이다. 피 끓는 동료 소설가 이응준은 종이신문 등 영향력이 검증된 매체를 마다하고 2015년 당시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던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를 의혹 제기 공간으로 선택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매체였다는 점에서 슬그머니. 하지만 의혹 제기는 곧 트위터 등 SNS를 타고 일파만파로 번지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래서 떠들썩하게.
 
슬그머니 돌아왔다고 한 건 익히 아시겠지만 최근 계간 창비 여름호에 중편 분량 소설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게재하며 복귀를 기정사실화해서다. 출판사 창비를 통해 활동 재개의 입장을 밝힌 글 ‘작품을 발표하며’를 문학 담당 기자들에게 돌렸고, 이를 수많은 매체가 앞다퉈 보도하며 결과적으로 슬그머니 돌아오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100% 공감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도해 본다면, 신경숙의 내면은 “고마 해라, 많이 무어따 아이가”일 수 있지 않을까. 이응준이 표절 의혹을 제기한 건 2015년 6월 16일. 신기하게도, 신경숙의 복귀는 정확하게 4년 만이다. 그가 여전히 한국문학의 유력한 자산이고, 그의 독자층이 아직 건재하다면, 지금처럼 ‘큰 작가’가 되리라고는 꿈꾸기 어려웠던 20여 년 전 표절 시비쯤 이제는 덮어줄 수 있는 흠결이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여론은 차가운 것 같다. 저지른 잘못의 무게보다, 구체적이고 솔직한 그래서 절절한, 작가의 사과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혹시 신경숙은, 어차피 한 번은 맞을 매, 무리를 해서라도 이번에 돌파하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
 
신경숙은 야속해하겠지만 여론은 묘한 것이다. 강도(強度)와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신법(神法)처럼 “내세로 무한히 지속되는 상벌”이라는 강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화국의 성문법처럼 즉각 처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유한 법 집행기관도 없다. 하지만 여론은 그렇다고 결코 힘이 약하지 않다(사카가미 다카시, 『인구·여론·가족』). 가령 병역이라는 금기를 위반한 연예인들은 아직도 이 땅에서 활동하지 못한다. 어떤 잘못은 끝내 용서받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게 아닐까. 소설 읽기는 한낱 소일거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어떤 비밀쯤을 품은 귀한 문건으로 떠받들어지니 말이다.
 
신경숙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니, 그가 작품을 계속 발표하고 독자들은 냉담해하는, 가능한 대치상황을 해소하는 길은 결국 작품으로 승부하는 거다. 작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작품이 불가항력적으로 마음에 들어 설득당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 말이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요즘 독자들의 문학적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변화무쌍한 것 같다는 점이다. 가령 커밍아웃한 성 소수자 작가가 자신의 특별한 사랑 얘기를 적나라하게 풀어 놓은 작품이 젊은 세대 사이에 뜨겁게 읽힌다. 63년생 소설가 신경숙은 그런 문학 지형에 순발력 있게,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보조를 맞출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이는 그 일을 해낼 때 신경숙 표절 시비의 공소시효는 비로소 만료되는 것 아닐까. 복귀작 ‘배에 실린 것을…’은 지난해 가을 세상을 뜬 절친 허수경 시인을 애도하는 내용이다. 수다스럽고,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콧날이 시큰해졌지만 익히 보아 왔던, 픽션과 다큐를 버무린 신경숙 소설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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