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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V가 유발하는 자궁경부암, 백신 맞으면 98% 예방

중앙선데이 2019.06.15 00:02 640호 27면 지면보기
라이프 클리닉
암을 백신 접종만으로 예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어렵게 치료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희망과 가설로 존재했다. 그리고 일부는 현실이 됐다. 자궁경부암이 그렇다. 자궁경부암은 암 중에서 유일하게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암’으로 통한다. 자궁경부암을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원인이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인유두종바이러스(혹은 사람유두종바이러스, HPV)가 자궁경부암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예방 백신 개발이 가속화해 현재에 이르렀다. 
  

HPV, 성 접촉 통해 80~90% 감염
16·18형이 자궁경부암 등 유발
11~12세에 백신 2회 맞으면 효과
안전하지만 임신 중 접종은 말아야

40년 전에 발견한 HPV, 자궁경부암 주범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자궁경부암과 HPV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독일의 바이러스학자인 하랄트 추어 하우젠(Harald zur Hausen) 박사가 HPV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 1970년대 후반이다. 불과 40여 년 전이다. 하우젠 박사가 HPV를 발견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다른 바이러스(HSV-2)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당시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자궁경부암 세포에서 이 바이러스를 발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가설이 틀린 것이다.
 
그러다 자궁 안에 기생하는 HPV를 발견했고, 83년과 84년에 잇달아 자궁경부암 환자의 세포에서 서로 다른 HPV를 찾아냈다. 이들 두 바이러스는 지금도 가장 강력한 자궁경부암 유발 바이러스로 꼽힌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HPV를 자궁경부암의 발병 원인으로 발표한 것은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94년이다. 그러고 보면 HPV가 자궁경부암의 주범이라고 공식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하우젠 박사는 2008년에서야 HPV 발견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HPV 감염이 무조건 심각한 건 아니다. HPV 감염은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성생활을 시작한 사람의 80~90%는 평생 적어도 한 번 HPV에 감염된다. HPV가 주로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나 항문 주위에서 발견되는데, 피부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이다. 감염돼도 90%는 2년 이내에 자연히 치유된다.
 
100가지가 넘는 HPV 중에서 생식기 사마귀를 일으키는 건 HPV 6형·11형이다. 자궁경부암과 연관성이 낮다. 생식기 주변에 오돌토돌한 병변이 퍼지면서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동반한다. 약물요법, 레이저치료, 전기소작술로 간단히 치료한다. 다만 재발이 잘되기 때문에 완치될 때까지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 치료 후 정기 검사도 필요하다.
 
문제는 고위험군이다. 국제암연구소는 HPV 중 16·18·31·33·45·52·58형을 고위험군으로 규명한 바 있다. 자궁경부암·외음부암·질암·항문암·구강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서양보다 52·58형 감염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대표적인 고위험군은 HPV 16형과 18형, 바로 하우젠 박사가 발견한 그 바이러스다. 자궁경부암의 70%에서 발견된다. 감염상태가 지속하면 세포 유전체의 변이가 축적돼 자궁경부 이형성증(정상조직과 암 조직의 중간)을 거쳐 자궁경부암으로 악화한다.
 
이를 예방하는 데 백신 접종이 도움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자궁경부암은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암이다. 백신으로 100가지가 넘는 HPV 감염을 모두 예방할 순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한 전암 단계와 암 발생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백신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서바릭스 2가(16·18형 예방)와 가다실 4가(6·11·16·18형 예방), 가다실 9가(6·11·16·18·31·33·45·52·58형 예방)가 있다. 만 9세 이상, 늦어도 26세 전에 접종하는 것이 권고된다. 대한부인종양학회 권고안에 따르면, 11~12세는 2회 접종만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성 경험 노출 전에 접종하면 효과가 그만큼 크다. 기본은 3회 접종이다. 개인별 위험도에 대한 임상적 판단과 접종 대상자의 상황을 고려해 45세까지 접종이 권장된다. HPV 백신은 안전하지만, 임신 중 접종은 권고되지 않는다.
  
20세 이상 여성 매년 자궁경부 세포검사를
 
검진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2년에 한 번씩 만 2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자궁경부 세포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20세 이상 70세 이하의 여성에게 1년마다 자궁경부 세포검사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 소요시간은 1분 내외로 간단하다. 질경을 삽입하고 자궁경부에서 작은 브러시로 세포를 채취한 뒤, 현미경으로 자궁경부 세포 이상과 암세포의 유무를 관찰한다.  
 
자궁경부 세포검사가 무증상 여성을 대상으로 선별검사로 시행되면서 자궁경부암과 암 전 단계의 조기 진단율이 향상됐다. 또한 자궁경부 HPV DNA 검사를 통해서는 HPV 감염 여부와 HPV 유형까지 확인할 수 있다.
 
HPV 감염이 확인돼도 바로 자궁경부 이형증(암 전 단계) 또는 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산부인과를 방문해 정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자궁경부암도 여느 질병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일차 예방법이다.
  
이성종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1999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에서 종양 면역치료를 연수했다. 현재 자궁경부암·난소암 등 부인암, HPV 감염 질환의 진료·연구를 수행 중이다. 대한부인종양연구회 사무총장, 대한부인종양학회 논문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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