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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득 쫓아와 보호 요청했더니, 경찰 "경비실에 부탁해라"

중앙일보 2019.06.14 05:00
지난 4월 발생한 진주 살인사건의 범인 안인득이 위층 출입문에 오물을 뿌리는 모습. [사진 피해자 가족]

지난 4월 발생한 진주 살인사건의 범인 안인득이 위층 출입문에 오물을 뿌리는 모습. [사진 피해자 가족]

 
경남 진주에서 방화·살인을 저지른 안인득이 범행 수개월 전부터 여러 차례 폭력 성향을 드러냈으나 경찰이 이와 관련한 112 신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경찰, 안인득 살인사건 대응조치 적정성 검토 결과 "미흡"
경찰관 31명 조사, 11명 감찰 대상자 여부 위원회서 결정

 
경남지방경찰청은 지난 4월 18일부터 진주 방화·살인사건 관련 경찰 조치에 대한 적정성 여부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경찰 조치에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월 17일 사건 발생 이전 안인득과 관련해 112에 신고된 사건은 모두 8건이다. 경찰은 이 중 4건 정도가 경찰 조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층 주민의 신고와 관련된 것이다.
 
이 집 주민은 방화 살인 발생 전인 지난 2월부터 두 달간 경찰에 4차례나 신고했다. 신고자는 “안인득이 폭언을 퍼붓거나 오물을 뿌려놨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폐쇄회로TV(CCTV) 설치를 권고하거나 그를 만나 구두 경고만 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특히 3월 12일 발생한 오물 투척 사건을 당일 CCTV 확인 과정에서는 신고자가 “(1시간여 전에는)조카를 쫓아와서 욕을 하고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도 있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이 부분은 확인하지 않고 별도 사건으로 처리하지도 않았다. 이 CCTV 영상은 사건 초기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큰 공분을 샀다. 진상조사팀은 “(경찰관이) 욕설하는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확인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3월 13일에는 한 경찰관이 신고 대상이 된 안인득을 수상히 여겨 같은 달 3일과 12일 사건뿐 아니라 안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9월 오물 투척 사건을 묶어 범죄첩보를 작성했다.
 
당시 첩보를 쓴 경찰관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고 의견을 냈다. 하지만 정작 범죄첩보를 처리하는 부서의 경찰관은 이미 형사과에서 수사 중이라며 ‘참고 처리’만 했다.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관련 부서 간 정보 공유를 더 해야 했는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안인득이 위층에 사는 여성을 뒤쫒아가다 여성이 가까스로 들어가자 벨을 누르는 모습. [사진 피해자가족]

안인득이 위층에 사는 여성을 뒤쫒아가다 여성이 가까스로 들어가자 벨을 누르는 모습. [사진 피해자가족]

 
3월 10일 안인득은 술집에서 망치를 휘두르는 등 난동을 부려 특수폭행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의 형은 다음날인 11일 경찰서를 찾아가 형사에게 “우리 동생이 정신질환을 앓아서 치료한 병력이 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안의 정신병력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해당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직후인 지난 4월 4~5일에도 “동생을 강제입원 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해당 형사에게 재차 문의했지만 돌아온 건 “검찰에 사건이 송치됐으니 검사에게 문의하라”는 대답이었다. 진상조사팀은 이와 관련해 “당시 (형사가) 최소한 행정입원을 추진할 여지가 있었는데, 그 점이 미흡했다”며 “형이 그렇게 물어봤을 때 행정입원을 추진하든지, 형에게 행정입원에 대해 제대로 설명 정도는 해야 했다”고 말했다.
 
가장 황당한 일은 지난 3월 13일에 일어났다. 위층 주민이 직접 경찰서 민원실을 찾아 신변 보호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은 전날인 12일 안인득이 사촌 동생을 쫓아오는 영상을 보여주며 보호를 요청했지만, 당시 경찰관은 “요건이 안 돼 안타깝다. 경비실이나 관리실에 부탁해보면 어떻겠냐”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해당 경찰관은 진상조사팀에서 “당시 CCTV 영상을 본 적이 없고 신변 보호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상조사팀은 앞뒤 상황에 미뤄 신고자의 진술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변 보호 대상이 되는지는 해당 요청을 접수한 뒤 심사위원회 통해 판단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런 최소한의 조치도 없었다고 판단해서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31명의 경찰관을 조사, 이 중 11명을 경남경찰청 인권·시민감찰 합동위원회에 넘겨 감찰조사 대상자를 최종 가리기로 했다. 여기서 감찰 대상자가 되면 조사를 벌여 징계 수위가 결정된다. 
지난 4월 방화·살인사건을 저지른 안인득이 조사를 받고 진주경찰서를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월 방화·살인사건을 저지른 안인득이 조사를 받고 진주경찰서를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완 경남경찰청 진상조사팀장은 “신고자의 불안과 절박함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경찰을 포함해)누군가 그를 입원시키는 등의 판단이나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진주=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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