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속노조 '트로이목마 꼼수'···조합원들이 쿠데타로 막았다

중앙일보 2019.06.14 05:00 경제 1면 지면보기
 
르노삼성차 노사협상 막전막후
 

르노삼성 파업철회 막전막후
민노총 소속 일부 금속노조 탈퇴
교섭권 가진 또다른 노조에 가입
집행부 장악해 이번 파업 주도
다수 노조원들 반발에 결국 투항

“르노삼성차 기업노동조합(기업노조) 집행부가 조합원의 이익이 아닌 민주노총·금속노조 요구사항을 관철하려고 해서 큰일 나겠다 싶었다. 박종규 노조 위원장도 조합원과 공개질의시간에 조합원 이익과 무관한 동문서답만 하더라.”
 
노조의 파업 명령을 무시하고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엔진라인에서 조업하다가 현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육 모(47) 씨의 지적이다.
 
노조 집행부가 전면파업을 선언했지만 노조 조합원이 막아서서 평화적인 노사협상을 관철하는 ‘혁명’이 벌어졌다. 국내 자동차 노사 관계 역사상 매우 드문 사건이다. 부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금속노조 출신, 소속 바꿔서 기업노조 전입 
 
르노삼성차 노조 집행부가 파업 지령을 내렸지만, 부산공장 근로자 과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장으로 출근했다. 부산 = 이은지 기자.

르노삼성차 노조 집행부가 파업 지령을 내렸지만, 부산공장 근로자 과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장으로 출근했다. 부산 = 이은지 기자.

 
노노(勞勞)간 갈등의 배경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있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2개다. 2011년 8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가 설립한 르노삼성차지회와 2012년 8월 설립된 상급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단일 기업노조다. 금속노조는 상대적으로 강경한 투쟁방식을 선호한다면, 기업노조는 실리를 추구하는 근로자가 더 많다.
 
르노삼성차 근로자는 민주노총보다 기업노조를 선호했다. 4년간 2개 노조가 경쟁한 결과 2014년까지 2000여명 이상의 조합원이 기업노조에 가입했다. 같은 기간 민주노총 가입자는 200여명 수준이었다. 당연히 최대 노조인 기업노조가 사측과 교섭권을 확보했다.
 
12일 오후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에서 조업 중인 근로자들. 부산 = 송봉근

12일 오후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에서 조업 중인 근로자들. 부산 = 송봉근

 
노조원 모집 경쟁에서 밀린 민주노총은 전략을 바꿨다. 2016년 4월 금속노조 산하 조합원의 약 80%(170명)가 금속노조에서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단체가입했다. 20%(39명)는 그대로 금속노조 르노삼성차지회 소속이다. 이를 두고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교섭권 확보에 실패한 민주노총이 기업노조로 ‘둥지’를 옮겨 르노삼성차 사업장을 접수하려고 ‘트로이 목마’식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민주노총이 기업노조를 ‘접수’하려면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르노삼성차 기업노조 선거관리규정 4장 12조가 ‘조합 가입 후 2년’ 등을 출마 자격으로 규정해서다. 2년 후 자격을 갖춘 민주노총 출신 조합원은 지난해 11월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득표율 51.5%)되면서 집행부를 장악했다. 이제 부산공장 노조 집행부(노조위원장·수석부위원장·부위원장·사무국장) 4명 전원(100%)과, 부산공장 상무집행부(8석)의 88%(7석)가 금속노조 출신이다. 이중 노조위원장은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를 창설한 초대위원장이다.
 
전면파업 첫 날인 7일 가동률(왼쪽)과 비교하면 12일 가동률(오른쪽)이 상당히 상승하면서, 르노삼성차 기업노조는 파업의 동력을 상실했다. 부산 = 송봉근·이은지 기자

전면파업 첫 날인 7일 가동률(왼쪽)과 비교하면 12일 가동률(오른쪽)이 상당히 상승하면서, 르노삼성차 기업노조는 파업의 동력을 상실했다. 부산 = 송봉근·이은지 기자

 
수뇌부를 점령한 금속노조 출신은 거침없었다. 2018년 임금및단체협약(임단협)을 위한 노사협상 과정에서 민주노총 산하 완성차 제조사(현대차·기아차·한국GM)의 일부 단체협약 규정을 르노삼성차에 도입하자고 요구했다. 금속노조 가입 추진을 선언하기도 하고, 3월엔 금속노조와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12일 금속노조가 르노삼성차 비판성명 발표하는 등 측면 지원도 받았다. 
 
전면파업·금권파업·지명파업 등 그간 르노삼성차 기업노조원이 선호하지 않았던 투쟁전술도 선보였다. 차체공장에서 근무하는 정 모(47) 씨는 “민주노총이 노조 집행부를 장악하던 지난해부터 이미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주 파업했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상무집행부 88% 장악 
 
다만 민주노총 출신이 기업노조 수뇌부는 장악했지만, 공장별 노조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현장 목소리는 공장별로 지역구를 대표하는 대의원이 전달하는데, 집행부는 이들과 괴리가 있었다. 22석의 대의원 자리 중에서 금속노조 출신은 36%(8석)에 불과하다.
 
지난 4월 19일 부산 지역 방송국에서 '르노삼성차 노사갈등 악화일로'를 주제로 TV토론을 주최하는 자리에서,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이 르노삼성차 노조를 대표해서 참석했다. [부산KBS 캡쳐]

지난 4월 19일 부산 지역 방송국에서 '르노삼성차 노사갈등 악화일로'를 주제로 TV토론을 주최하는 자리에서,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이 르노삼성차 노조를 대표해서 참석했다. [부산KBS 캡쳐]

 
이런 상황에서 4월 19일 부산 지역 방송국이 개최한 TV토론회에서, 금속노조가 르노삼성차 노조를 대표해서 패널로 참여했다. 50분짜리 프로그램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은 3명의 패널 중 1명이었다. 노조원들은 ‘민주노총이 기업노조를 대표하나?’라고 수군댔다. 방송을 시청한 르노삼성차 간부는 “기업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데, 마치 자기들 사업장처럼 사내 문제를 거론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조원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 지난달 16일 1차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통상 노사가 합의안을 도출하는데 성공하면 노조 집행부도 찬성을 독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실장은 “노사 양측이 절충점을 찾을 때까지는 서로 갈등하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사가 모두 어느 정도 양보하면 잠정합의안이 도출한다”며 “노사간 이견이 크다면 당연히 잠정합의로 이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노조 내 반대계파에서 합의안을 반대하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노사합의를 끌어낸 집행부는 당연히 찬성을 독려한다”고 말했다.
 
잠정합의를 파업명분으로…세력 싸움으로 변질  
 
르노삼성차 노사가 잠정합의를 이끌어낸 이후 박종규 노조위원장이 발간한 소식지. 합의안이 '변변치 않다'며 '(투표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사진 르노삼성차 노조]

르노삼성차 노사가 잠정합의를 이끌어낸 이후 박종규 노조위원장이 발간한 소식지. 합의안이 '변변치 않다'며 '(투표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사진 르노삼성차 노조]

 
그런데 르노삼성차 노조는 달랐다. 박종규 르노삼성차 노조위원장은 잠정합의안을 내놓은 뒤 “만족할만한 결과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변변치 않은 안을 받아들여서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는 또 “집행부와 대의원 간부의 토의를 반영(해서 잠정합의를) 했지만,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과정은 전 조합원의 마지막 판단(투표)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대의원을 사실상 비판하면서 잠정합의에 반대표 행사를 종용한 것이다. (※동영상 참조)
 
이를 두고 이재교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노사가 합의해서 내놓은 잠정합의안을 심사하는 찬반투표를 노조 집행부가 ‘파업 명분’으로 역이용했다”며 “노사간 신뢰를 해치는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라고 분석했다.  
 
12일 르노삼성차 기업노조는 파업철회를 선언했다(좌측). 그러자 사측도 직장폐쇄를 철회한다는 공고를 냈다(우측). [사진 르노삼성차 노사]

12일 르노삼성차 기업노조는 파업철회를 선언했다(좌측). 그러자 사측도 직장폐쇄를 철회한다는 공고를 냈다(우측). [사진 르노삼성차 노사]

 
실제로 잠정합의가 부결하자 노조 집행부는 전면파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노조원 민심은 이미 돌아선 후였다. 사측이 부산공장 야간 조업을 중단하자, 일부 노조원은 집행부 탄핵까지 거론했다. 침묵하던 다수의 노조원까지 들고 일어서면 사태는 더 심각해질 수 있었다. 결국 1년간 투쟁하던 노조 집행부는 재협상에 돌입한 지 불과 3시간 만에 ‘투항’했다. 이들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준수한다는 각서까지 쓰면서 추가로 받아든 건 1인당 최대 80만원 이내의 격려금과 소송취하 뿐이었다.
 
조합원 김 모 (47) 씨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노조는 필요 없다는 건 민주주의 제도에서 조직한 노조의 기본 원칙인데, 노조 집행부가 상급단체 명령만 따라가다 현장 조합원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 르노삼성차 노조는 “집행부 차원에서 대응·답변하지 않기로 했다”며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했다. 
 
한편 2차 잠정합의안을 두고 르노삼성차 노조는 14일 아침 6시 30분부터 밤 9시까지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이날 밤 늦게 르노삼성차 노사는 투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문희철 기자, 부산 = 이은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