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등산사] “내 등반 봐다오” 생중계로 에베레스트 8번 도전한 남자

중앙일보 2019.06.14 00:26
“지금이 등정 기회다. 모두 고맙다.”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36)는 2018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7400m 근처에 있었다. 그는 전날 뭉툭한 손가락으로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리고 등반을 이어갔다. 구리키의 아홉 손가락은 두 번째 마디부터 없다.  

■ 구리키 노부카즈
"가장 순수한 등반" 무산소·단독 고집
2009년부터 기상악화·눈사태로 실패

저마다의 꿈 안고 에베레스트 찾아
사람 몰려 주요구간 병목현상까지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는 에베레스트(8848m)에 여덟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는 7대륙 최고봉 중 아시아 최고봉인 에베레스를 오르지 못했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는 에베레스트(8848m)에 여덟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는 7대륙 최고봉 중 아시아 최고봉인 에베레스를 오르지 못했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그의 도전은 이번이 여덟 번째. 그는 에베레스트와 인연이 없었다. 베이스캠프에서부터 기침과 열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은 그의 평소 언행에 비춰보면 의미심장했다.
 
구리키는 에베레스트에 오른 4833명(2018년까지)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10년째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난 5월 21일 개인 24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 자신의 세계 기록을 갈아치운 네팔의 카미 리타 셰르파(49)와 대조된다.
네팔의 카미 리타 셰르파가 지난 5월 21일 개인 통산 24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은 5월 25일 열린 카트만두에서 열린 성대한 환영식에 참석한 카미 셰르파. [EPA=연합뉴스]

네팔의 카미 리타 셰르파가 지난 5월 21일 개인 통산 24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은 5월 25일 열린 카트만두에서 열린 성대한 환영식에 참석한 카미 셰르파. [EPA=연합뉴스]

떠난 여자, 다가온 산
한 여자를 좋아했다. 구리키는 『한걸음 내딛는 용기(一歩を越える勇気)』에 두 살 위의 그녀가 차 있는 남자, 대학 다니는 남자, 공무원인 남자를 원했다고 적었다. 구리키는 대학 진학을 미루고 돈을 벌었다. 차를 샀다. 삿포로 국제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자는 떠났다. 그녀는 “2년간 너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요에 곰팡이가 피도록 잠만 잤다. 산을 좋아한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러다 폐인이 될까 싶어 친구가 다니는 대학에 놀러갔다. 산악부원 모집 공고가 붙어있었다. 그녀가 가는 산이 궁금했다. 얼떨결에 신청했고 덜컥 산악부원이 됐다. 하지만 빈둥거렸다.  
2010년 5월 안나푸르나(8091m)를 오르고 있는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 그는 7700m까지 오른 뒤 그해 가을엔 자신의 두 번째 에베레스트(8848m) 등반에 나섰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2010년 5월 안나푸르나(8091m)를 오르고 있는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 그는 7700m까지 오른 뒤 그해 가을엔 자신의 두 번째 에베레스트(8848m) 등반에 나섰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이보다 3년 전. 폐암 말기 엄마는 사위어 가고 있었다. 구리키는 엄마를 위해 건강식품을 쌓아 놨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인공호흡기를 뗀 엄마는 숨을 거두기 직전 구리키에게 마지막 힘을  짜내 말했다. “고마워.” 눈을 짓이겨 눈물을 멈추려던 구리키는 엄마 앞에서 맹세했다. ‘항상 최선을 다할 것, 죽기 전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 것’이라고.  
 
대학 입학 후 빈둥대다가 엄마에게 한 다짐이 부끄러워졌다. 산에 갔다. 일주일 동안 비를 맞고 눈을 헤쳤다. 구르고 기었다. 찬바람에 눈물범벅된 얼굴이 얼었다. 멀리 바다가 일렁였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다시 사랑에 빠졌다. “이건 대단한 세상이군!” 산이 그의 연인이 됐다.  
 
21세, 데날리 무산소 단독 등정
2004년 봄, 북미 최고봉 데날리(예전 이름은 매킨리·6191m)에 갔다. 고산에서 익지도 않을 생쌀 들고 갔다가 다른 팀의 웃음거리가 됐다. 하지만 결국 그는 무산소 단독 등반에 성공했다. 그는 후에 이렇게 적었다. “저 구름 위 정상에 나의 꿈이 있다. 넘어서야할 내가 있다. 불가능이란 말은 내 마음이 멋대로 만들어낸 허상임을 분명히 깨닫는다. 나는 나의 껍데기를 깨부순 것이다.”
 
그는 24살이던 2007년 초오유(8188m) 등정에 성공하면서 8000m급 봉우리 등반을 본격화했다. 2009년에는 다울라기리(8167m)에 올랐다. 이후 에베레스트와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는 에베레스트(8848m)에 여덟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진 가운데 두 개의 봉우리 중 왼쪽이 에베레스트. 김홍준 기자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는 에베레스트(8848m)에 여덟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진 가운데 두 개의 봉우리 중 왼쪽이 에베레스트. 김홍준 기자

2009년 9월 에베레스트와의 첫 만남. 그는 기상악화로 7900m지점에서 돌아섰다. 그는 울부짖었다. 2010년 9월(7750m), 2011년 10월(7800m)에도 날씨가 나빠 물러섰다.  

 
그는 무산소·단독등반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대부분 등반 오프(off) 시즌인 가을에 에베레스트를 찾았다. 구리키는 이에 대해 “가장 순수한 등반방법”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10월 에베레스트 8230m. 구리키는 까다로운 서릉을 통해 등반했다. 눈보라가 몰아쳤다. 제트기류가 온몸을 덮쳤다. 1m62cm, 60㎏인 그는 바람에 날아갈 뻔했다.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곤두박질 쳤다. 이틀간 비박 했다. 손가락 아홉 개를 잃었다. 등반 의욕도 사라졌다.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는 2012년 에베레스트(8848m) 등반 중 이틀에 걸친 비박 뒤 아홉 개 손가락을 동상으로 잃었다. 그의 네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이었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는 2012년 에베레스트(8848m) 등반 중 이틀에 걸친 비박 뒤 아홉 개 손가락을 동상으로 잃었다. 그의 네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이었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구리키는 일본 귀국 뒤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올렸다.  
동상에 걸린 손가락을 절단하기 전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구리키 도시오는 “축하한다”고 했다. “아니 왜….” 아들이 반문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 돌아왔잖아.” 아버지는 “힘들겠지만, 넌 굉장한 경험을 하게 될 것”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구리키는 “모든 손가락을 잃지 않아 다행”이라며 “남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장비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밝히기도 했다.
 
손가락 잃고 다시 히말라야로 
2014년, 그는 히말라야로 돌아갔다. 7월 브로드피크(8051m)에 올랐다. 그의 다른 8000m급 등반은 에베레스트로 가기 위한 관문이었다.이듬해 9월 하순 그는 다시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재킷 지퍼를 잠그고, 따뜻한 차가 들어있는 컵을 입으로 옮기고, 아이스바일을 손에 쥐는 게 쉽지 않은 몸이었다. 
4월 강진으로 에베레스트에서만 19명의 등반가가 사망했다. 그해 에베레스트 등정자는 한 명도 없었다. 에베레스트에는 구리키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앙체링 네팔 산악협회장은 당시 “그가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고 BBC에 전했다. 하지만 그는 정상 670m를 남기고 하산했다. 이번에도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2016년에는 눈사태로 7400m지점에서, 2017년에는 다시 날씨 탓에 7350m 지점에서 돌아섰다. 그는 “돌아오겠다”며 네팔을 떠났다.
 
2018년 4월 27일, 구리키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여덟 번째 방문. 그는 기침과 발열로 고생했지만 5월 5일 다시 무산소 단독등반에 나섰다. 구리키는 5월 19일 페이스북에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 모두 고맙다”라는 글을 포스트했다.  
2018년 4월 26일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그는 39도에 육박하는 열과 기침으로 고생했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2018년 4월 26일 구리키 노부카즈(栗城史多)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그는 39도에 육박하는 열과 기침으로 고생했다. 사진=구리키 노부카즈

20일 그는 무전기로 구조요청을 보냈다. 무전기는 먹통이 됐다. 그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베이스캠프는 뒤집어졌다. 19일만 해도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이튿날, 결국 그는 시신 상태로 발견됐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구리키가 100~200m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른 보도는 그가 캠프3에서 내려와 캠프2의 텐트 안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구리키가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험한 남서벽을 통해 등반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유명 등반가 노구치 켄(野口健·45)은 “구리키는 에베레스트를 꼭 오르려한 게 아니라 자신을 가장 험한 곳에 내놓길 원했다”고 말했다. 구리키 자신도 생전에 “꼭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하는 게 아니다. 정상은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장소다. 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버리고 싶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 했다.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종종 등반 상황을 스트리밍으로 생중계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무모한 등반을 이어간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응했다. “미치지 않으면 산도 없다.”
 
그는 에베레스트만 오르면 7대륙 최고봉 완등자가 될 수 있었다. 구리키는 여덟 번 도전 끝에 에베레스트 사망자 288명 중 1명으로 남게 됐다.
 
“나는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못했다…나의 혼은 여전히 에베레스트에 있다. 나의 등산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나마스테.”  『한걸음 내딛는 용기』 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그는 생의 막바지에 자신의 엄마처럼 ‘고맙다’라고 했다.
 
에베레스트는 인산인해
구리키가 에베레스트를 마지막으로 찾은 지 거의 1년이 지난 2019년 4월 2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본격 등반 시즌을 앞두고 곳곳에 텐트가 쳐져 있었다. 비루(40) 셰르파는 “요즘 너무 많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8848m)는 등반 성공률이 높다. 히말라야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18년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률은 네팔 쪽에서 76%, 티베트 쪽에서 66%를 기록했다. 그해 802명이나 정상에 올랐다. 이전 최고 기록인 2013년의 670명을 거뜬히 넘었다. 1921년부터 2018년까지 에베레스트 등정 횟수는 8306회. 중복 인원을 제외하면 4833명이 정상에 올랐다. 288명이 사망했다.  
 
에베레스트는 등정자 대비 사망자가 6%다. 안나푸르나에는 261명이 올라갔고 71명이 사망했다. 27%로 ‘최악’이다. K2는 367명 등정, 84명 사망으로 23%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에베레스트는 최고봉이라는 상징성과 비교적 안전하다는 생각이 맞물리며 등반가가 몰리고 있다.  
에베레스트(8848m) 등반가들이 지난 5월 22일 정상 직전 난구간인 힐러리스텝(8770m)에서 병목현상으로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에베레스에서는 2019년 봄 등반시즌에만 11명이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에베레스트(8848m) 등반가들이 지난 5월 22일 정상 직전 난구간인 힐러리스텝(8770m)에서 병목현상으로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에베레스에서는 2019년 봄 등반시즌에만 11명이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올해 네팔 정부는 에베레스트 등반 허가를 381명에게 내줬다. 셰르파 등 자국민은 별도 허가 없이도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다. 네팔 정부가 지난해에는 347명에게 허가를 내준 걸 감안하면 2019년은 사상 최대 등정자의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해는 여름 등반시즌이 남았는데도 5월 29일 현재 벌써 11명이 숨졌다. 2017년엔 7명, 2018년에는 5명이 사망했다. 올해 다른 13곳의 8000m급에서 사망한 등반가들은 8명. 실종 1명이다.

 
뉴욕타임스는 너무 많은 등반가들이, 그것도 8000m 고산 초보까지 함께 오르다보니 힐러리스텝(8770m) 같은 난코스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 2~3시간 대기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전했다.  
 
8000m급 14개 봉우리에 모두 오른 김미곤(47) 대장은 “대개 산소통은 8시간 정도 쓰는데 그렇게 ‘사람에 밀려’ 움직이지 못하면 치명적”이라며 “산소는 점점 바닥나는데 당장 움직이지 못해 체온이 떨어지고 정상에 오르더라도 후유증이 크다”고 말했다.
 
구리키처럼 저마다 꿈과 희망을 안고 에베레스트에 간다. 그 꿈이 실현되려면 구리키의 말대로 투철한 의지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