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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의 한반도평화워치] 미·중 무역전쟁에서 한쪽 편드는 건 치명적 패착

중앙일보 2019.06.14 00:03 종합 27면 지면보기
미·중 무역전쟁 속 한국의 선택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 1일 중국 국무원은 『중·미 경제무역 협상에 대한 중국 입장』이라는 백서를 발표했다. 협력에 원칙이 있고 협상에도 마지노선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화를 원하면 문을 열어 놓겠지만 싸우고자 하면 끝까지 상대해 줄 것”이라고 결기를 세웠다. 미국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박탈하고, 중국의 미국 증시 상장을 제한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위협했다. 필요하면 1882년 채택된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을 연상시키는 인적 교류 카드도 배제하지 않는 등 ‘힘에 기초한 협상’ 전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몇 단계를 거쳤다. 지난해 3월 미국이 2000억 달러의 중국 상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마찰이 시작되었다. 중국은 이를 ‘전쟁’으로 간주하고 대응했으나, 몇 개월 후인 9월 18일 『미·중 무역 마찰 백서』를 발간하면서 발 빠르게 협상 모드로 전환했다. 미국이 ‘종이호랑이’가 아니라 ‘진짜 호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패권국 미국을 상대하기에는 정책 수단이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발전 전략과 사회주의 존재 방식 등을 문제 삼는 등 전선을 거침없이 확대했다. 중국도 더는 물러설 정치적 공간이 없어지면서 ‘중국의 길’을 선언했다. 지난 4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추스(求是)는 2013년 1월 시진핑 총서기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견지와 발전에 관한 몇 가지 문제’라는 비공개 연설을 6년이 지난 후에 전격 공개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사진을 함께 실으면서 ‘중국 사회주의의 길은 역사의 결론이자 인민의 선택’이라는 정치 메시지를 분명하게 발신했다. 이후 인민일보와 관변 매체는 ‘장미만 남기고 가시만 주는’ 미국에 대해 인민 전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거친 논평을 연일 쏟아냈다.
 
미·중 무역전쟁은 사실 ‘예정된 전쟁’이었다. 2001년 미국은 중국을 WTO에 가입시켜 사회주의 체제를 연성화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9·11 테러가 발생하자 모든 역량을 중동 전선에 투입하면서 중국 견제의 기회를 잃었다. 2007년 무렵에는 ‘잠재적 적’으로 등장한 중국을 다시 주저앉히기 위해 노력했으나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또 타이밍을 놓쳤다. 이 무렵 중국은 소극적 개방과 경기 부양을 통해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미국의 지도력 공백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보면 이번 전쟁은 미국이 중국의 부상 속도를 줄여 패권을 강화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중국도 여기서 밀리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보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따라서 미·중 무역전쟁은 앞으로 통화, 에너지와 자원, 표준과 규범, 체제와 제도 등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은 동맹국들에도 중국의 새로운 안보 위협에 공동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우방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겁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우선 미국은 미래 산업의 중추이자, 5세대 통신 설비 부문에서 기술 완숙도를 지닌 화웨이를 정조준했다. 왜냐하면 화웨이의 가치사슬을 끊지 못하면 빅데이터·인공지능·드론·위성항법장치(GPS)·양자컴퓨터를 결합한 중국의 기술굴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위기 인식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6월 6일 화웨이에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영업 허가증을 발급함으로써 5G 시대를 공식적으로 열었다. 이후 중국은 빠른 상용화를 통해 최소한의 경제적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MAD)의 기반을 마련한 상태에서 미국에 대한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고 상호 의존이 깊어진 상태에서 휴전을 모색할 것이다. 그 계기는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가 될 수도 있고,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특정한 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국면은 휴전을 앞두고 경제 영토를 확대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휴전 이후 미·중은 곧바로 지구전 준비에 돌입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넓게 형성된 미국인의 반중 여론을 등에 업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도전자인 중국이라는 화근을 뿌리 뽑고자 할 것이다. 특히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 체계를 보호하는 핵심으로 간주하고 반중 전선을 확대할 것이다.
 
중국도 이 전쟁을 복기하고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첫째, 기술 자주화를 고도화하고 가치사슬체계의 국내화를 모색하는 한편 희토류와 같은 공급 위험지수가 높은 광물자원의 전략적 가치를 재점검할 것이다. 둘째, ‘공급측 구조 개혁’을 통해 제품과 기업 경쟁력을 개선하고 내수 중심의 발전 전략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는 국가 주도형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것이다. 셋째, 창업과 교육 혁신을 통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여 세계가 중국에 지식재산권 사용을 지불하도록 만들고자 할 것이다. 넷째, 중국계 통신 네트워크에 대한 미국의 보복 조치에 대해 ‘국가 기술 안보 리스트’를 만드는 등 맞대응 카드를 마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중앙아시아에 이어 아프리카연합(AU) 55개국에도 화웨이 5G 망을 깔면서 전략적 우군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은 원천기술의 우위, 패권 활용 능력, 다양한 보복 수단을 가진 데 비해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 미국 기업에 대한 선별적 규제, 미국 국채 매각 등 정책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대변인 발언처럼 “(미국은) 중국이 지킬 결의와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이처럼 중국 지도부의 의지와 대중의 애국주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미국도 엄청난 비용과 고통을 수반하고 지도력이 손상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서도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상태다.
 
이렇게 보면 미·중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도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가능성이 크다. 즉 과거 폐쇄적 진영 논리에 입각한 냉전형 양극 체제가 이데올로기의 분화, 글로벌 가치사슬체계의 진영화, 군비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냉전 2.0으로 진화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문명, 다른 이념과의 충돌이 내재해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파장은 한국에 선택의 딜레마를 가중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에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힘을 있는 그대로 보고 중국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해법이 등장했다. 사드 사태로 인해 대중국 경제 의존이 안보 리스크로 전환되었던 것을 학습한 결과이다.
 
그러나 첫째, 중국은 한국에 세계 최대 시장이자 연구·개발 기지이며, 제4차 산업혁명의 실험장이라는 점에서 이곳을 우회해 글로벌 기업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둘째, 5G 시대를 이끄는 힘은 ‘가격 대비 성능’이 아니라, 성능 즉 초격차를 소비하는 데 있다. 따라서 기술 완숙도가 높고 시장과 기업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중국 제품을 검증되지 않은 보안 취약성만으로 배척하기 어렵다.
 
셋째, 중국 시장의 특성상 한번 빠져나오면 새롭게 진입하는 장벽은 훨씬 높아진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와 전략적으로 제휴하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넷째,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 동력이 약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전략적 시야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미·중 무역전쟁을 확대 해석해 친미·친중 프레임으로 가두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WTO 규칙이 지배하는 단일한 글로벌 시장이 변하면서 국제 질서도 근본적 전환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포 본능을 억제하고 최대한 침착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기업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덜어주고 사기업의 경제 활동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오해가 오판을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5G 장비의 보안 문제도 독일과 영국처럼 국제 인증기관의 심사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서둘러야 할 것은 한반도를 포함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사슬을 만들고, 국가-기업-가계가 지혜를 모아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향한 장기 전략의 합의를 만드는 일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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