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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만 수나라 군대를 쫒아낸 고구려의 비밀병기

중앙일보 2019.06.13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0)
쇠뇌 쏘기. 쇠뇌는 활과 비슷하지만 손과 팔의 힘이 아니라 기계적인 힘으로 화살을 발사시키는 무기다. [사진 파주 영집궁시박물관]

쇠뇌 쏘기. 쇠뇌는 활과 비슷하지만 손과 팔의 힘이 아니라 기계적인 힘으로 화살을 발사시키는 무기다. [사진 파주 영집궁시박물관]

 
‘쇠뇌.’ 익숙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노(弩, crossbow)'라고도 한다. 쇠뇌는 활과 비슷하지만 손과 팔의 힘이 아니라 기계적인 힘으로 화살을 발사시키는 무기다. 그래서 성능은 활보다 사격 거리와 정확성, 파괴력이 훨씬 강하다. 원거리 공격 무기다.
 
쇠뇌는 동서양 여러 나라에서 모든 기원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쇠뇌 여러 점이 발굴됐다.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의 15호 토광묘와 황해도 은파군 갈현리 부조예군 무덤 등 낙랑 유적지에서 초창기 발사장치 등이 나왔다.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회’(대표 김재웅)는 “우리나라 쇠뇌가 세계 최강의 성능을 자랑했다”고 정리한다.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쇠뇌의 일종인 석궁의 사거리가 60m에서 300m 사이였던 데 비해 이보다 수백 년 앞선 신라 시대 우리 조상들은 사거리 1200m의 쇠뇌를 사용했다고 분석한다. 신라가 세계사에서 드물게 1000년 역사를 이어간 바탕에는 이런 비장의 무기가 있었던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석궁의 사거리가 60m~300m 사이였던 데 비해 우리 조상들은 사거리 1200m의 쇠뇌를 사용했다. [사진 KBS 역사스페셜]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석궁의 사거리가 60m~300m 사이였던 데 비해 우리 조상들은 사거리 1200m의 쇠뇌를 사용했다. [사진 KBS 역사스페셜]

 
우리 조상은 무기 개발과 함께 첨단 기술의 보안 의식도 남달랐다. 강대국의 온갖 협박에도 안보와 직결되는 군사무기 기술만은 유출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기록을 보면 문무왕 9년 당(唐)나라가 신라의 쇠뇌를 만드는 기술자인 노사(弩師) 구진천(仇珍川)을 데려가 쇠뇌를 만들게 했으나 화살은 30보밖에 날아가지 않았다.
 
당나라 고종이 묻는다. “너희 나라에서 만든 쇠뇌는 1000보(1200m)를 나간다고 들었는데 지금 만든 것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당 고종이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중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지만 구진천은 끝까지 기술을 다 보여 주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에서는 이러한 쇠뇌를 개량한 팔우노‧수질노‧구궁노‧천균노 등 신종 쇠뇌를 많이 개발했다. 팔우노는 소 여덟 마리가 활시위를 당겼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쇠뇌가 있었으며 여러 개 노가 연속적으로 발사되는 연노법이 도면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궐장노는 발로 버티며 활시위를 쇠뇌의 방아쇠에 걸어 놓는데서 기인한 이름이며 이 쇠뇌는 신헌 장군이 훈련도감에서 제작한 군기를 기록한 '훈국신조기계도설'에 실린 기록을 참고하여 제작했다. 각궁으로 활을 하고 금속제의 발사장치를 갖춘 조준력이 뛰어난 쇠뇌이다. [사진 영집 궁시박물관]

궐장노는 발로 버티며 활시위를 쇠뇌의 방아쇠에 걸어 놓는데서 기인한 이름이며 이 쇠뇌는 신헌 장군이 훈련도감에서 제작한 군기를 기록한 '훈국신조기계도설'에 실린 기록을 참고하여 제작했다. 각궁으로 활을 하고 금속제의 발사장치를 갖춘 조준력이 뛰어난 쇠뇌이다. [사진 영집 궁시박물관]

 
수(隋)나라를 멸망시키고 동아시아 패자로 군림한 고구려에도 비밀 병기가 있었다. 『수서(隋書)』에 따르면 수나라와 고구려의 4차례 전쟁 중 612년 2차 전투 당시 수가 동원한 군대는 전투병 113만에 보급부대는 그 숫자의 2배, 총 330만 대군이었다. 수나라 군대는 하루 한 군단씩 출발해 모두 떠나는 데 40일이 걸렸고 행군 깃발은 377㎞에 걸쳐 펄럭였다고 한다. 세계 전쟁사에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병력이다.
 
이때 고구려 영양왕의 동생 건무(建武)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 개마무사(鎧馬武士) 500명이 평양성에 쳐들어온 수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에서 퇴각하는 수나라 군사를 전멸시킴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에서 고구려가 이길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기사와 말의 몸 전체를 갑옷으로 무장한 개마무사였다. 서양에서 고구려 같은 개마무사가 나타난 것은 고구려보다 거의 1000년이나 늦은 십자군 원정 때였다.
 
수나라는 참패에도 불구하고 613년과 614년 잇따라 고구려 정복에 재도전한다. 하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수나라는 마침내 건국 37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안보의 근본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일 것이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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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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