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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이 추천한 진상조사 위원들, 청와대서 줄줄이 비토”

중앙일보 2019.06.12 23:16 종합 25면 지면보기
검찰 과거사 조사 마무리 … 거센 후폭풍 왜?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 내 남일당 건물 옥상 현장. 경찰이 강제 진압을 하고 철거민과 철거민단체 회원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옥상 망루에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 내 남일당 건물 옥상 현장. 경찰이 강제 진압을 하고 철거민과 철거민단체 회원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옥상 망루에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지난달 말로 1년 5개월여의 활동을 종료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그 실무기구인 대검 진상조사단이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고(故) 박종철군 고문치사, 부산 형제복지원,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등에 대한 진상조사에선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포착하고 검찰에 사과 권고 등의 일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조사 기한 연장을 3~4차례나 거듭해가며 막판까지 파고들었던 세 가지 사건(용산 참사, 김학의 별장 성 접대, 고(故) 장자연 리스트)의 조사 결과 발표가 마무리되자 사건 관련자들이 고소·고발에 나서면서 실타래가 고약하게 꼬였다. 일부는 거액의 민사소송도 준비 중이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뿌리를 되짚어봤다.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조사단에 수사·재판 경험보다
성향 비슷한 인사들 우선 배치
과거사위 9명 중 6명도 민변 출신
두 기구 훈령으로 운영은 위법 소지

12일 오후 서울동부지검은 한산했다. 불과 두달여 전 현 정부 환경부의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와 검찰 과거사 사건 진상조사로 용광로처럼 들끓으며 뿜어져 나오던 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사 3층의 13개 사무실을 사용했던 대검 진상조사단은 지난달 말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등을 최종 마무리하고 짐을 싸서 이곳을 떠났다. 11층, 12층을 썼던 김학의 사건 재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 소속 검사들은 최근 수사결과 발표 후 모두 원대 복귀했다. 기록 정리와 공판 준비를 위해 남은 일부 수사관들만 3층으로 내려와 사무실 서너곳을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 이곳저곳엔 진상조사단이 두고 간 조사 기록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은 “그 기록들은 공문서인 데다 나중에 누군가 다시 보자고 할 수도 있는 것들이라 잘 보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언젠가 이번에 리뷰(재조사)한 기록 자체가 재리뷰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서울동부지검 3층 사무실 안내판.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 표식이 선명하다.    조강수 기자

서울동부지검 3층 사무실 안내판.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 표식이 선명하다. 조강수 기자

  
수사 경험 없는 인사들이 조사단원으로
 
‘김학의 사건’ 조사에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의 변론을 맡아 진상을 밝혀냈던 변호사다. 검찰 과거사 조사 활동이 끝났음에도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오히려 과거사위·진상조사단과 전·현직 검사들 간 법적 다툼으로 비화한 이유를 물었다. 박 변호사는 “진상조사단 내·외부 위원 선임은 문무일 검찰총장의 권한인데 참여 위원들의 구성 문제가 이 난리의 원인이라고 본다”며 “대검으로선 이렇게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 부분이 아주 아쉬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진상조사단 위원 선임에 문제가 있었음을 조심스레 시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간부는 “경찰이 경찰청과거사위원회 산하에 조사단을 설치한 것과 달리, 검찰은 법무부 산하에 과거사위를, 대검 산하에 진상조사단을 두는 이중적 구조를 택했다”며 “법무부 장관이 재작년 12월 과거사위 발족 때 위원 9명을 선임했는데 이 중 6명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라 재조사 사건 선정 이전부터 편향성 논란이 일었고 지난해 2월 구성된 진상조사단 위원 6개 팀 36명은 검찰총장이 위촉권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한 팀당 4명의 외부 민간위원(교수·변호사)과 검사 2명(부장검사, 파견 검사)이 배치됐다. 이들이 과거사 조사 대상 17건을 나눠 순차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데 검찰총장이 진상조사단 운영 훈령에 따라 외부 민간위원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재판 및 형사사건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 위주로 명단을 짰더니 청와대 쪽에서 줄줄이 비토(Veto·거부)를 놓은 것으로 안다”며 “결국 재판이나 수사 경험이 별로 없는 인사들이 조사단원으로 적잖이 유입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방의 민변 활동가, 5년 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사나 재판 경험 없는 교수 등도 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했다.
 이에 대해 대검 측은 "진상조사단 구성은 청와대 아닌 법무부와만 협의했다"며 "당시 형사사건을 개인적으로 선임하지 않는 변호사,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 실무경험이 있는 교수 등 위주로 조사단을 구성하는 것이 대검의 의사였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김학의 전 차관.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김학의 전 차관. 연합뉴스

 
현재 가장 후폭풍이 센 사안은 2009년 1월의 용산 참사 사건이다. 철거민 32명이 망루를 세워놓고 농성하던 현장을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 사건엔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의 구조적 문제가 응축돼 있다.
 
과거사위는 지난달 31일 용산참사 ‘조사 및 심의 결과’ 발표문에 “당시 화재 가능성 등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졸속으로 진압 작전을 강행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진상조사단의 보고를 그대로 적시했다. 이는 과거사위가 심의에서 최종적으로 채택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자 용산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20여명의 전·현직 검사들이 "진상조사단의 해당 보고내용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의심을 객관적 사실처럼 발표한 것”이라며 “이는 또 과거사위의 심의 결과만을 공개하게 돼 있는 ‘검찰과거사위원회 규정’ 위반"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어 "검찰과거사위 규정상 무죄 선고되거나 재심 무죄 선고된 사건이 조사대상인데 과거사 조사 대상 17건 중 유일하게 유죄가 확정된 용산 사건을 포함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사위는 심의 결과에 “농성자와 경찰을 균형 있게 수사하지 않고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정의로움’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했으며 서울경찰청장 서면조사와 통신 조회 누락은 수사의 중립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수사팀은 “유죄 판결이 확정된 범죄자의 정의로움 충족 운운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판결문,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과 100% 배치되는 허위공문서 수준”이라고 받아쳤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유남영)가 2010년 1월 이 사건 관련 편파수사에 대한 진정 사건에서 기각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자료도 공개했다. 이전 용산 수사팀의 한 관계자와 가까스로 통화가 됐다.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진상 조사 대상 사건을 선정하고 조사 위원을 선임하는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조사 결과에 대한 불복절차도 없었다. 교육부 등 다른 부처의 과거사위원회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내부 행정 정보를 보는 것이지만, 검찰 과거사위 활동은 개인정보의 집합체인 수사 기록을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권 침해 소지가 농후하다. 따라서 자문기구를 포함해 정부 소속 위원회는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법’에 따라 별도의 법령에 근거를 둬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지시, 즉 훈령으로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적 근거 없이 수사 기록을 제공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현직 검사 20여 명이 과거사위·진상조사단 위원들을 상대로 ‘번외(番外) 소송전’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국민일보

출처=국민일보

 
김학의 사건은 어떤가. 과거사위가 디지털 증거 3만건 누락 등 수사 미진을 이유로 수사 권고해 재수사를 견인한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과거사위는 지난달 29일 심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건설업자 윤중천 씨와 유착한 의혹이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법적 근거 없는 수사 기록 제공도 위법
 
그러나 지난 4일 검찰 수사단이 두 사람에 대한 수사 착수 단서가 부족하다고 밝히면서 반격이 시작됐다. 둘은 과거사위와 일부 조사단원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수사 외압 의혹을 벗은 곽상도 의원(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도 김학의 사건 수사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윤 전 고검장은 “과거사위는 조사 명목으로 사실상 수사를 했다”며 “단순히 훈령으로 공무상 기밀이고 개인정보가 들어 있는 수사 기록을 민간 조사 위원들까지 다 보는 것은 위법이라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사위는 검찰을 때림으로써 공수처 설치의 명분을 얻으려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로 나서면서 상종가를 쳤던 배우 윤지오 씨는 439명으로부터 후원금 반환 소송을 당했다.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한 고 장자연씨 모습.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한 고 장자연씨 모습.

 
과거사위 간사를 지낸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도 법령 아닌 훈령으로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을 운영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한다. 그는 “2005년 발족한 진실·화해위원회는 법률에 근거해 큰 분란이 없었으나 이번엔 훈령에 근거해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법을 관장한다. 국방부와 함께 창설 이래 명칭이 바뀌지 않은 정부 부처다. 법질서와 국가 안보 확립은 시대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변할 수 없는 사회적 합의라는 의미다. 그런데 법무부는 요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스스로 법 절차나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그 배경이 청와대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한밤 긴급출국금지'에 관여한 이규원 검사의 진상 조사단 파견 배경에 이광철 청와대 행정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과 연관 지어서다. 이러다 시간이 흘러 과거사위를 조사하는 ‘신(新)과거사위’를 또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씁쓸하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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