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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단 대신 조전 택한 北···'잘못된 시그널' 우려한 듯

중앙일보 2019.06.12 15:16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서명식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명을 돕고 있다.[뉴스1]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서명식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명을 돕고 있다.[뉴스1]

북한이 고(故) 이희호 여사의 장례에 조문단을 파견하는 대신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조전(弔電)을 보내겠다고 12일 알려왔다. 통일부는 “북측은 오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6월 12일 17시 판문점 통일각에서 귀측의 책임 있는 인사와 만날 것을 제의한다”며 “우리측에서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인 김여정 동지가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우리 측에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호 통일부 차관, 장례위원회를 대표하여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11일 오전 연락사무소 회의 때 이 여사의 서거 소식이 담긴 부고를 북측에 전달하고, 북한의 조문단 파견에 대비해 왔다. 고인은 남북 첫 정상회담이었던 2000년 6ㆍ15 정상회담 영부인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또 “국민과 평화통일을 기도하겠다”고 밝히는 등 남북 관계 개선에 열정을 보였다. 특히 북한은 6ㆍ15공동선언을 통일 지침이자 강령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많았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문제와 관련한 이 여사의 역할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북한에서 조문단을 보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북한이 부고를 접수하고도 12일 관영 매체에 이 여사의 서거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조문단 파견에 소극적인 입장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남측 언론들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데 이 여사 서거 직후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14일 발인이라는 소식도 전달한 만큼 조문단을 보내려 했으면 11일 밤늦게라도 반응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영정과 위패가 놓여있다. 김상선 기자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영정과 위패가 놓여있다. 김상선 기자

 
북한이 조화로 대신한 것을 두고는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북한은 4월 이후 일체의 남북접촉을 피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연일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부정하며 ‘당사자’ 역할을 주문하는 등 비난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신년사(1월 1일)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조건 없이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대남 사업 관계자들에겐 정책 지침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진전이 없고,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로 김 위원장의 무오류성이라는 이미지에 상처를 입자 한국과 ‘거래’를 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문단이 올 경우 당국 간 접촉이 불가피하고, 남북 정상회담이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의 기회로 비칠 수 있다. 실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방한했던 북한 대표단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하며 남북관계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9년 북한은 조문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조문 사절단으로 명칭을 바꿨다”며 “조문하는 기회에 남북관계를 논의하겠다는 의지였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조문단 파견이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을 순방 중이고, 남북관계 물밑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해외 출장 중이라는 점에서 마땅히 만날 사람이 없는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용수·백민정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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