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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 속 아이의 차가운 손, 백인 목사를 움직이다

중앙일보 2019.06.12 08:00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8)
1952년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컴패션. 미국에 위치한 국제컴패션 사무실 입구에는 갓난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있는 한국 엄마와 아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국에서 50년대 한국의 모자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의 아픔이 느껴졌다. [사진제공 한국컴패션]

1952년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컴패션. 미국에 위치한 국제컴패션 사무실 입구에는 갓난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있는 한국 엄마와 아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국에서 50년대 한국의 모자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의 아픔이 느껴졌다. [사진제공 한국컴패션]

 
지난 3월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는 국제컴패션 사무실을 방문했다. 입구에서 마주친, 포대기로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한국인 모자 동상이 정겹다. 로비 한쪽에는 1952~1993년까지 41년간 한국 전쟁고아와 가난한어린이들을 도운 컴패션의 설립자, 에버렛 스완슨(Everett Swanson, 1913~1965) 목사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어로 쓰인 감사편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밥을 구걸해 먹던 깡통, 보육원 어린이 사진이 보인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는 첫 번째 나라가 된 한국. 우리를 바라보는 국제컴패션 직원들의 눈길은 감탄과 따뜻함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굶어 죽는 한국 어린이를 돕기 위해 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제는 180만명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함께 양육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그들이 보기에는 기적일 것이다. 당시의 사진을 통해 컴패션의 탄생 계기가 된 암울했을 전쟁 한복판의 상황을 상상해 보게 된다.
 
1951년 한국을 방문한 스완슨 목사는 핏빛 전쟁터 속에서 길거리를 가득 메운, 부모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어린이와 수많은 전쟁고아의 죽음을 보았다. 그의 일기장에는 서울시청 주변에 산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와 불타버린 건물 등 당시 한국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폐허에 모여 살던 어린이들은 외국인이 나타나면 구름 떼처럼 몰려와 빈 깡통을 내밀며 지갑이 빌 때까지 목청껏 “기브 미!”를 외쳤다고 한다.
 
한국을 떠나던 날 새벽, 그는 트럭 위 쓰레기 더미에서 튀어나온 어린아이의 손을 보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멈춰요. 아이가 있어요. 그건 쓰레기가 아니에요.” 무작정 쓰레기 더미를 헤치던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넝마 조각 안에는 밤새 추위와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다 죽은 어린아이의 시신이 있었다. 둘러보니 트럭 안에는 그런 어린이의 시신이 가득했다.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한국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컴패션을 설립했다. [사진 한국컴패션 홈페이지]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한국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컴패션을 설립했다. [사진 한국컴패션 홈페이지]

 
그는 자신이 본 비참한 장면을 잊을 수 없었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탔던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너는 이것을 보았는데, 이제 무엇을 할 것이니?”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고 한다.
 
전쟁이 할퀴고 간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스완슨 목사는 1952년 강원도 삼척에 보육원 ‘신애원’을 세웠다. 한 어린이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내밀었던 찌그러진 빈 깡통 하나를 들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 어린이를 도와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 깡통은 그냥 쓰레기지만, 한국의 한 어린이에게는 생명줄입니다. 이 어린이를 살려주세요.”
 
한국을 돕자는 그에게 수많은 백인이 “우리 주위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왜 한국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때마다 그의 답변은 동일했다. “우리 주위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천국에 백인만 혹은 미국 시민만 가는 것을 주님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쓰레기 트럭에 실려 죽어 나가는 한국 어린이를 긍휼하게 생각하세요.”
 
한국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자신에게 큰 축복이자 특권이었다는 그의 글을 읽으며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가져온 놀라운 기적을 생각했다. 그의 도움으로 성장한 10만명의 한국 어린이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컴패션 히스토리관 안에는 후원자님이 보내준 ‘생일선물 2달러’로 블라우스, 연필 한다스, 바지와 모자, 수영복과 슬리퍼를 샀다는 감사편지(1964)와 헌 깡통(왼쪽), 한국 대통령에게 받은 표창장과 삼색부채, 깡통기타 등 옛날 한국의 물품들이 전시되어있다(오른쪽). [사진 한국컴패션]

컴패션 히스토리관 안에는 후원자님이 보내준 ‘생일선물 2달러’로 블라우스, 연필 한다스, 바지와 모자, 수영복과 슬리퍼를 샀다는 감사편지(1964)와 헌 깡통(왼쪽), 한국 대통령에게 받은 표창장과 삼색부채, 깡통기타 등 옛날 한국의 물품들이 전시되어있다(오른쪽). [사진 한국컴패션]

 
그 열매 중 하나가 이제는 다른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돕는 후원국이 된 한국이다. 너무나 멀고 낯선 나라인 한국을 향한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난을 이겨낸 많은 어린이가 있을 수 있었다.
 
빈곤, 이것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으로 희망을 잃은 어린이를 돕는 것은 단순한 기부 행동 그 이상의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작은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시작이 되고 삶을 바꾸는 기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나는 비영리 단체에 와서 직접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것을 가지고 있다. 전문적 지식과 기부는 물론이고 봉사활동, 사랑과 따뜻한 말 한마디, 커피 한잔 등 마음만 있다면 나눌 것은 많다. 아는가? 그 나눔이 우리네 삶을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마법의 비밀을….
 
‘한 어린이의 손을 잡았을 때 한 보육원을 세울 수 있게 해주셨고, 한 보육원을 세웠을 때 한 나라를 일으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병실에서 에버렛 스완슨, 1965)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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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경 조희경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전략기획팀장 필진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 최고급 아파트를 팔던 18년 차 마케터에서 NGO 신입생으로, 남 도우러 왔다가 내 마음 수련 중이다. 직장이 아닌 인생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어 선택한 길. 돈과 지식보다 진심 어린 마음이 더 위대한 일을 해낸단 걸 배우고 있다. 더 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은 중년 아줌마의 고군분투 NGO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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