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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게 아름다웠다, 핸드백 들고 화장실 앞에 선 그 신사

중앙일보 2019.06.12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92)
더,오래에서 연재 중인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 [일러스트 강인춘]

더,오래에서 연재 중인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 [일러스트 강인춘]

 
내 글도 올리면서 ‘더,오래’ 코너의 글도 빠짐없이 다 읽는 나는 열정 애독자다. 몇몇 분의 글은 스크랩하여 함께 보기도 하는데 그중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 컷 만화가 참 재밌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분 중에 연세 드신 분들께 보내 드리면 배꼽 잡고 웃는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주시며 좋아하신다. 아침부터 투덕거린 부부에겐 화해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것도 마음을 웃게 해드리는 작은 봉사라며 스스로 칭찬하곤 한다.
 
더,오래 코너는 중년을 넘어서 정치경제를 벗어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사는 제2의 인생을 알려주는 코너다. 노후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건강관리, 취미 생활, 여행 등등 유익한 거리가 참 많다. 그중에 강인춘님의 만화는 더 재밌고 오래 여운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꼬리 글을 보다 보면 젊은 사람도 많이 보는 것 같다. 도대체 이해 안 되는 글이라며 의견보다는 욕설을 써놓는 사람도 많아서 때론 마음이 어지럽지만 연륜이 다져져서 그런지 섭섭함보다는 ‘그러게 말이다’ 하고 나도 웃어넘긴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나의 노후는 물론 나이 든 분들의 시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해도 못 했으니 말이다. 그냥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는 감정이라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어른들의 행동이나 모습을 보며 난 절대 저런 모습으로 늙지 않겠다고 했건만 나는 그보다 더 이상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는 걸 보면 나이 듦의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란 걸 깨닫는다.
 
성당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행사가 끝난 후 화장실 앞에서 아내분의 핸드백을 들고 서 계셨다. 백발의 머리가 햇살에 반짝이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다소 민망할 법도 한데 서로 살피며 기대어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진은 한 노부부가 손잡고 산책하는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연합뉴스]

성당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행사가 끝난 후 화장실 앞에서 아내분의 핸드백을 들고 서 계셨다. 백발의 머리가 햇살에 반짝이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다소 민망할 법도 한데 서로 살피며 기대어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진은 한 노부부가 손잡고 산책하는 모습.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연합뉴스]

 
지난주엔 가톨릭 안동 교구 행사가 있어서 참석했다. 서울서 내려와 정착한 이곳에서도 두 번이나 이사했으니 두 군데 성당에서 오신 어르신들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점심을 함께하고 잠시 여유를 즐기면서 마침 그날 본 만화가 생각나서 부부가 함께 오신 남자분들에게 우스개 농담을 했다.
 
“할배가 되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뭘까요?”라고 물으니 70~80대 남자분들이 이구동성으로 “그거야 눈만 뜨면 마누라 오늘 기분이 어떤가 살피는 일이지”라고 하셔서 모두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정답 선물이라며 만화 스크랩한 걸 카톡으로 보내드렸더니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구먼’ 하시며 기운 난다고 껄껄 웃으신다.
 
그분들은 젊은 시절 대쪽같이 깐깐하고 내로라하는 직위와 높은 자리에서 일하신 경력이 있지만 부인 앞에선 어쩌면 그리 버들가지처럼 사분사분 하신지 존경스럽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연금도 넉넉하게 나오고 여유도 있으셔서 여행도 함께 자주 다니시며 사시니 큰소리 치실만도 한데 사는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부부와 똑같아서 가끔 스크랩해서 보내 드리는 거로 안부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번 행사가 끝나고 마당에서 차 한잔하고 헤어지려는데 젊은 시절 까칠하고 깐깐한 멋쟁이셨던 한 어르신이 화장실 근처에서 여자 핸드백을 들고는 서 계신다. “언니는요?”라고 물으니 “응~ 화장실 갔어. 여기서 기다리라네” 하셨다.
 
여자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 앞에 서 있는 초로의 노인 모습이 후줄근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백발의 머리가 햇살에 빤짝이던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노을이 아름다운 해 질 무렵의 풍경 같아 가슴이 찡했다.
 
나이가 들어야 알 수 있는 이 감정 이야기에 또 어떤 꼬리가 나를 꼬집고 물어도, 그래도 나이 들어 서로 눈치껏 살펴주고 기대어 사는 그런 모습에 그날 하루 나도 버들가지처럼 사분사분한 모습으로 어르신 사이에 섞여 행복함에 젖어 보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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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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