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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혈흔에 담긴 前남편 반항…경찰, 고유정 동기는 못밝혔다

중앙일보 2019.06.11 13:41
얼굴 공개된 전 남편 살해 피의자 고유정. 최충일 기자

얼굴 공개된 전 남편 살해 피의자 고유정. 최충일 기자

전 남편을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고유정(36)의 범행은 사전 치밀한 준비 속에 이뤄진 계획범죄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녀가 전 남편을 왜 죽였는지에 대한 동기는 여전히 고유정의 진술에 따른 추측 수준에 머물러 부실 수사 논란은 여전하다.
 
제주동부경찰서는 11일 사건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고유정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등의 혐의로 12일 구속 송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고씨가 우발적인 범행을 주장하고 있으나, 범행 전 '니코틴 치사량', '시신 유기방법'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제주도에 오기 전인 지난달 17일 주거지인 청주 일대 병원·약국에서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처방 받아 구매하는 등 범행도구를 구입한 점, 차량을 준비해 시신을 가져간 점, 범행 현장을 청소하고 시신을 훼손해 여러 곳에 유기한 점 등에 비춰 계획범죄로 판단했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8시부터 9시16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6)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씨가 이날 오후 8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통화 한 후 연락이 끊겼고 9시 16분쯤 전화가 꺼졌기 때문이다. 전화가 꺼지지 전 가족과 나눈 문자 등에선 주어가 없는 등 평소와 다른 문체의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는 이튿날인 지난달 27일 오전 11시30분 펜션을 나올 때 까지 강씨의 시신을 훼손하고, 28일 오후 9시30분부터 7분간 완도행 여객선에서 시신의 일부를 바다에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난달 29일 경기도 김포시에 소재한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에 도착한 고씨는 이날 오전 4시부터 5시31분까지 집에 있던 예리한 도구를 이용해 시신의 남은 부분을 2차로 훼손하고, 이 시신을 종량제봉투에 담아 이틀 뒤인 31일 오전 3시 13분부터 21분 사이 분리수거장에 유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포시의 집에선 강씨 유해를 훼손하기 위한 도구와 파편 등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한 커버링 작업 등에 쓰인 사다리와 방진복(속옷을 보호하는 의류) 등이 추가로 발견됐다. 훼손용 도구는 제주에서 김포로 가기 전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해 받은 것이고, 사다리 등은 인천시 부평에서 따로 구입했다.

 
제주 전 남편 살인 뼛조각 발견 인천시 서부지역 재활용업체.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제주 전 남편 살인 뼛조각 발견 인천시 서부지역 재활용업체.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경찰은 강씨가 25일 펜션에 입실은 했으나 나가는 장면이 주변 폐쇄회로TV(CCTV)에서 확인되지 않는 점, 펜션 내부 감식 및 루미놀 검사 결과 혈흔 반응이 확인되는 점 등에 비춰 고씨에 용의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천장과 벽면 등에 튄 혈흔의 흔적으로 볼 때 방어 흔적은 있으나 반격한 흔적은 없어 약물 등을 사용한 것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또 벽면에 튄 혈흔이 150㎝ 높이까지 튀었다 동선을 따라 점점 낮게 튄 점 등을 볼 때 흉기에 찔린 피해자가 반항하며 도망친 것으로 추정 했다.  
 
공범 여부와 관련해 경찰은 범행시간대 고씨의 휴대전화 사용내역, 미리 범행도구 및 수면제 구입 등 사전에 범행을 준비한 점, 체포시까지 동행인이 없었던 점, 여객선에서 혼자 시신 일부를 유기하는 장면이 확인되는 점 등으로 볼 때 공범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범행동기는 여전히 추측 수준의 결론만 도출된 상황이다. 제주경찰은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의 범행동기를 복잡한 가정사 문제로 보고 검찰 송치 후에도 수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또 청주 상당경찰서에서도 석달 전 고유정의 의붓아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한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다. 
 
고유정을 조사한 범죄심리전문가(프로파일러)들은 그녀에게서 일부 성격장애가 관찰되긴 했지만 사이코패스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장은 11일 “피의자가 전 남편과 아들의 면접교섭으로 인해 재혼해서 완벽한 가정을 꿈꾸고 있던 고유정이 전 남편과 아들의 면접교섭권이 인정되면서 현재 결혼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유정과 전 남편 강씨는 이혼한 후에도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의 양육문제를 둘러싸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육권이 있는 고씨가 강씨와 아들의 만남을 막자 강씨가 법원에 면접교섭 재판을 신청해 2년만에 만나기로 한 날이 바로 범행일인 5월 25일이었다. 실제 고유정은 면접교섭이 결정된 다음날인 지난달 10일쯤 스마트폰으로 수면제 일종인 ‘졸피뎀’ 등 범죄와 관련된 검색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청주=최충일·김준희·최종권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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