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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 살해' 제주 펜션…손님 오면 시끄러운데 그날은 조용"

중앙일보 2019.06.11 11:33
10일 오후 7시쯤 제주시 조천읍 한 주택. 도로에서 샛길로 빠져 수백m를 더 가면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이다. 오래된 양옥을 개조한 '민박형 펜션'이지만, 펜션 이름이 적힌 간판은 없었다. 대문 너머로 잔디가 깔린 마당이 보였다. 나무로 된 흔들의자도 있었다.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보기 좋게 손질돼 있었다.  
 
이 펜션은 고유정(36)이 2년 만에 아들(6)을 만나러 온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곳이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강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최소 3곳 이상 장소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손괴·은닉)로 구속됐다. 펜션 겉모습만 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고유정(36)이 전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 수 있는 구조다. 제주=김준희 기자

고유정(36)이 전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 수 있는 구조다. 제주=김준희 기자

'제주도 토박이' 고유정은 왜 이곳을 범행 장소로 골랐을까. 집을 살펴보고, 이웃 주민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렸다. 
 
이 펜션은 손님이 숙박비를 입금하면 입실과 퇴실 때 주인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무인(無人) 펜션'이었다. 현관문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구조였다. 펜션은 고유정이 예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펜션에는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돼 있지만, 촬영·녹화가 안 되는 깡통 CCTV였다. 하지만 고씨 승용차가 드나드는 장면은 인근 다른 집 CCTV에 찍혔다.
 

펜션 근처 한 주택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기자 신분을 밝히자 집주인은 정색하며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니에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양손에 짐을 들고 집에 들어가는 이웃집 남성을 만났다. 그는 펜션 주인을 알았다. "70대 남성으로 2~3년 전쯤 펜션을 열었는데, 집만 빌려 주고 다른 데서 산다"고 했다. 그는 "다른 때는 손님들이 오면 시끄러운데 (살인 사건이 있던) 그날은 조용했다"며 "뉴스를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산책 나온 50대 여성은 "주민 상당수가 외지(육지)에서 이사온 지 몇 년 안 된 이주민이다 보니 집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고 했다. "농사를 짓는 일반 시골과 달리 원래 밭이었던 땅을 분할·판매해 만든 취락(가옥 집합체) 지구여서 주민끼리 왕래가 거의 없고 마을 사정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펜션 주인은 무슨 죄냐. 이런 사건이 터져 많이 힘들어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고유정(36)이 지난달 25일 전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 내부 정원. 제주=김준희 기자

고유정(36)이 지난달 25일 전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 내부 정원. 제주=김준희 기자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한 상점 여주인은 "사건 장소가 이 동네 맞냐"고 되물었다. 집 정원에서 가지치기하던 한 여성(65)은 "이 동네에서 30년 넘게 살았지만, 도둑질 같은 범죄도 없었다. 설사 일부 주민이 알았어도 '땅값 떨어진다'고 얘기를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동네는 관광객이 몰리는 '펜션촌'이 아니다. 펜션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오후 8시가 넘어가자 가로등이 있는데도 동네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불 꺼진 집도 많았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달 25일 범행 장소인 펜션으로 가기 직전 제주시 한 마트에서 전 남편과 함께 장을 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재감정 결과 고씨 승용차에서 발견된 이불에 묻은 강씨 혈액에서 수면제 일종인 졸피뎀이 검출됐다.  
 
고씨는 지난달 17일 충북 청원군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든 수면제를 처방받아 인근 약국에서 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키 160㎝·몸무게 50㎏인 고씨가 키 180㎝·몸무게 80㎏인 전 남편을 살해하는 데 졸피뎀을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씨는 여전히 "전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이를 막기 위해 수박 자르려고 산 칼로 한두 차례 찔렀다"며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고 있다.  

 
제주=김준희·최충일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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