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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벌떼 축구’의 역사

중앙일보 2019.06.11 00:06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승현 정치팀 기자

김승현 정치팀 기자

36년 전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른 지난 일요일 새벽 기억의 한계가 왔다. 1983년의 역사를 찾아보고서야 36년 만의 쾌거를 제대로 느꼈다. ‘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사단’, ‘벌떼 축구’…. 개발도상국 11살 소년의 가슴을 뒤흔든 사건이었는데. 3·4위 전에서 폴란드에 1대 2로 진 한국팀은 ‘페어플레이 트로피’도 받았다. “역시 동방예의지국의 아들”이라며 뿌듯해한 것 같다.

 
‘벌떼 축구’는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에 1대 2로 진 한국팀을 AP통신이 ‘swarm(스웜·벌떼)’이라고 칭찬한 데서 유래했다. 벌떼가 무리 지어 날 듯 공만 잡으면 순식간에 공격진을 형성했다. 개인기를 극복한 악바리 정신, 그게 우리 무기였다. 그 뒤엔 박종환 감독(당시 45세)이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축구 광신도처럼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어려웠던 선수 시절, 머슴살이 경험이 그를 냉정한 승부사로 만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36년 뒤의 주인공은 이강인(18)이다. 2007년 KBS 예능 ‘날아라 슛돌이’에서 만 6세 축구 신동으로 이름을 알린 아이다. 2011년 스페인 유학을 떠나 지금은 명문 팀 발렌시아의 ‘월드클래스’ 신인이 됐다. 슛돌이팀 감독은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 유상철이었다.  
 
일제강점기 35년보다 더 긴 시차를 둔 성공스토리는 사뭇 다르다. 이젠 신화도 아니고 ‘국뽕’도 예전 같지 않다. 다만 세월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지는 게 있다. 과거의 한국이 훨씬 더 무모한 도전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36년을 한 번 더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김원봉이 최근 한국 사회를 양분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 싶지만, 죽음을 불사한 무모한 도전의 시대를 이해하기엔 우리의 개인기가 너무 부족함을 느낀다.
 
김승현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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