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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성 식물 맨드라미, 그 붉은 욕망에 빠진 19년

중앙일보 2019.06.11 00:02 종합 23면 지면보기
우리 시대, 이 작가 ① 김지원
2014년부터 작업해온 새 연작 ‘비행’(2014, 300x230㎝). [사진 PKM갤러리]

2014년부터 작업해온 새 연작 ‘비행’(2014, 300x230㎝). [사진 PKM갤러리]

개성 있고 통찰력 있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는 미술가들을 소개하는 시리즈 ‘우리 시대, 이 작가’를 시작한다. 그 첫 회로 맨드라미 작가 김지원을 만났다. 편집자
 
 
 
김지원, '풍경'(2017, oil on linen 24x34cm). [사진 PKM갤러리]

김지원, '풍경'(2017, oil on linen 24x34cm). [사진 PKM갤러리]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다’.
 요즘 많이 들리는 이야기다. 과거와 달리 현대미술은 ‘그림’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었다.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사용할 수 있는 매체가 무한대로 늘어났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로 미술은 더 난해해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 양식인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한 도전’인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자신을 스스로 ‘캔버스 김’이라 부르며 작업하는 작가 김지원(58·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있다. 
 
 최근 그의 전시장을 찾은 강수미 미술평론가(동덕여대 교수)는 “김지원의 작품은 회화가 주는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전한다”며 “그의 그림은 작가가 자신의 관점을 발견해가는 과정, 갈수록 성숙해지는 세계를 관찰하는 묘미를 준다”고 말했다.
 
‘맨드라미’(2018, 91x73㎝). [사진 PKM갤러리]

‘맨드라미’(2018, 91x73㎝). [사진 PKM갤러리]

대형 화폭에 붉은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거친 가시덤불을 외투처럼 걸친 모양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꽃이라니. 김지원 작가의 맨드라미는 뜻밖의 비장함과 생동력으로 화면 밖으로 이야기를 걸어온다.
 
김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삼청로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이 ‘캔버스비행’인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적인 페인팅 연작인 ‘맨드라미’ 신작을 포함해 ‘풍경’ ‘비행’ ‘무제’ 등 90여 점의 회화, 드로잉, 설치 작업을 공개하는 자리다.
 
그에게 맨드라미 그림만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작가는 의연하게 그 기대를 배반했다. 이번 전시에 맨드라미 그림과 팽팽한 비중으로 ‘비행’과 ‘풍경’ 연작을 내놓았다. 김 작가는 “맨드라미를 그려온 지 19년째”라며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맨드라미 작가’로 부르는 게 언제부턴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맨드라미는 내가 오랫동안 캔버스 안에서 탐구하는 여러 이미지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잡풀과 맨드라미가 어우러진 겨울 풍경 속에서 숭고함을 느낀다"는 김지원 작가. [사진 PKM갤러리]

"잡풀과 맨드라미가 어우러진 겨울 풍경 속에서 숭고함을 느낀다"는 김지원 작가. [사진 PKM갤러리]

2002년부터 맨드라미 꽃을 그려왔다.
“꽃이 아름다워서 그린 게 아니라 이상해 보여서 그렸다(웃음). 맨드라미 꽃은 어떻게 보면 닭 벼슬을 닮기도 하고 천엽처럼 보이지 않나? 꽃이면서도 동물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 이중성에 매료돼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림 속 맨드라미는 ‘고운 꽃’과는 거리가 먼, 거칠고 드센 이미지다.
“내가 맨드라미를 그리며 떠올린 4개의 키워드가 있었는데, 그게 욕망, 연정, 혁명, 독사였다. 꽃 그림이지만 그 안에 독사 한 마리가 숨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번 전시 도록에 공개한 글에서 “전깃줄처럼 엉킨 풀과 나무들의 지독한 아귀다툼 녹색 풍경과 강렬한 햇빛의 대비에서 생존의 무서움을 본다”고 적었다.
 
전시엔 맨드라미 연작과 전혀 달라보이는 작품들을 다수 내놨다.
“설치 작업부터 ‘비행’과 ‘풍경’ 연작까지 최근 몇 년간 내가 해온 작업을 망라했다. 특히 ‘비행’ 연작은 내가 하루종일 머무는 작업실 풍경을 캔버스에 담은 것이다. 내가 캔버스 나무 틀로 직접 조립해 설치한 모형 비행기부터 산책하며 주워온 그물, 철사와 플라스틱 조각 등 잡동사니가 작업실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이 풍경이 내 그림의 중요한 대상이 됐다.”
 
작업실 풍경 그림은 결국 ‘작품을 그린 작품’이 됐다.
“우스운 얘기인데 아주 오랫동안 써온 내 이메일 아이디가 ‘캔버스 김’이다. ‘캔버스 김’은 항상 작업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사회를 생각하는 나를 말하는데,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런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떨까? 그렇게 화가를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작업해본 것이다.”
 
심상용 서울대 교수는 ‘비행’ 연작에 대해 “(김지원은) 최대한 자유롭고 임의적이고 빠른 선들을 산발적으로 배치한다”며 “이렇게 과하지 않은 터치들이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평했다. 심 교수는 또 “맨드라미에서 캔버스 비행에 이르기까지 김지원의 세계는 두고두고 보아도 권태롭지 않은 신선함이 늘 있다. 맨드라미에서 전해오는 것이 자연으로부터의 위안이라면 캔버스 비행에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차갑지 않은 꿈의 서사가 있다”고 했다.
 
페인트 칠이 다 벗겨진 탱크 저지선 등 풍경 그림도 눈에 띈다.
“빛바랜 사진 속 지리산 고사목부터 양옥집 난간 등 도시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풍경도 그리고 있다. 무엇이든 계속 바라보면 생각하게 되고, 한참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그리게 된다. 내게 그림은 그렇게 시작된다.”
 
강수미 평론가는 “김지원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그림’ 그 자체”라며 “그에게 정물이든 풍경은 탐구 대상이자 그리기의 모티프 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세계를 다르게 인지하는 작가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김지원
인하대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 미술학교(슈테델슐레)를 졸업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제15회 이인성 미술상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아트선재센터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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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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