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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의 시선]트럼프가 시진핑에게 패배한다면

중앙일보 2019.06.10 00:05 종합 29면 지면보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양보 없는 '패권 경쟁'을 놓고 맞붙었다. [AP]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양보 없는 '패권 경쟁'을 놓고 맞붙었다. [AP]

세력이 기울던 기존 강대국이 부상하던 신흥 강대국을 인정사정없이 때리고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3분 2에 육박하자 미국이 방아쇠를 당겼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정면출동하고 있다. '치킨 게임' 양상 때문에 세계 안보 지형과 글로벌 경제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국제 정치와 세계 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두 강대국의 무책임한 처신은 지구촌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참다못한 국제사회 양심들이 입을 열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5일 "미·중 보복관세 때문에 2020년 각국 GDP에서 4550억 달러(약 535조원)를 잃을 것"이라며 "미·중 무역 전쟁은 자해행위이고 양국 모두 실패자(Loser)"라고 작심 비판했다. 

미국 공세에 중국은 장기전 태세
'중국 길들이기' 실패시 최악 우려
한국, 안보·금융 위기에 대비해야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미·중 무역 전쟁은 자해행위이고 양국 모두 실패자"라고 작심 비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미·중 무역 전쟁은 자해행위이고 양국 모두 실패자"라고 작심 비판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처음 제기한『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대만·남중국해·한반도에서 미·중 군사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섬뜩한 말이다. 중국 매체들은 6·25 전쟁 당시 강원도에서 벌어진 삼각고지 전투(중국명 상감령 전투)를 언급하며 미국에 맞선 승전을 외치고 있다. 불길하고 불쾌한 대목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대결은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은 안보든 경제든 어느 한쪽도 포기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섣불리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어리석다. 지정학 리스크에 누구보다 취약하게 노출된 나라가 한국이다. 강대국의 구심력에 연루(entrapment)되지도 말아야 하고, 강대국의 원심력에 튕겨 나가 버림받는 방기(abandonment) 상황도 피해야 한다. 한국의 딜레마적 상황이다.
5월 30일 제주평화포럼에서 '미중 관계의 미래를 묻다:투키디데스의 함정과 한반도의 운명' 세션이 열렸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리자오싱 전 중국 외교장관 등이 참석했다. 우상조 기자

5월 30일 제주평화포럼에서 '미중 관계의 미래를 묻다:투키디데스의 함정과 한반도의 운명' 세션이 열렸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리자오싱 전 중국 외교장관 등이 참석했다. 우상조 기자

 요즘 중국 외교관과 지식인들은 "트럼프 임기만 잘 넘어가고, 미국과의 전쟁만 없다면 시간은 중국 편"이라는 말을 흘린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절의 자력갱생 구호까지 외치며 장기전 대비 태세다. 시진핑은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손을 잡으면서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무역 및 외환 보유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어떤 위험과 도전에도 대응할 수 있는 모든 필요한 조건과 능력·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불현듯 트럼프가 '중국 길들이기'에 올인하다 단기전에서 실패하는 '불편한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시진핑은 개헌으로 종신 집권의 길을 열어뒀지만,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해도 5년 뒤면 물러난다. 트럼프 같은 '변칙 복서(boxer)'조차 시진핑의 중국을 제대로 길들이기 하지 못하면 세상은 어찌 될까. 미국에 제2의 트럼프가 나올까. 중국은 장기전에서 승리해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질주할까.  
 미·중 패권 경쟁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심경은 복잡다단하다. 동북아 골목에서 커진 몸집을 앞세워 종종 행패를 부리는 '거친 이웃'을 골목 밖 '큰 주먹'이 개입해 버릇을 고쳐주고 교양인으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가 자유무역질서를 지켜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가 순탄하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자유무역으로 일어서고 민주주의를 성취한 한국인 입장에서 미국에는 자유무역을, 중국에는 민주주의를 촉구하고 싶다. 그래도 당분간 두뇌는 기민하게, 목소리는 낮추고, 행동은 작게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중 갈등이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라는 분석도 있지만, 리스크 요인이 커 보인다. 무역 전쟁 와중에 1분기 성장률은 -0.4%로 뒷걸음질 쳤고, 경상수지도 7년 만에 적자를 보였다. 그런데도 지금 이 정부는 위기에 대처할 전략이나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외교부를 배제하는 바람에 무시당한 외교관들은 무기력·무능력·무책임해지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 출신 선무당들이 아니라 직업 외교관들이 다시 전문성을 살려 정교한 대외 메시지를 다듬어야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를 예방해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를 예방해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정부 고위 인사든 정치인이든 미국에 가서는 중국 얘기를 공개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대외 위기 앞에서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당파를 초월해야 한다. "한 방에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미국인은 맞고소하고, 중국인은 장사를 흥정하고, 한국인은 서로 싸우려 한다"는 미국 농담이 있다.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외교 갈등 때문에 2015년 2월 종료된 한·일 통화스와프(700억 달러)를 이제라도 복원해 금융 위기 방파제로 삼아야 한다. 감정에서 벗어나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위기를 넘는 첩경이다. 
 중일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불편했던 양국 관계를 뒤로하고 국익을 위해 다시 손을 잡았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계속 긴장관계다. [중앙포토]

중일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불편했던 양국 관계를 뒤로하고 국익을 위해 다시 손을 잡았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계속 긴장관계다. [중앙포토]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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