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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역사관

중앙일보 2019.06.10 00:04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추념사의 다른 곳에서 대통령은 치우치고 선을 넘어선 인식을 드러냈다. ‘김원봉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해석될만한 발언을 한 것이다. 현재까지 문 대통령은 ‘그런 뜻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면 6·25 때 김원봉의 침략군과 싸우다 희생된 15만명 한국군 장병들은 자기 뿌리한테 맞서 대든 패륜아가 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1인치의 땅도 거저 얻은 게 없다’며 숱한 피를 흘려 이 땅을 지켜낸 사람들이 패륜 공동체였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고 했지만 대한민국이 그동안 뿌리를 몰라보는 패륜 공동체였다면 어떻게 그런 나라에 애국할 수 있겠나.
 

침략자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면
국군은 뿌리에 대든 패륜아인가
국가 지도자의 책무는 국민통합

김원봉이 1952년 3월 19일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훈장의 공적서엔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로서 후방에서 군량미를 생산하는 일에 기여해 조국해방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정권기관의 지도일꾼”이라고 써있다고 한다. 여기서 조국해방전쟁이라 함은 소련의 지도를 받는 북한군이 중국군과 함께 한·미 연합군(유엔군 포함)을 격퇴하여 한국을 공산화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그들의 조국해방전쟁이 성공했다면 한국은 지도상에 사라지고 우리는 지금 김정은의 전체주의적인 공포정치에 떨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지난 70여년 한국 역사를 분단체제니 뭐니 하면서 탄생해서 안 될 흑역사인 듯 호들갑 떨고 있는데,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분단체제일망정 공산체제가 아닌 것에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이 나라를 공산체제가 안 되게 목숨바쳐 지켜 주신 현충원의 영혼들에게 눈물로 머리숙일 뿐이다.
 
북한 정권 초대 내각의 검찰총장(국가검열상)이자 6·25 당시 노동상이었으며 김일성이 서훈으로 남침의 공로자임을 인증한 사람에게 ‘국군의 뿌리’라는 영예를 선사한 대통령의 현충일 관련 언급이 취소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과 한국군의 역사가 치욕스럽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선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문 대통령의 책무인 ‘통합된 사회’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발언을 취소해 주시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문 대통령의 세계관과 역사 인식에 의문을 가진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첫 번째가 2017년 10월 15일 중국 베이징대 연설에서 “저는 시진핑 주석에게서 중국의 통 큰 꿈을 보았다.…한국도 작은 나라이지만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고 할 때였다. 중국을 대국으로 높이고 자신이 국가원수로 있는 한국을 소국이라고 낮추다니 이건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두 번째는 2018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의 5·1경기장에서 군중들에게 “남쪽 대통령으로서…김정은 위원장과 나는…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외칠 때였다. 남쪽? 새로운 조국이라니. 우리에게 한국 말고 또 어떤 다른 조국이 필요하단 말인가. 남북평화나 신한반도체제까지는 좋은데 그 너머 다른 그림이 있는 걸까.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언행 아닐까. 세 번째는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민족정기 확립은 국가의 의무”라고 선언할 때였다. 인구의 95%가 1945년 해방 후 태어난 세대인데 친일분자를 어디서 찾아내 청산하려는 걸까. 설마 부모가 친일인 사람들을 조사해 소급 연좌제를 씌우자는 건 아닐 테고.
 
문 대통령과 집권층 일부 세력은 반일 민족주의 감정에 심취한 나머지 국가 경영자로서 균형감을 잃을 때가 가끔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크며 국민은 다양하다. 공화국의 나라다. 제왕도 아니면서 개인 취향으로 한 곳으로만 매진하면 곤란하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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