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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중국의 일대일로 진격에 미국이 방어의 칼 뽑아들었다

중앙일보 2019.06.10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21세기 황화론이 불 붙인 미·중 무역전쟁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칭기즈칸은 무자비했다. 저항하는 민족 앞에 관용은 없었다. 기마 부대를 앞세워 순식간에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다. 루트는 초원길에다 바닷길·사막길로도 연결된 실크로드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위대한 중화를 부흥시킨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선언하고 그 수단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건설에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대일로는 역사적으로 2000년에 이르는 유라시아 교역 루트의 현대판일 뿐이다.
 

중국이 미국 중심 기존 질서 깨고
기술패권 빼앗으려 한다는 공포감
중국몽 본격화할수록 충돌 격화
한국 생존은 초격차 벌이는 길뿐

중국의 경제 굴기가 자아내고 있는 ‘차이나 포비아’는 이런 역사적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21세기 황화론(黃禍論)’이다. 황화론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19세기 일본이 급부상하자 처음 거론했다. 1895년 거대한 청나라를 무너뜨린 일본의 위력을 보면서 황인종이 서구의 백인 사회를 위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공포감이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도 황화론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서양인에겐 몽골부터 일본까지 황화론의 공포감이 뼛속 깊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 공포감이 미국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1978년부터 개혁개방에 나서 세계 경제 2위로 부상한 데 이어 2030년경 미국 경제 추월을 앞둔 중국이다.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 결정판은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칼을 뽑아 든 중국과의 무역전쟁이다.
 
미국은 당초 중국을 ‘팍스아메리카나 체제(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포함하려고 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와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지원했다. 미국 역대 정부는 사회주의 체제에 따른 불확실성에도 애플·IBM·제너럴모터스·나이키 등 미 간판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도록 했다. 뒤이어 일본·독일·한국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기술 이전과 함께 투자를 확대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국이 자유와 민주적 가치를 가진 나라로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진핑의 등장으로 기대는 빗나갔다. 이와 관련해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미 하원의장(1995~99년)을 지낸 뉴트 깅리치 전 공화당 의원은 뉴스위크(5월 20일자)에서 깊은 통찰을 보여줬다. 미국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은 것은 미국의 두 가지 결정적 착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첫 번째 오판은 미국 자신의 오만과 일방적 희망이었고, 두 번째는 호의적인 듯한 얼굴을 보여주는 중국 특유의 기만 전략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깅그리치는 첫 번째 오판에 대해 “중국인은 서방을 추종하기보다 중국적 특성을 유지하고 레닌주의 사회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사실을 미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오판에 대해서는 “중국은 공동 번영을 내세워 인프라 투자를 수반하는 일대일로를 통해 필연적으로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이 대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중국이 지배하는 세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대일로는 개시 5년 만에 유라시아·아프리카·중남미까지 80여개 국에 걸쳐 연결했고, 대상국은 최대 152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실상 미국만 빼고 전 세계를 연결하는 셈이다. 동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지배권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어디까지 물러나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다. 미국이 지난해 국방전략보고서에 중국을 미국의 이익과 가치에 반해 기존 질서 재편을 노리는 ‘수정주의 국가’로 적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중 기술 패권의 역전 두려움
 
트럼프

트럼프

미국의 이런 두려움은 기술 패권의 역전 가능성에서 나온다. 그 공포의 진원지는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다. 미국은 화웨이(華爲)의 진격을 예의주시했다. 올해 들어 스마트폰에서 애플을 제치고 5G 통신장비 1위 기업으로 치고 나오면서 미국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동맹국 캐나다가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딸을 체포한 것은 신호탄이었다. 미국은 동맹국에 대한 화웨이 봉쇄 압박도 강화했다. 이에 반발해 런 회장이 “미국이 부탁해도 화웨이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정면 반발하자 트럼프는 지난달 15일 미 기업들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블랙리스트에 화웨이를 올렸다. 구글·퀄컴·인텔 등 기업들은 즉각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중국은 허를 찔렸다. 중국 내수 시장은 이미 구글·유튜브 사용을 차단해 놓아 문제가 없지만 1억 명의 소비자를 확보한 유럽 시장은 통째로 놓칠 위기에 직면했다. 구글 접근과 유튜브가 안 되는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와이파이·반도체·메모리카드 표준을 결정하는 국제기구에서도 화웨이를 퇴출했다. 영국·일본 기업들은 빠르게 반(反)화웨이 동맹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의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은 즉각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고, 대중 관계 개선을 추진하던 일본도 화웨이 배제 방침을 밝혔다. 미·중 양국의 기술 전투는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이던 뉴욕타임스(NYT)도 반중(反中)에는 인색하지 않다. 대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미국 주도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중국이 이제 와서 ‘제조 2025’를 내걸고 미국의 핵심기업과 경쟁하겠다니 미국이 그동안 베풀었던 특혜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며 “시진핑은 ‘아무도 중국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한다’는 민족주의적 오만을 자제하고 국제사회와 상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중국 자금의 월가(월스트리트) 차단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트럼프의 옛 오른팔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의 미국 내 기업공개(IPO)를 차단하고, 연기금과 보험회사들이 중국 공산당에 제공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며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중국을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전면전을 불사할 기세다.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답게 런 회장은 상감령(上甘嶺)을 언급하며 “총검 들고 미국과 백병전을 벌여야 한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상감령은 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군에서 43일간의 처절한 전투 끝에 중공군이 유엔군의 북진을 물리친 곳이다. 시진핑 역시 전자 제품에 없어선 안 될 희토류 공장을 방문해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희토류의 무기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국은 때리면 고개를 숙인다?
 
앞으로 중국은 약한 고리를 찾아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 시선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2000년 마늘 파동과 2017년 사드 파동이 그런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25%에 달한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은 0.5%포인트 하락하는 구조다. 중국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마늘 파동 때도 중국이 수백 배 가치의 전자제품 수입 금지에 나서자 한국은 바로 손을 들었다. 사드 보복이 정점에 달했던 2017년 10월에는 ‘3불 원칙’까지 약속해줬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와 한·미·일 동맹에 불참하겠다는 한·중 비밀합의다. 한국은 때리면 고개를 숙인다는 공식이 형성돼 있다. 중국 외교부 실무자가 지난달 28일 “한국 정부와 기업이 옳은 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미국 편들지 말라’는 압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중 양국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연합전선과 중국이 러시아 등을 끌어들여 주도하는 반미 진영의 대립이라는 차이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자 중국 상무부도 이에 맞서 ‘불신(unreliable)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중국 기업을 차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훼손하는 외국 기업, 단체, 개인이 불신리스트에 포함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중국도 이 선을 넘어서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 역시 시장원리만 고수하면 된다. 삼성·SK·LG는 일단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화웨이가 한국에서 사들이는 반도체·디스플레이는 연 12조 원에 달한다. 미국도 이것까지는 어쩌라고 하기 어렵다. 마늘·사드 파동 때처럼 한국 국회와 정부가 애먼 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
 
장기적으로는 초격차를 벌여야 한다. 사드 보복 중에도 중국은 한국의 반도체 수입을 늘려야 했다. 중국이 살기 위해서였다. 중국이 터무니없이 압박하면 “한국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론만 펴면 된다. 실제로 그것이 현실이다. 중국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롯데가 미국에 투자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장면이 시장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업들은 기업 이익만 위해 뛰면 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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