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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남성, 혼자 살해·유기?…그날 펜션, 고유정 미스터리

중앙일보 2019.06.08 06:00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과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과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사건 발생 2주가 다 되도록 정확한 범행 동기와 공범 여부를 밝히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경찰 범행동기·살해과정·유기장소 2주 넘게 못 밝혀
국과수 "피해자 혈흔 검사결과 약독물 반응 없어"
고유정 "우발적 범행", 전문가 "전 남편 적대감 지속한 듯"
석 달전 고유정 의붓아들 의문사…타살 혐의점 못찾아

 
피의자 고유정(36)이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는 진술을 확보했을 뿐 키 180㎝의 건장한 남성을 어떻게 살해했고, 시신을 어떤 경로로 옮겼는지 등에 대한 행적은 파악하지 못해서다. 이 사건 석 달 전 충북 청주에서 네 살배기 의붓아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알려지면서 고씨를 둘러싼 의혹은 계속 커지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한 고씨의 압수품에서 피해자 혈흔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독물 검사를 의뢰한 결과 ‘아무런 반응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전달받았다고 8일 밝혔다.

 
경찰은 고씨가 지난달 25일 펜션에 함께 입실한 전 남편 강씨를 약독물을 사용해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피해자 강씨는 키 180㎝에 몸무게 80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졌지만, 고씨는 키 160cm, 몸무게 50kg 수준의 체격이다. 범행 당시 고씨가 물리력으로 강씨를 제압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1일 제주로 압송되는 제주 펜션 살인 용의자. [중앙포토]

1일 제주로 압송되는 제주 펜션 살인 용의자. [중앙포토]

 
고씨가 강씨를 만나기 전 ‘니코틴 치사량’ ‘살인 도구’ 등을 다수 검색하고 미리 흉기를 준비한 점도 약독물 살해 가능성을 높게 본 이유다. 하지만 검사 결과 피해자의 혈흔에서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고씨의 범행 수법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혈흔으로 약독물 존재 여부를 제대로 판별하려면 양이 충분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국과수에서 재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도 미궁이다. 고씨는 경찰에서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고씨는 2년 전 강씨와 이혼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6살 아들은 제주도에 있는 고씨의 친정에서 외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강씨는 최근까지 아들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그동안 전 아내 고씨의 반대로 보지 못하던 아들을 최근 면접교섭 재판을 신청해 2년 만에 만날 기회를 가졌다.

 
강씨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5일 오후 5시 사건이 난 펜션에 갔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이튿날 펜션을 나와 아들을 집에 데려다준 뒤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고씨는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커다란 가방을 지닌 채 홀로 나왔다. 피해자 유족은 7일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강씨가)양육권을 가져오려 했고, 최근 가사소송 신청 과정에 고유정의 재혼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며 “혹여 양부에게 아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 않을까 염려해 재판 속행을 요구했고, 소송의 연장선으로 아들을 보기 위해 고씨와 재회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유족들의 주장으로 미뤄볼 때 고씨는 이혼한 뒤에도 강씨에게 아들을 보여주지 않는 등 심리적으로 괴롭힘을 주려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며 “아들 양육권을 잃게 됐을 경우 강씨를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해 3일 제주해경이 제주~완도 여객선 항로를 중심으로 피해자 시신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해 3일 제주해경이 제주~완도 여객선 항로를 중심으로 피해자 시신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지난 3월 2일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고씨의 네 살배기 의붓아들이 숨진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 하고 있다. 숨진 아들은 현 남편 A씨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자녀다. 고씨와 재혼한 남편은 모두 제주도 출신이다. A씨는 제주도 친가에 살던 아들을 지난 2월 28일 청주로 데려왔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죽어 있어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사인을 조사한 경찰은 최근 “질식에 의한 사망일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뚜렷한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경찰은 이 사건이 고씨의 범행동기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청주상당경찰서 관계자는 “고씨의 의붓아들이 숨진 원인을 밝히기 위해 추가 조사를 벌였다”며 “사건 당일 고씨 부부의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범행의 잔인한 수법으로 볼 때 고유정은 이혼 후에도 전남편에 대한 적대감이 높았던 것 같다”며 “현재의 혼인 관계에 있는 남편의 자녀가 의문사하면서 결혼 생활에 불화가 생겼고, 이런 갈등의 원인이 전남편과 이혼하면서 벌어진 일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범죄행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씨가 시신을 유기한 장소도 아직 찾지 못했다. 경찰은 고씨가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는 진술 등을 토대로 지난 2일 해경에 수색협조를 요청했다. 경찰의 요청을 받은 해경은 함정 6척을 투입해 제주~완도 여객선 항로를 중심으로 수색했으나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고씨가 해상과 육지 등 최소 세 곳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면 실제 살해시간, 살해수법 등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제주·청주=최충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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