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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발에 유리구두 대신 금가루 뿌린 까닭

중앙선데이 2019.06.08 00:21
몬테카를로 발레단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예술감독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사진 마스트미디어]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사진 마스트미디어]

유리구두 대신 맨발에 금가루를 뿌린 신데렐라가 온다. ‘역대 신데렐라 중 가장 성공한 발레’로 불리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6월 12~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6월 8~9일 대구 오페라하우스·6월 18~19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다.
 

14년 만에 ‘신데렐라’로 내한
파격 연출과 원작 해체가 특기
전통과 혁신 교차하는 스타일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 출연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발레를 사랑했던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유지를 받들어 1985년 설립됐다. 93년부터 이곳의 예술감독을 역임해온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Jean Christophe Maillot·58)는 전통과 아방가르드가 교차하는 특유의 스타일로 모던 발레를 이끌어 왔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 ‘라 벨’(2011) 등 그가 안무한 작품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베자르 발레 로잔·볼쇼이 발레단 같은 세계 주요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1999년작인 ‘신데렐라’도 20년 동안 세계를 돌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5년 공연됐고, 국립발레단이 라이선스 무대를 제작하기도 했다. e메일로 만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14년 만의 내한 공연에 대해 한국인 무용수 안재용의 활약을 차별점으로 꼽았다. 2016년 입단해 지난 1월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안재용은 이번에 아빠 역으로 출연한다. “지난 몇 년 새 무용단의 얼굴이 바뀌었어요. 몬테카를로는 캐릭터를 살아 숨쉬게 하는 새로운 인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안재용이 그 완벽한 예죠. 재용의 연기는 제가 만든 캐릭터를 재발견하게 만들어요. 제 레퍼토리의 진화를 보는 게 제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요.”
 
고전의 창조적 해체가 특기인 마이요의 작품은 심플하지만 강렬한 무대와 의상 등 파격적인 볼거리로 가득하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고전의 창조적 해체가 특기인 마이요의 작품은 심플하지만 강렬한 무대와 의상 등 파격적인 볼거리로 가득하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마이요의 주특기는 원작 해체다. 과감한 삭제와 생략은 물론, 없는 인물을 창조하기도 하고 작은 배역을 확 키우기도 한다. 동화 ‘신데렐라’의 주요 모티프는 유리구두지만, 마이요 판 ‘신데렐라’의 시그니처는 금가루를 뿌린 맨발이다. ‘무용수의 발’이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바닥과 맞닿은 채로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동시에 무용수를 날아오르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발”이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이원성이자 꿈과 현실이 공유하는 선(線). 원작 동화에서 유리구두가 상징하는 것이죠. 한편으로 신데렐라의 맨발은 순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인위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부유한 왕자 앞에 그녀는 맨발을 내놓죠. 순수하고 진실된 여성을 창조하기 위해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꾸민 흔한 신데렐라와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고전의 창조적 해체가 특기인 마이요의 작품은 심플하지만 강렬한 무대와 의상 등 파격적인 볼거리로 가득하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고전의 창조적 해체가 특기인 마이요의 작품은 심플하지만 강렬한 무대와 의상 등 파격적인 볼거리로 가득하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스토리도 동화와 사뭇 다르다. 신데렐라와 왕자뿐 아니라 계모와 요정, 아빠 등 모든 캐릭터에 액센트가 있다. 죽은 엄마의 화신인 요정을 비롯해 여성 캐릭터가 능동적인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우유부단하고 내면이 연약하다는 설정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흔히 이상적인 남편을 찾는 이야기라고들 생각하죠. 하지만 원작을 깊이 살펴보면 가까운 이의 죽음에 방점이 찍힌 것을 알 수 있어요. 사랑했던 부모를 잃고 다시 밝은 가족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어려움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샤를 페로는 이 문제에 사로잡힌 복합적인 인물 관계도를 탁월하게 구성했고, 제가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죠. 신데렐라의 언니들도 아주 흥미로운 인물들이죠. 그들의 내면이 추한 만큼 외면은 아름답게 그리고자 했습니다.”
 
“무용수들은 벌거벗어야 한다”
 
고전의 창조적 해체가 특기인 마이요의 작품은 심플하지만 강렬한 무대와 의상 등 파격적인 볼거리로 가득하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고전의 창조적 해체가 특기인 마이요의 작품은 심플하지만 강렬한 무대와 의상 등 파격적인 볼거리로 가득하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스토리만 파격적인 건 아니다. 무대 연출부터 미니멀하되 강렬한 데다,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안무 자체도 한 번 보면 그만의 스타일이 뚜렷이 각인될 만큼 개성적이다. 신데렐라의 솔로에 일본 가부키적 동작이 스치지만, 아름답고 에로틱한 파드되에선 발레의 정수를 보여주는 식이다. “가부키는 작은 몸짓 안에 풍성한 의미와 시(詩)를 농축하고 있어요. 안무의 관점에서 아주 흥미롭죠. 신데렐라의 솔로 파트는  어느 가부키 극에서 눈물을 훔치는 인물의 묘사에 깊은 감동을 받아 차용한 것입니다. 파드되에는 늘 특별한 애정이 있죠. 오로지 무용수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만이 중요해지는 순수한 진실의 순간이니까요. 춤이란 무엇보다 두 존재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용수들은 속임수를 쓸 수 없어요. 벌거벗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의 파드되는 에로틱하게 될 때가 많죠. 무용수들이 진심을 다하는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20세기 초 디아길레프와 니진스키의 활약으로 발레 혁신의 상징이 된 러시아 단체 ‘발레 뤼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모나코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디아길레프가 발레 뤼스의 본거지를 모나코로 옮겼고, 발레 뤼스는 몬테카를로 오페라극장의 상주단체가 됐다. 발레 뤼스는 29년 디아길레프 사후 해체됐지만, 모나코는 지속적으로 발레 뤼스의 부활을 도모해 왔다. 마이요도 2009년 발레 뤼스 100주년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발레 뤼스의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모든 무용단이 발레 뤼스가 남긴 유산에 의존하고 있죠. 디아길레프의 천재성 덕분에 무용은 오페라에서 분리되어 대등한 관계의 예술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는 콕토, 마티스,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라벨, 샤넬 등 당대 최고의 인재들을 곁에 두었지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가 걷던 길을 뒤따르고 있어요. ‘신데렐라’만 해도 안무를 중심으로 영입된 일류 조형예술가와 디자이너 등 여러 창작자가 모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죠.”
 
그는 오랫동안 순혈주의를 표방해온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전막발레로 초빙한 첫 외국인 안무가다. 2014년 볼쇼이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안무한 것이다. “저를 섭외한 이유는 발레단의 정체성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무용수들에게 현대적인 표현양식을 개방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요. 볼쇼이와 작업하면서 굉장히 뛰어난 무용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이 제 안무 작업을 캐치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통해 오히려 제 안무를 제가 더 잘 이해하게 됐죠.”
  
“춤을 모르는 사람도 발레를 즐길 수 있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이 출연한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이번 공연에는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이 출연한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20여 년간 그가 창작한 40여 편의 레퍼토리 덕분에 몬테카를로는 세계적인 발레단이 됐다. 하지만 그의 활동 범위는 발레단을 넘어선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을 배출한 ‘그레이스 공비(Princess Grace) 아카데미’와 세계 유수 발레단 교류의 장인 ‘모나코 댄스포럼’까지 통합해 이끌고 있다. “발레단에서 저는 제 춤을 발전시킬 수 있었죠. 아카데미는 전도유망한 무용수들을 프로 발레단에 입단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고요. 모나코 댄스포럼은 전 세계 발레단들이 모여 안무의 최신 트렌드를 공유하고 전파하는 자리죠. 제겐 창작·교육·전파라는 역할을 최대한 수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신데렐라’가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마이요의 무대가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춤을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한다”는 소신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그의 춤이 단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무용을 창작하거나 스스로 춤추는 사람만이 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늘 반대해 왔어요. 누구나 무용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육체를 가졌고, 모두가 이미 연결된 상태니까요. 저는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흥미를 느끼고, 그걸 발레의 소재로 삼고 있죠. 그러다 보니 제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게 되는 것 같아요. 춤으로 철학적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과 증오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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