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중독이 병?…아편전쟁 트라우마 중국이 압력 넣었나

중앙선데이 2019.06.08 00:20 639호 27면 지면보기
180년 전인 1839년 청나라와 대영제국 사이에 시작된 아편전쟁은 3년 후인 1842년 청나라가 패하고 난징조약을 맺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홍콩이 영국 땅이 되던 그 조약이다. 이름에서도 시사되는 바와 같이 이 전쟁은 아편이 화근이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유럽은 청의 비단, 도자기, 차를 열광적으로 사들이면서 막대한 무역적자를 안게 됐다.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고질적인 적자 상황을 타개하고자 식민지인 인도에서 아편을 제조하여 중국에 밀수출한 것이다. 이 술수로 영국의 무역적자가 급속히 개선되는 한편, 청나라 안에는 아편 중독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청 황제인 도광제는 1839년 1000t이 넘는 아편을 무력으로 압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벌어진 아편전쟁은 청 왕조와 중국 전체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
  

국제질병분류에 게임장애 포함 논란
중국 “게임이 저항감 심어주고
지재권 수지 적자의 큰 원인” 판단
180년 전 나라 운명 가른 아편 취급
대중 게임 수출 많은 한국에 영향

WHO에선 정치적 압력설 부인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도광제가 갑자기 강경하게 무력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전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부도덕한 아편 무역을 중지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했고, 아편 상점들을 몰수하는 대신 차를 지급하려는 시도도 했으나 무산됐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만약 그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기관이 있어서 국제질병분류(ICD)에 마약성 물질에 대한 의존성이 지금처럼 버젓이 등재돼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빅토리아 여왕은 도광제의 서한에 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아편 몰수에 대응해 차마 영국 해군까지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영국 왕실로부터 특허를 받아 설립된 동인도회사가 대규모로 아편을 밀수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달 말 확정된 국제질병분류 11 번째 개정안(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가 포함된 것에 대해 논란이 많다. 이 결정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중국과 연관 짓지 않고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중국 정부가 게임 문제에 대해 아편전쟁 트라우마처럼 대응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WHO에서는 정치적 압력에 대해 부인했지만, 게임 문제가 특히 중국에서 이슈가 돼 왔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에서 장시간의 게임 끝에 사망하거나 시력을 잃은 사건은 대서특필되곤 했다. 중국 정부가 게임에 대해 예민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게임들이 도전이나 저항, 혁명 등과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노출되는 경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방면으로 언로를 통제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부로서는 청소년 및 청년을 문화적으로 자극할 만한 어떤 것도 달가울 리가 없다.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인정되면 게임에 대한 검열이 더 용이해질 것이다.
 
게임장애가 ICD-11에 포함되기에는 근거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견해도 정치적 압력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에 ICD-11에 게임장애와 함께 포함된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의 경우 이미 1990년에 개정된 ICD-10에 병적 도박(pathological gambling)으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범위를 넓혀 등재됐다. 도박의 긴 역사를 생각해 보면 도박의 폐해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축적되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게임장애가 도박장애만큼 유해성 등의 증거가 충분한지 의아한 점이 있는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만들어 미국 내에서 사용되는 분류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도 도박장애는 중독의 일종으로 포함된다. 하지만 게임은 현재 사용되는 5차 개정안(DSM-5)을 마련한 2013년 당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제외된 바 있다. 물론 기술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게임장애의 문제가 빠른 속도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5~6년 사이에 국제적으로 질병으로 분류할 만큼 학술 연구가 충분히 축적되었는지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편함은 문화적인 차원으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고속성장을 뒷받침해오던 경상수지 흑자가 미국과의 무역 마찰로 1993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상수지는 물건을 사고 판 상품수지와 무형의 서비스를 거래한 서비스수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서비스수지의 지속적인 적자 확대에 상품수지 흑자 축소가 맞물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중국 서비스수지의 적자 규모는 2010년 150억 달러 수준이던 것이 2017년에는 약 2400억 달러로 증가했다. 적자 내역을 보면 관광, 운송, 지적재산권 분야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중 관광이나 운송은 10년 전에도 가장 큰 부분이었고, 지출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지급받는 규모도 상당하다. 이에 반해, 지적재산권은 근래에 비중이 급증했고 지급받는 금액이 미미하다. 해외 게임에 대한 지출은 지적재산권 지출에 포함되는데, 중국이 세계 최대 게임시장인 만큼 지적재산권 항목의 수지 적자에 게임이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더더욱 게임시장의 성장이 달갑지 않게 됐다.
  
게임장애, 유해성 증거 불충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수지 역시 적자를 이어오고 있지만,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0년 이래 지난해에 적자가 가장 적었다. 게임 수출 확대로 ‘상표 및 프랜차이즈’ 수지가 처음으로 흑자가 되고, ‘연구개발 및 소프트웨어 저작권’ 수지 흑자도 최대가 됐다. 이러한 흑자 달성은 중국에 대한 게임 수출 증가로 가능했다. 비록 해외 언론에 게임 이용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큰 나라로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가 항상 거론되긴 하지만, ICD의 수용은 각국의 결정 사항이다. 국내 이슈의 관점으로만 게임에 병원균 같은 낙인을 찍고 게임 이용을 질병으로 몰아가기에는 걸려있는 것이 많다. 이미 2011년 도입된 인터넷 게임 셧다운제가 중국이 2018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 선례가 된 바 있다.
 
게임은 장년층 이상 대부분에게는 ‘애들 장난’이고 많은 학부모에게는 ‘골칫거리’겠지만 본질적으로 재미의 공급원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쇼핑중독, 드라마중독, 일중독, 심지어 음란물중독도 강박(compulsion)일 뿐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데 게임하는 게 병이라니…. 어쩌면 더 큰 문제는 그것밖에 즐거울 것이 없는 생활과 환경인데 손쉬운 희생양을 찾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