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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팬들이 타이거 우즈를 용서한 이유

중앙선데이 2019.06.08 00:20 639호 31면 지면보기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근 강성훈, 이정은 등 한국계 골퍼들이 세계 무대에서 벌이는 활약이 눈부시다. 지난 4월 열린 마스터스 대회에선 타이거 우즈가 한 타 차이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었다. 경기가 끝나자 우즈와 경쟁했던 여러 선수들이 오랜 동안의 슬럼프를 딛고 부활한 우즈를 축하해 주는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 많은 관중들은 “타이거”를 외치며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을 중계한 방송사의 시청률도 3배로 치솟았고, 우즈를 데뷔 때부터 22년간 계속해서 광고 모델로 기용한 나이키의 주가도 크게 상승할 정도다.
 

각종 추문에 휩싸여 은퇴했던
우즈가 복귀할 때 나이키는
우즈에 훈계하는 부친 모습을
광고로 방송해 큰 효과 얻어
반성과 사죄, 재발방지 약속이
사람들에게 용서 구하는 방법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했던 우즈는 2007년 여러 섹스 스캔들이 들통나면서 이혼했다. 그러자 그동안 숨겨져 왔던 우즈에 대한 갖가지 다른 불미스러운 일들이 세상에 알려진다. 그가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해왔고, 다른 동료 선수들을 무시하고 혼자서만 독불장군처럼 지냈다는 것도 폭로된다.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골프계나 지인들로부터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8년과 2009년 시즌을 쉰 우즈가 2010년 들어 경기에 복귀했을 때, 우즈가 좀 더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국내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들이 잠시 쉬다가 복귀할 때 벌어지는 논란과 비슷한 것이다. 더군다나 나이키가 우즈의 복귀에 맞춰서 우즈를 주인공으로 한 새 광고를 찍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자 더 큰 비난의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나이키 불매 운동을 해야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TV에 방송된 광고는 이런 논란들을 순식간에 잠잠하게 만들었다. 이 광고에는 나이키 모자와 옷을 입은 우즈가 약간 슬픈 표정으로 등장한다. 그는 30초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화면만 바라본다. 광고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당시 이미 고인이 된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의 목소리다. 타이거 우즈를 훈계하는 내용인데, 화면에 타이거 우즈의 얼굴에 클로즈 업 되면서 “너 이번에 무슨 교훈을 배웠니(Did you learn anything)?”라는 말로 끝난다. 그리고 우즈의 얼굴이 사라지고 나이키 로고가 잠시 화면에 비칠 뿐이다. 고인이 사망하기 전 방송에 출연하여 대담한 내용 중 일부 목소리를 따내어 광고에 사용한 것이다. 이미 작고한 아버지가 우즈를 꾸짖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놀랄만한 아이디어였다.
 
바로 이 광고 때문에 우즈를 비난하는 소리는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나이키는 이 광고를 통해 우즈가 큰 교훈을 배웠고 많은 반성을 했다는 것을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반성과 사죄, 그리고 재발 방지의 각오까지 단 30초 동안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만약 그 이전에 방송됐던 광고들처럼 우즈가 등장해서 멋진 폼으로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결코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었을뿐더러, 우즈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짧은 30초의 광고로서 백 마디의 말 보다 더 큰 효과를 얻었던 것이다.
 
우즈가 2010년 골프계에 복귀를 했지만 그동안 긴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부상을 입어 수술도 여러 차례 받았다. ‘우즈는 끝났다’는 이야기도 많이 돌았다. 그렇지만 이런 밑바닥 경험이 우즈를 성장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남들을 무시하던 오만한 그가 이제 다른 선수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주기도 하며 팬들에게 사인도 해주는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서 마스터스 대회에서 그와 경쟁했던 많은 선수들이 우즈가 우승하자 기쁜 마음으로 우즈에게 축하를 하게 된 것이다. 과거 같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우즈의 복귀와 나이키의 광고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우즈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명하거나 남들을 비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나 팬들은 우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광고를 통해 진심으로 팬들에게 사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팬들의 용서받을 수 있었다. 이번 우승 이후 그는 “22년 전 우승할 때는 아버지가 지켜봐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아버지가 됐다”라는 소감을 말하며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의 따뜻한 마음뿐만 아니라 그가 예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즈의 사례를 우리나라에 적용해보자. 국내에서 무슨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볼 수 있는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의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인 사과, 잠깐의 거짓말이나 억지 주장으로 위기를 넘겨보려는 행동, 심지어는 ‘도대체 법을 어긴게 뭐냐?’는 공격적인 반응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 과거 우즈의 불륜, 방탕, 그리고 오만한 자세도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타이거 우즈가 등장한 광고와 같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의 약속을 우리 국민들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국민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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