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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기가 센 부하, 어떻게 대처할까…강인한 '마음의 근육'으로 이끌어라

중앙일보 2019.06.08 00:03
무례하게 도전한다면 응징해야… 자리를 역할로 보고 직원 키울 필요도
사진:ⓒ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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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14)

팀워크가 생각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팀을 이끄는 리더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뜩이나 갈 길이 먼데 삐걱거리고 불협화음이 생겨나면 힘이 몇 배로 든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도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한데,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불안이 엄습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신경이 예민해져 자신도 모르게 화를 벌컥 내는 일이 많아진다. 물론 곧 후회한다. 조금만 더 참을 걸, 왜 그걸 못 참았을까, 이게 또 고민거리가 되어 마음을 짓누른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마음에 자책이 후벼 파고 난도질한다.
 
‘기어오르는’ 행위는 성장본능에서 비롯되기도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은 자기 줄기를 만드는 걸 최소한으로 줄인 다음, 이미 만들어진 남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햇빛을 받는다. / 사진:ⓒ gettyimagesbank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은 자기 줄기를 만드는 걸 최소한으로 줄인 다음, 이미 만들어진 남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햇빛을 받는다. / 사진:ⓒ gettyimagesbank

‘눈엣가시’ 같은 존재는 꼭 이럴 때 나타난다. ‘믿는 구석’을 등에 업고 소리를 높이며 지배력을 행사하는 등 시쳇말로 기어오른다. 눈엣가시로만 성에 차지 않는지 하는 일마다 ‘앓는 이’가 되어 속을 썩히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인내력을 시험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다. 참으면 될까? 물러서 주면 당연한 듯 밀고 들어온다. 위기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진짜 위기가 된다. 시작은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엔 자리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난다. 당사자인 팀장만 느끼는 게 아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촉각을 기울이며 추이를 지켜본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질지 모르니 당연하다.
 
 
위기가 닥쳤다면 위기에 맞는 행동이 필요하다. 감정적인 행동이야 당연히 금물, 중요한 건 한숨 대신 숨을 크게 쉬는 평상심이다. 평상심으로 당장 처리해야 할 일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을 판단해야 한다.
 
 
장수는 전투에 앞서 주변 상황은 물론 상대를 자세히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즉각 격퇴’ ‘초전박살’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고, 뿌리를 뽑을 수도 있다.
 
 
지난 회에 말했듯 ‘기어오르는’ 행위는 우리 안의 성장본능에서 시작된 것이고, 이 성장본능이 만들어내는 지배욕구가 직접적인 동기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비정상적이고 있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일로만 보면 신경이 곤두서고 화의 포로가 된다. ‘드디어 올 게 왔군’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모두 도덕적으로 완전한 존재가 아닌 이상, 인정해야 하는 일이다.
 
 
조직을 이루어 살아가는 사자와 늑대 무리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하다. 엄격한 질서가 없어서가 아니다. 힘에 의한 철저한 질서가 존재하지만 ‘저 자리를 내가 차지할 수 있겠다’ 싶다고 여길 수 있는 틈을 발견하면 도전한다. 그들의 질서는 스스로를 ‘승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 조직의 꼭대기인 CEO 자리에도 무수한 도전이 보이지 않게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어느 CEO의 표현대로 하자면 “눈 깜박 하는 순간 코 베어 간다”. 언젠가 프로축구 감독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면 일종의 허니문 기간이 생기는데, 짧으면 몇십 일, 길게는 몇 달 간다. 그리고 “이 기간이 끝나갈 무렵, 한 번쯤(기강이) 무너지면서 기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서 지면 선수들이 감독을 끌고 다닌다.
 
 
세상은 이긴 자의 논리가 진 자의 옳음을 대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진 자의 옳음과 울음은 이긴 자의 환호와 축하 소리에 묻힌다. 정의가 이긴다고 하지만 ‘결국’ 이길 뿐이다. ‘결국’은 곧바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사라진 후에야 온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흔한 말대로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그러니 일단은 이겨야 한다. 용서나 관용 같은 아름다운 행동도 이겨야 가능하다. 로마인들은 항상 이긴 다음 크게 베풀어 제국을 건설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윤리적이지 않는 방법만 아니라면 이기는 게 먼저다.
 
 
어떻게 이겨야 할까? 신성한 영토(자리)를 침범했으니 보란듯이 통쾌하게 무찔러 석고대죄를 받아야 할까? 그렇게 하면 마음은 하늘을 날고 싶을 정도로 짜릿하겠지만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된다. 다들 입을 다물고 마음을 닫는다.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듯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난 회에 이어 몇 가지 더 알아보자.
 
 
언젠가 세계에서 가장 큰 컴퓨터 회사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쓴 세계적인 석학 리처드 도킨스를 초대했다. 게임전략을 통해 임원들이 협력을 잘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도킨스는 임원들을 세 팀으로 나눈 다음, 변형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진행했다. 게임은 오전에 시작되어 오후 4시까지 진행되었다. 세계적인 석학이 세계적인 회사의 임원들과 함께 하루 종일 유대감을 높이는 작업을 했으니 흡족한 결과가 나왔을까?
 
 
실패였다. 그것도 완전한 실패였다. 세 팀 중 한 팀이 종료 직전, 등을 돌리는 바람에 판이 깨져버렸다. 자기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르익어 가던 협력적 유대를 산산조각낸 것이다. 다른 이들의 기분이 상한 건 당연한 일, 도킨스의 표현대로 하자면 “다시 함께 일할 것을 설득하기 위해 상담을 해야 할 정도였다”. 왜 하루 내내 우호적으로 진행되던 게임이 마지막에 깨졌을까?
 
 
이유는 하나, 끝나는 시간을 정해 놓았던 게 문제였다. 종료되면 게임은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를 믿고 있던 상대를 배반하고 나의 이익을 최대화해도 보복 받을 염려가 없다. 어차피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 말이다. 지난 회에 소개했던, 컴퓨터 프로그램 대회를 개최했던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가 얻은 통찰도 똑같았다. 다시 만나지 않는다면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결국 상호배반을 만들어낸다”. 최선의 노력이 배반으로 나타난다. 협력하면 둘 다 이익이긴 하지만, 상대가 철석 같이 믿고 있을 때 내가 슬쩍 등을 돌려버리면 나 혼자 큰 이익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 임원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들도 인간이었다.
 
 
액설로드 교수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들 간의 사건들도 대부분 계약 종료 시점을 전후해 나타난다.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 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신의를 가볍게 여긴다. 관계가 끝나면, 협력 또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협력의 기초는 관계의 지속성
‘눈엣가시’들이 활동을 개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팀장 자리의 종료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팀장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자신이 이 자리에 꽤 오래 있을 것이라는 신호를 미리 보내야 한다. 꼭 이 자리가 아니더라도 이 회사에 오래 있을 것이며, 그래서 자주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자리로 갈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 등 돌리기는 난망한 일이 되고 만다.
 
 
왜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면 레임덕 현상이 일어날까? 더 이상 상하관계로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날을 모른다면 레임덕이 나타나지 않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있는 동네에서 범죄가 일어나기 힘든 이유도 그렇다.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등질 수 있겠는가. 회사에서 오래오래 인사평가권을 갖고 있을 사람에게 대들 수 있을까?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두고 보자’고 하는 건 하나도 무섭지 않지만, 다시 만나기 싫은 센 사람이 ‘두고 보자’고 하면 무서워진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협력이 서로 간의 신뢰에서 생겨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협력은 액설로드 교수의 말대로 관계의 지속성에 기초하고 있을 때가 더 많다. 신뢰도 분명 역할을 하겠지만 관계가 지속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서 이후의 협력이 결정된다.
 
 
상황이 초반이라면, 밀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거울 비추기’ 대응을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상대가 경계를 넘어 오거나 지나친 과시를 하면, 그 사실을 거울처럼 알려주는 것이다. “나과장쯤 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구성원 앞에서, 또 ‘000라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것 같다”는 식으로, 상대의 존재와 힘을 인정·동의해 준 다음, 얼마나 어떻게 경계선을 넘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실수한 게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석고대죄를 바라지 말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게 좋다. ‘네 죄를 알렷다’는 식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보복 감정이 생긴다. ‘앗, 뜨거워’ 하는 선에서 일단락하는 게 좋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싶으면,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단칼’에 내리치는 결단이 필요하다. 조직생활은 숲에서 나무들이 생존하는것과 비슷하다. 대기업처럼 규모가 큰 조직은 우거진 숲과 같다. 숲이 우거질수록 생존경쟁은 치열해진다. 무엇보다 싹 틔우기 자체가 만만치 않다. 우거진 가지들(상층부)이 햇빛을 다 받아버리다시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생명이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 숲에는 색다른 해결책을 만들어낸 생명체가 많다. 그중 하나가 덩굴식물들이 개발한 남의 줄기 타고 올라가기 전략이다.
 
 
보통 나무들은 줄기를 강화하면서 올라가다 보니 조금씩 올라갈 수밖에 없다. 햇빛을 받을 수 없는 후발주자들은 도저히 쓸 수 없는 전략이다. 어느 세월에 저 까마득한 숲 천장까지 올라간단 말인가? 그래서 칡나무나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은 자기 줄기를 만드는 걸 최소한으로 줄인 다음, 이미 만들어진 남의 줄기를 타고 올라간다. 그렇게 꼭대기까지 빠르게 올라가 넓은 잎을 펼쳐 햇빛을 받는다. 문제는 자기 삶에 치중하다 보니 타고 올라간 숙주나무를 꽁꽁 옭아매 죽여버리는 것이다. 만약 이런 덩굴식물 같은 존재가 나에게 엉겨 붙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칼이 필요하다.
 
 
기브앤테이크(give & take) 이론이라는 게 있다.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밝혀낸 이 이론은 조직에 맞는 사람(주는 사람, giver)과 조직에 맞지 않은 사람(받기만 하는 사람, taker), 둘 중 누가 더 영향력이 큰가 하는 것이다. 조직에 잘 맞는 사람은 조직을 발전시키고,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은 조직을 악화시킬 것이다. 이런 사람이 각각 한 명씩 있다면, Giver와 taker, 둘 중 누구의 기여도가 더 클까?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해, giver를 늘리는 게 우선일까, taker를 제외시키는 게 우선일까? 그랜트는 배제하는 게 더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바구니에서 썩은 사과 한 개를 빨리 들어내야 다른 사과들이 썩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덩굴식물처럼 엉겨 붙기 시작한 존재가 있다면 전력을 다해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바구니에서 썩은 사과 한 개 빨리 들어내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솔로로 활동하고 싶어 팀을 잠깐 떠났다 돌아왔을 때 멤버들의 장점을 다시 깨달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솔로로 활동하고 싶어 팀을 잠깐 떠났다 돌아왔을 때 멤버들의 장점을 다시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체크 항목이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솔로로 활동하고 싶어 팀을 잠깐 떠났다 돌아왔을 때 멤버들이 묻는다.
 
 
“다른 밴드와 맞춰 보니 좋아?”
 
 
이때 프레디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들은 뭐든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문제는 시키는 대로만 한다는 거야. 너희들처럼 이게 더 좋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지도 않고, 꼼꼼하게 고쳐 주지도 않았어.”
 
 
다들 ‘한 성깔’ 하는 성격이라 티격태격했고, 그게 불편하고 마음 상한 적도 많았는데, 막상 다른 팀하고 일해 보니, 그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조직생활도 비슷하다. 거친 파도가 없는 바다가 노련한 뱃사공을 키울 수 없듯, 아무런 문제가 없는 팀은 당장 지내기는 좋지만, 남다른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위대한 이론은 도전 받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시험을 뛰어넘기 때문에 위대한 이론이 된다는 말이 있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티격태격하고, 마음도 상하면서 성과를 만들어 가는 게 팀이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속을 있는 대로 썩히는데 하물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날이면 날마다 척척 마음이 맞을 수 있겠는가?
 
 
분명 일보다 관계에 공을 들이고, 능력보다 친분을 쌓는 데 주력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게 ‘보이는’ 이들을 그들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프레디의 동료 같은 이들 말이다. 명마는 대개 거칠다. 누군가를 등에 태우려 하지 않는다. 자기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자존심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만한 능력이 있기에 까탈스럽다. 팀장이라는 자리에서 보면 도전하는 듯 보여도, 사실은 성장본능을 거칠게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이걸 도전으로 받아들여 맞대응하면 서로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고, 팀워크는 물 건너 간다. 이들에게 맞대응한다는 건 이들을 경쟁상대로 본다는 뜻이다. 힘 있는 자리를 원하는 이들은 부하들을 경쟁자로 보고 탈락시킨다. 하지만 자리를 역할로 보는 이들은 부하들을 키운다. 그들을 성장시키며 자신도 성장한다.
 
 
직원 키우며 상사도 성장
리더에게는 좋은 성격보다 강함이 필요하다. 강함이란 큰 목소리나 물리적인 근육이 아니라 마음 근육이 좋은 것을 뜻한다. 힘껏 밀거나 손잡이를 힘 있게 돌린다고 모든 문이 열리는 건 아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힘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제가 나 자신에게서 나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문제를 일으키는 원천일 수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럴 수 있다. 눈을 감아 버리면 해결은 물 건너 간다.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분명한 건 시간이 갈수록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신을 고양시켜 오르려 하지 않고 지위로, 계급으로, 남을 눌러서 자신의 힘을 알리려는 이들은 이긴다 해도 그들이 도전했던 방법으로 도전받아 사라진다.
 
 
자신을 되돌아 보고 스스로 평가하는 힘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거울 하나를 품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진 힘을 제대로 잘 쓰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모적인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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