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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과실 ‘감정’에만 수개월…입증 어려워 손배 승소율 1%

중앙선데이 2019.06.08 00:02 639호 6면 지면보기
논란 많은 의료 사고
2016년 9월 8일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사각 턱 교정 수술을 받던 권대희(당시 25세)씨가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다. 뇌사상태에 빠진 권씨는 49일 뒤 결국 숨을 거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이 수사에 들어갔다. 사건에 착수한 지 2년여가 지난 지난해 10월 경찰은 수술을 집도한 병원장 A씨 등 4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달 29일 권씨 유족이 제기한 민사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성형외과 원장 등에게 4억 3000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량출혈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해 권씨의 출혈량 등을 관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혈 및 수혈 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나금씨는 “수술실 CCTV를 500번 이상 돌려봤다”며 “사건 초기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하던 병원 측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수술실 CCTV 영상이 없었으면 승소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의사협·의료분쟁중재위서 감정
의사가 동료 과실 지적 쉽지 않아

최근 권대희씨 유족에 배상 판결
“수술실 CCTV 500번 넘게 돌려봐”

피해자들 ‘계란으로 바위치기’
법적 소송보다 조정으로 마무리

의료진이 유감 표명해 갈등 해소
영·미서 도입한 ‘사과법’ 검토해야

수술실 CCTV만으로 과실 입증 어려워
 
의료사고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일이라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수술실 CCTV가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는 정황 증거로 쓰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수사팀의 설명이다. 의료 과실을 입증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감정’ 단계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의사가 동료 의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과실 여부를 감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의료사고팀장 강윤석 경감은 “단순히 의료진 과실 여부가 있는지를 감정을 해달라고 의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강 경감은 “의료 행위를 정밀하게 따져 구체적 항목을 짚어 감정 의뢰를 한다”며 “일반적인 처치 범위에 있는지, 환자의 병력이나 상태를 따졌을 때 처방은 적절했는지 등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의뢰한다”고 설명했다. 감정 내용이 부족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회신이 오면 재감정을 보내는 등 수사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감정 기간도 기본 3개월이 걸리고, 길게는 1년이 넘을 때도 있다. 수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경찰청에 의료수사팀이 생긴 지 4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취급한 사건이 17건 정도(이대목동병원 영아 4명 사망사건, 분당 차병원 신생아 낙상 사망사건 등)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앞서 권씨 사건도 의료중재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강 경감은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피해자 측은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시간만 질질 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료과실 입증은 감정 결과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이 진료 기록지를 조작했는지, 잘못을 숨기기 위해 말맞추기 등 은폐 시도를 했는지 등도 꼼꼼하게 입증해 내야 한다. 권씨 사건에서도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출혈량을 두고 의료진의 말맞추기 정황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경찰이 확보한 녹취 파일에는 성형외과 원장 A씨와 동료 의사 사이에서 “(출혈량을) 그냥 적게, 적게 이야기하면 된다”는 식의 대화가 여러 번 오갔다. 이들은 실제 경찰 수사에서도 “1000~1500cc 정도의 출혈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CTV 분석과 중재원 등의 감정 결과 이보다 훨씬 많은 출혈이 있었다.
  
전문성 갖춘 의료전담 수사팀 확대해야
 
의료사고가 형사처벌로 이어지거나 피해자 측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의료소송은 일부 승소율이 5% 남짓이고, 전부 승소율은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법적 소송보다 조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의료중재원에 따르면 의료분쟁 상담은 최근 5년간 연평균 9.6%, 조정 신청은 연평균 11.5% 증가했다. 특히 조정신청의 경우 최근 2년간 20% 이상의 가파른 증가율을 보였다.
 
그럼에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병원 측으로부터 자주 듣는 얘기는 ‘법대로 하라’는 말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병원의 태도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영·미법계에서 도입하고 있는 ‘사과법(apology law)’이 의료사고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한다. 사과법은 책임 유무를 떠나 의료진이 먼저 환자 측에 충분한 설명과 위로, 공감, 유감의 표현을 한 경우 이를 재판이나 의료분쟁 조정 과정에서 과실책임 인정의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하는 법이다. 이로리 계명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사과법의 입법 동향 및 관련 쟁점’ 논문에서 “의료진은 피해자 측에 하는 사과가 녹음돼 이후 재판에서 ‘과실을 인정했다’는 증거로 쓰일지 모른다고 우려한다”며 “이 때문에 의료진은 피해자 측과 만나 소통하기를 꺼리고, 피해자 측은 도의적 사과조차 없는 의료진에 서운함을 느껴 합의보다는 소송 등 강경 대응에 나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 전문변호사로 활동하는 이상철 변호사는 “전문성과 노하우가 쌓인 의료전담 수사팀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면서도 “형사 처벌과 별개로 사과법 도입 등을 통한 병원과 피해자 측의 원만한 조정의 방식도 갈등의 해법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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