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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M&A ‘조 단위 큰 장’ 섰다 하면 사모펀드가 독식

중앙선데이 2019.06.08 00:02 639호 12면 지면보기
#1 지난달 31일 마감된 넥슨의 지주회사 NXC 매각 본입찰에 카카오·넷마블과 MBK파트너스·KKR·베인컴퍼니 등이 참여했다. 전략적 투자자보다 사모펀드 수가 더 많았다. 특히 넥슨의 몸값이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카카오나 넷마블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사모펀드와 손을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금력·인력 등 풍부해 단골 인수
넥슨·두산공작기계도 유력 후보에

2004년 설립 근거 마련 뒤 15배 성장
구조조정·지배구조 개편에도 도움

홈플러스 인수 뒤 연 이자만 2000억
불황 땐 기업 가치 제고에 애먹기도

#2 MBK파트너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달 31일 치러진 두산공작기계 예비 입찰을 바탕으로 칼라일·베어링PEA·브룩필드애셋매니지먼트 등을 적격인수후보로 추렸다. MBK파트너스가 2016년 두산그룹으로부터 인수한 두산공작기계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7780억원, 영업이익 2380억원을 기록한 알짜 매물이다.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지난달 마무리된 롯데카드 매각에서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우리은행과 컨소시엄을 이뤄 새 주인이 됐다. 롯데카드 매각가는 1조38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토종 사모펀드인 IMM PE는 지난 4월 1조3000억원에 산업용 가스제조 업체 린데코리아를 인수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사례처럼 사모펀드의 접근이 제한된 경우가 아니려면 올해 진행된 조단위 기업 인수전은 사실상 사모펀드의 독무대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국내에서 사모펀드의 존재가 본격 부각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자금난을 겪는 국내 기업을 헐값에 인수한 후 가치를 높인 후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후 국내 자본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2004년 12월 사모펀드 설립과 관련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무렵 국내 사모펀드 출자약정 총액은 4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출자약정 총액은 사모펀드가 설립할 펀드에 투자자들이 출자하기로 약속한 금액을 뜻한다. 이것으로 사모펀드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국내 사모펀드의 출자약정 총액은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에는 66조1061억원을 기록했다. 15년 만에 15배 이상으로 커진 것이다.
 
사모펀드가 이처럼 빨리 덩치를 키운 것은 한국 재계가 외환위기·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의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웅진코웨이·하이마트·만도·동양생명 등 굵직한 M&A 거래가 줄을 이었다.
 
사모펀드는 산업 구조조정이나 기업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매물을 소화하는 모험 자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인수 기업의 가치를 높여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조력자로도 기여했다. 이들은 인수 기업을 대상으로 채무를 재조정해 이자 부담을 줄이고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해 체질을 개선했다.  
 
또 불필요한 인력과 자산을 줄여 효율을 높였다. 최근에는 특정 산업의 주요 기업을 여럿 인수해 산업과 사업을 재조정하는 ‘볼트온 전략’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한앤컴퍼니는 2012년 대한시멘트를, 2015년에는 쌍용양회를 인수했다. 이어 2017년 쌍용양회는 대한시멘트를 자회사로 통합해 시멘트 업계 1위를 더욱 굳혔다. 한앤컴퍼니는 웅진식품·동부팜가야·대영식품도 한꺼번에 사들여 붙이는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볼트온 전략은 다수의 기업을 동시에 인수할 만큼 풍부한 자금력과 인력을 갖춰야 시도할 수 있다”며 “국내 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8월 기업 구조조정 시장 활성화를 위해 5290억원의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해 2년간 사모펀드에 출자한다는 계획을 정한 것도 사모펀드의 이런 긍정적 측면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 중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 제고에 노력하는 곳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모펀드가 국내 M&A 시장의 중심에 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가 운용하는 자금은 결국 투자자가에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단기 실적에 매달리기 쉽다. 기업 인수 후 대략 5~7년이 지나면 되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2013년 1조8400억원에 ING 생명(현 오렌지라이프)를 사들인 이후 고용 유지 약속을 어기고 임직원의 21%를 줄였다. 그런 후 오렌지라이프를 신한금융그룹에 매각해 2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경기나 업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모펀드도 기업 가치 제고에 애를 먹는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2017년 국내 1위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을 인수했다. 재고 정리 등 체질 개선 작업 중이어서 평가를 내리긴 이르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은 인수 당시보다 모두 줄었다. 7조2000억원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도 인수 이후 연간 이자비용으로 연간 영업이익보다 많은 2000억원을 쓰며 고전하고 있다.
 
사모(私募)펀드
소수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집해 일정 기간 투자한 후 수익과 투자금을 돌려주는 형식의 펀드로 공모(公募)펀드와 반대 개념이다. 국내 자본시장법에서는 사모펀드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구분하고 있다. 인수합병 거래에 등장하는 사모펀드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다.
 
황건강·배동주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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