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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직격인터뷰] "북의 ICBM 실험 못 막으면 '제2의 한국전' 터진다"

중앙일보 2019.06.07 00:05 종합 26면 지면보기
'투키디데스의 함정' 역설해온 앨리슨 교수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북한이 ICBM 실험을 하면 제2의 한국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북한이 ICBM 실험을 하면 제2의 한국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상조 기자

 미·중 간 충돌이 거세질수록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이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도시국가 아테네가 부상하면서 스파르타와 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목격하고 이렇게 설파했다.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 

진리는 시간을 초월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500년간 부상하는 신흥세력이 기존의 지배세력을 위협했던 16번의 역사적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16번 중 12번은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을 피한 사례는 단 4번으로 25%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리하여 앨리슨 교수는 신흥세력과 지배세력이 충돌할 위험이 큰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정의한 뒤 이 용어를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던 앨리슨 교수를 지난달 30일 제주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의 미·중 갈등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대만과 북한이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 현재의 미·중 무역분쟁은 
" 지금 상황은 깊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중요한 역학 관계 변화에 따른 증상으로 봐야 한다. 중국의 부상으로 지배 국가인 미국과 모든 분야에서 충돌할 위험이 커졌다. 무역 분쟁도 이 중의 하나다. 무역 분쟁이 마술처럼 풀려도 다음엔 첨단기술, 그다음엔 공급망(supply chain), 해외투자 식으로 여러 분야로 싸움이 번질 것이다." 
- 이번 미·중 갈등은 과거의 미·소 간 냉전과는 다른가  
"신흥세력과 지배세력 간 충돌은 복잡성을 띄기 마련이어서 각 사례 모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은 주로 군사안보 분야에만 국한됐었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는 완전히 다르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중추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일본·한국·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의 주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더라고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미·중 간의 기본적인 역학 관계로 작동할 게 틀림없다."
- 이런 무역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물론 존재한다. 거의 모든 경우 신흥세력, 지배세력 모두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3국이나 우연한 사건이 '방아쇠' 역할을 해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제3국의 행동에 신흥세력이 반응하고, 여기에 지배세력이 대응하면서 상황이 별안간 악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으로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가 바로 그랬다. 미·중 간에도 대만 문제가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최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만 문제에 강경 목소리를 내고 있다. 1996년처럼 대만과 중국 간의 긴장 상태가 자칫하면 미·중 간 충돌로 발전할 수 있다. 한반도 역시 대만 못지않게 위험하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 우상조 기자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 우상조 기자

- 북한도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현재 진행 중인 평화적 해결 노력이 실패하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하면 분쟁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이럴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을 칠 거로 본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서울을 공격하면서 '제2의 한국전'이 발발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가만있진 못할 터라 미·중 간에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 다른 가능성은 
"우연한 사고가 무력충돌로 발전할 수 있다. 현재 남중국해에서는 미국과 중국 군함 간에 '밀어내기'가 벌어진다. 한쪽 배가 피하지 않으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실제로 2001년에는 하이난 섬 근처에서 미군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한 사건도 있었다. 특히 상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알면 모든 행위를 적대적 도발로 잘못 해석하기 쉽다. 오해는 사태를 악화시킬 주요 요인인 것이다."
- 상황을 악화시킬 다른 이유도 있을까. 
"국내 정치도 한몫한다. 정치적 파워게임이 벌어지면 반대파는 집권세력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비판하기 마련이다. 지금 미국의 민주당이 중국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는다고 트럼프를 비판하는 게 전형적 사례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제주도에서 열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제주도에서 열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 이런 위험을 피할 방법은
 "모든 당사자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중국은 빠르게 부상하고 있으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뤘다. 갈수록 강대해져 미국의 위치에 다가가고 있다. 미국은 기존의 지배세력으로 지난 70년간 훌륭하게 세계 질서를 유지해 왔다. 전 세계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한국과 대만이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미·중 모두 이들 나라에서 분쟁이 확산되지 않게 협력해야 한다. 불행히도 지금의 현실은 그 반대다. 양쪽 모두 분쟁을 더 키우는 형국이다. 남중국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양쪽 간의 오해와 감정을 자제시킬 전략적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인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송나라의 전략에서 배워야 한다. 케네디는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여기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러다 3차대전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사태를 겪고 나서는 생각을 바꿨다. 세상에는 다양한 존재가 공존할 수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송나라는 북방의 요나라가 강대해지자 평화조약을 맺으며 '경쟁적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어떤 분야에선 선의의 경쟁을 하되 다른 쪽에선 협력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중국엔 이런 지혜가 필요하다." 
- 트럼프는 한국 측에 화웨이 제품을 사지 말라고 요구한다.

"한국은 누구도 원치 않을 곤란한 상황에 끼인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길 원치 않을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근본적으로 없어지진 않겠지만 6월 말 G20 정상회의 때 미국과 중국이 잠정적으로 타협하지 않겠나."
- 제2의 한국전을 막을 방법은
"가장 중요한 건 북한이 ICBM 실험을 안 하게 하는 거다. 모든 걸 한꺼번에 해결하는 빅딜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빅딜이 아니라도 이정표가 될만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북한은 영변과 다른 핵물질 생산시설을 폐쇄하는 대신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이루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에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현재 미국과 북한 사이엔 대화가 전혀 없다고 들었다."
-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t)' 학자인 미국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군비를 늘려 패권을 잡으려는 게 강대국의 운명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미·중 간 충돌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 작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유럽 강대국 간의 합의가 이뤄졌던 1815년 빈 체제 이후 1914년 1차대전 전까지는 힘의 균형이 평화를 유지시켰다. 이런 상황보다는 떠오르는 신흥 세력이 지배 국가가 만든 질서를 위협할 때가 훨씬 위험하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오해와 감정이 뒤섞여 신흥 세력은 지배 국가의 행동 하나하나를 자신들의 부상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 파악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화웨이 제재 역시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작전인 것이다."
 -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뜻이 없으므로 서로 돕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윈-윈' 상황이 가능하다는, 소위 '신형 대국관계'를 주장했는데. 
"참으로 대담하고 훌륭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미국 내에서는 중국 측 아이디어라고 별 호응이 없다. 게다가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게 없다. 마치 아무것도 쓰이지 않는 칠판 같다. 방금 언급한 경쟁적 파트너 관계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 미·중이 붙으면 핵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할 텐데 싸울 수 있나.
"워싱턴·베이징 모두 군사적 충돌은 자살행위라는 걸 잘 안다.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세계 평화를 위한 '안전판'인 셈이다. 하지만 미·소 모두 핵전쟁의 결과를 잘 아는 상황에서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일어났다."         
              남정호 논설위원
 
미국의 대표적인 안보 전문가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2017년 발간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

미국의 대표적인 안보 전문가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2017년 발간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

☞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79)= 미국의 대표적인 국방·안보 전문가.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로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이 학교 벨퍼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으로도 활약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미국과 중국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을 2017년 출간해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미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경제학 석사, 그리고 다시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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