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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용두사미된 ‘하명수사’…조국 책임 크다

중앙일보 2019.06.06 00:28 종합 25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던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이 죄다 용두사미로 끝나고 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칼을 겨눴던 야권 인사들이 반격에 들어갔다. 김학의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두 달간 수사받은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자유민주당 곽상도 의원(초선·대구 중구남구)이 대표적이다.
 

김학의 등 3대사건 흐지부지 종결
조 수석 소임했다면 상황 달라졌어
대통령 위해 그의 거취 결단 필요

“대통령 한마디에 검찰·청와대·법무부가 총출동해 나를 범죄자로 몰았다. 관련 보도만 580건이 넘더라. 민사(위자료)와 형사(직권남용) 책임을 다 물을 생각이다.”
 
곽상도는 박근혜 청와대에서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그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문의 남자’ 조국 민정수석이 수비수로 나서게 될 것이다. “조국이 박근혜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했다면 어땠을까”고 물어봤다. “10번은 넘게 쫓겨났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 4년간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 강행된 장관급 인사는 10명이다. 이로 인해 나를 포함해 민정수석이 6명이나 갈렸다. 임기 2년 된 문재인 정부는 벌써 11명이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다. 그런데도 조국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멘붕이다.”
 
조국은 SNS를 자주 한다. 곽상도는 “민정수석이 그럴 시간 있느냐”고 되묻는다. 재산공개가 의무화된 2394명의 1급 고위 공직자들은 민정수석의 24시간 감시 대상이다. 민정수석은 이 임무 하나만으로도 ‘딴짓’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 곽상도가 수석이었을 때 청장급 고위 공직자가 취임 반년도 안돼 경질됐다. ‘허리 디스크 등 건강 문제’가 표면적 이유였다. 실은 그가 ‘내연녀’를 서울로 데리고 온 사실을 곽상도의 민정수석실이 적발해낸 게 경질의 진짜 이유였다. “민정수석이 새벽별 보고 출근, 저녁별 보고 퇴근하는 공을 들이지 않으면 공직자 비리를 결코 잡아낼 수 없다.” 곽상도의 단언이다.
 
대통령이 혹시라도 법규를 위반하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도 민정수석의 임무다.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을 다녀오자마자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의 ‘진실 규명’(사실상 수사)을 공개 지시한 것도 민정수석이 “위법 소지가 있다”며 사전에 부작용을 직언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법무 참모’ 역할 대신 직권남용 논란이 다분한 행동을 많이 한 곳이 조국의 민정수석실이다. 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19개 부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라”는 기안을 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자 13개 부처는 적폐청산 아닌 ‘조직·제도 개선 TF’를 만들어 시늉만 했고, 3개 부처는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황당한 지시에 실소했다. ‘우리 부는 그런 거(적폐)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당시 행정안전부 관계자의 회고다.
 
더 큰 의문은 대통령 친인척을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이 이 정부 들어 2년 넘게 공석이란 점이다. 특별감찰관은 박근혜 정부 때 도입돼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의 전횡을 파헤치며 히트를 쳤다. 미혼인 박근혜와 달리 문 대통령은 부인과 자녀가 있으니 특별감찰관이 더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임명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곽상도의 주장이다. “이석수의 활약을 보니까 특별감찰관의 힘이 엄청나거든. 혹여 자신들에게도 특별감찰관이 메스를 들이대 문제가 불거지면 큰일이라고 봐 공석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 추정한다.”
 
특별감찰관이 없으면 대통령 친인척 관리는 당연히 민정수석실 임무다. 그런데 대통령 딸이 남편의 부동산을 증여 매각하고 동남아로 이주한 사실과 관련, 조국은 “언론 보도 뒤에야 관련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할 일을 안 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민정수석 일은 고되다. 잠실에 살았던 곽상도는 민정수석 시절 새벽 5시 반에 청와대로 출근했다. 밤 9시 전에는 퇴근한 적이 없다. 식사는 하루 세끼를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청와대 전 직원이 지켜보는 민정수석이 바깥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면 즉각 조직 기강에 나사가 풀릴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민정수석에게 힘든 건 대통령과의 관계다. “그건 안됩니다”는 직언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자리여서다. 조국 수석이 그 임무에 충실하다고 보는 이가 얼마나 될까.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은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에게 “동지의식으로 조국을 감싸지만 말고 빨리 바꿔라”고 조언했다. 그때 문 대통령이 그 말을 따랐다면 온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대통령의 권위에도 흠집을 낸 ‘하명수사’ 실패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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