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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중립은 적을 만든다

중앙일보 2019.06.06 00:23 종합 27면 지면보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근래 미·중 경쟁을 두고 2500년 전 그리스를 초토화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역사가의 이름을 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신흥 강대국(아테네)의 부상에 대한 기존 강대국(스파르타)의 공포가 전쟁의 원인이란 것이다. 우리 처지에서 더 시선이 가는 건 그러나 멜로스 섬의 운명일 게다. 아테네로부터 동맹에 합류하라는 압박을 받았으나 거부한 곳이다. 둘은 이런 대화를 했다.
 
“우린 중립이다.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는 상태를 인정할 수 없나.”(멜로스 주민들) 
“그럴 수 없다. 피지배자는 강자에 대한 증오로 그 강자의 큰 힘을 알아차리는 것이다.”(아테네 사절단) 
“굴복은 절망을 의미하지만 저항엔 희망이 남아있다.”(멜로스) 
“모든 걸 희망에 거는 (힘없는) 자는 꿈이 깨졌을 때 이미 희망도 사라져 버린 채다.”(아테네)
 
멜로스는 스파르타가 구원하러 올 것이라고 믿었었지만 스파르타는 오지 않았다. 멜로스는 절멸했다. 그로부터 2000년 후 피렌체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방이 아닌 군주는 당신이 항상 중립으로 남아있기를 원하지만 우방인 군주는 항상 무기를 들고 지원하길 원한다. 우유부단한 군주는 현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중립으로 남아있고 싶어하는데 이는 번번이 파멸의 원인이 된다.”(『군주론』) 중립은 적을 만든다.
 
미·중으로부터 이런저런 요구를 받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은 미국엔 경제·외교·안보 정책의 구성 원리”(마틴 울프)가 됐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척지더라도 자신들을 지지하길 바라고 중국은 거리 두길 요구한다. 일본은 미국 쪽이다. 우리도 선택에 내몰렸다. 후대의 운명까지 걸렸다. 국가적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잘한 걸 보고 자잘한 거에 흥분하며 자잘한 거에 목숨을 건다. 부끄럽다.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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