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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국립무용단 '색동' 제작 중단... 국립예술단체의 존재 이유

중앙선데이 2019.06.05 14:33
국립무용단의 최근작 '설바람' [사진 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의 최근작 '설바람' [사진 국립극장]

 
 

6월말 예정이던 무용계 기대작
제작진 간의 갈등이 표면적 이유
국립극장에 걸맞는 리더십 필요

오는 29~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예정이던 국립무용단의 신작 ‘색동’이 티켓이 50% 이상 판매된 상태에서 제작 중단됐다. 국립극장은 5일 “극장 사정상 ‘색동’ 공연을 내년 상반기로 순연하고, 대신 기존 레퍼토리 작품인 ‘묵향’을 올린다”고 발표했다. ‘색동’ 예매자에게는 법령에 따라 10% 배상을 포함한 환급조치가 진행된다.
 
‘색동’은 ‘한국무용계 대부’ 국수호와 패션디자이너 출신의 연출가 정구호의 만남으로 기획 단계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정구호는 그동안 국립무용단과 ‘단’ ‘묵향’ ‘향연’ ‘춘상’ 등을 협업하며 무용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켜왔다. 특히 국수호와 함께 한국무용계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조흥동이 안무한 ‘향연’(2015)은 국립무용단 대표작이 될 만큼 큰 인기를 모았다. 이번 작품에 무용계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었던 이유다.  
 
민간 기획사의 공연이 제작비 부족 등을 이유로 개막 직전 취소되는 경우는 더러 있다. 하지만 국고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극장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급조된 특별 공연도 아니고, 지난해 여름 레퍼토리 시즌작으로 야심차게 발표해 오랜 기간 준비해온 신작이 왜 공연을 목전에 두고 ‘순연’된 걸까. 
 
국립극장측은 그 사유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지난 4월 상견례 때부터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해 연습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새어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무용계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안무가와 극장 제작진 사이에 초기 단계부터 공연 구성 및 객원 출연진 등을 둘러싼 의견 차이가 있었고, 안무가에 대한 노조 핵심 세력의 반발에 예술감독까지 동조하면서 결국 사태를 봉합하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국립무용단의 '추석만월' [사진 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의 '추석만월' [사진 국립극장]

어느 예술단체나 작품 제작 과정에서 갈등과 내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 책임자가 카리스마를 발휘해 사태를 수습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국립무용단은 스스로 초빙한 안무가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셈이 됐다. 오는 10월 예술감독 임기 만료를 앞두고 조직 내 이해관계가 복잡해진 상황에서, 이같은 사태를 수습할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것이 무용계의 분석이다. 
 
이쯤에서 국민 세금으로 수십 명의 정단원을 거느리는 국립예술단체의 역할과 존재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민간 예술가들이 대부분 프리랜서 신분으로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지원금에 매달리며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에 비하면, 국공립 단체의 예술가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보장에 ‘국립 예술가’라는 무형의 지위까지 누리며 개인적인 외부 활동까지 겸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정된 고용환경과 보장된 제작비, 체계적인 제작 인프라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예술적 비전 하에 일치단결해 민간의 힘으로 완성하기 어려운 수준의 퍼포먼스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책임 아닐까.  
 
그럼 국립무용단은 어떤 예술을 하는 단체인가. 전통무용을 계승하는 명분을 가진 국악원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1962년 설립 당시부터 당대의 창작무용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컨템포러리 무용단’이 그 정체성이다. 그런데 송범 초대단장이 30년간 장기집권하면서 그의 스타일이 ‘국립의 전통’인 것처럼 굳어졌고, 21세기 들어서까지 과거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동시대 관객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게 됐다.
 
한동안 관객의 외면을 받던 국립무용단은 2012년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과 함께 확 달라졌다. 시즌을 꽉 채울 다양한 신작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안성수 등 국내 현대무용가는 물론 조세 몽탈보, 테로 사리넨 같은 해외 저명 안무가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등 외부 예술가를 불러들여 광범위한 협업으로 옛 스타일을 벗고 21세기 관객과 소통할 만한 동시대성 발견에 매진했다. 그 결과 ‘단’ ‘묵향’ ‘회오리’ ‘시간의 나이’ ‘향연’ 등 볼만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세계적인 무용 페스티벌에 최초로 개런티를 받고 개막작으로 초청되는 등 한국무용에 대한 해외의 인식마저 확 바꿔놨다. 
 
마치 한국 축구가 히딩크로 인해 파벌을 넘어 실력만으로 승부했던 2002년 월드컵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무용계라는 좁은 판을 벗어나 이 시대 국립무용단체가 보여줘야 할 한국무용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때 가장 좋은 예술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2018-19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국립무용단이 다시 새로운 성과를 보여줘야 할 시점에 예술 외적인 이유로 신작 제작이 중단되었다니 씁쓸한 마음이다. 100%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극장은 국가대표급 공연예술을 제작해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예술적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 쌓아온 ‘국립’의 명성과 단원들의 자부심에 걸맞는 새로운 작품을 또다시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국립극장에는 ‘국립’에 걸맞는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해 보인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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